배우 전여빈은 매 작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배우 전여빈은 매 작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전여빈은 매 작품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친구의 실종 사건에 휘말려 가해자로 몰린 소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다큐멘터리 감독, 나무늘보 탈을 쓴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동물원 직원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다.

최근 활약은 더욱 돋보인다. 먼저 인기리에 방영 중인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빈센조’에서 변호사 홍차영으로 분해 때론 코믹하게, 때론 통쾌하게 다채로운 매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방송 초기에는 전여빈의 낯선 모습에 아쉬운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드는 활약을 펼치며 혹평을 호평으로 바꿔놓았다.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에서도 전여빈의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지난 9일 공개된 ‘낙원의 밤’은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영화 ‘신세계’ ‘브이아이피’ ‘마녀’ 등을 연출한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극 중 삶의 끝에 선 여자 재연 역을 맡은 전여빈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누아르 장르 속 독보적인 매력의 여성캐릭터를 탄생시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행동하는 재연의 주체적인 모습과 내면의 단단함을 담백하면서도 섬세하게 담아낸 것은 물론, 강렬한 총기 액션까지 완벽 소화하며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홍차영이었다가, 재연이었다가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전여빈이다. 

최근 진행된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전여빈은 드라마 막바지 촬영에 영화 홍보까지 겹쳐 잔뜩 지친 모습이었다. 인터뷰 당일에도 밤을 새우고 왔을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배우 전여빈은 매 작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에서도 전여빈의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넷플릭스

하지만 그는 영화 공개 시기가 다소 지난 시점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에 대해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을 이어나갔다. 한순간도 성실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그가 어떻게 ‘대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기사에는 ‘낙원의 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또 완성된 작품을 보고 기존 누아르와 다른 ‘낙원의 밤’만의 매력을 느낀 점이 있다면.
“기승전결이 있다면 ‘기승전’까지는 정통 누아르의 틀을 따르다 ‘결’에서 재연이라는 캐릭터가 정통 누아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변곡점이 돼준다고 생각했다. 재연의 활약에서 차별화된 매력을 느꼈다. 기존 누아르 장르 속 여성 캐릭터에서 보지 못한 성격과 행동, 결단 등이 차별화를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또 보통 누아르에서 남남 ‘케미’나 우정을 보여주는데, ‘낙원의 밤’에서는 태구는 남성이고 재연은 여성이잖나. 로맨스를 뛰어넘어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안타까워하는 마음, 삶의 마지막에서 나누는 우정이 잘 표현됐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느꼈다.”

-공개 이후 재연이 오롯이 끌고 가는 마지막 10분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호평을 예상했는지. 
“시나리오 읽었을 때도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대되는 장면이기도 했고, 배우로서 재연으로서 잘 해내고 싶은 장면이었다. 공개되기 며칠 전에 완성된 장면을 봤는데, 엄청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운 점도 보이고 양가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기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나와서 만족했다. 호평은 예상하지 못했다. 대중의 평가가 나의 마음과 동일할 수 없으니까, 항상 심판대에 서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잘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낙원의 밤’에서 재연을 연기한 전여빈. /넷플릭스
‘낙원의 밤’에서 재연을 연기한 전여빈. /넷플릭스

-첫 등장부터 재연의 시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재연을 어떤 인물이라고 해석했고,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태구를 데리러 가서 전화를 하는 게 첫 등장인데,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바람이 들어오니 짜증을 낸다. 그때부터 이 친구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고, 우울하거나 마음이 바닥에 있다는 것이 느껴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아주 불친절하진 않지만, 딱히 관심 없고 무심한 친구로 보였으면 했다. 삼촌과 살고 있는 집에 낯선 이방인이 오면서 평온이 깨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고, 재연의 불만이나 시크함의 결이 조금 더 서기를 원했다. 또 재연이 총을 잘 쏘기 때문에 선수처럼 자세가 나오진 않더라도 오랫동안 총을 자기 몸처럼 지니고 다녔고 총을 정말 잘 다루는 사람처럼 보이고자 했다. 특히 재연의 눈빛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몸은 작고 여려도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강인했으면 했다.”

-박훈정 감독이 재연을 표현하는 데 있어 특별히 강조한 부분이 있다면.
“재연이 특정 순간 자기 자신의 상태를 연민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자신의 죽음에 있어서도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했다. 가족이 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죽을 병에 걸리게 된 걸 알고 기뻐하는 친구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했다. 아픈 몸을 갖고 있다고 해서 곧 죽어갈 사람처럼, 다른 장르 안에서 보였던 마냥 가녀리고 연약한 여성주인공 같은 느낌이 나지 않길 원했다. 그래서 그냥 존재 자체로서 초연하게 서있고, 일상을 누리고, 자신이 해야 하는 목표를 향해 수행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로 표현하길 강조했다.”

-부담은 없었나.
“부담은 정말 아예 없었고, 매력만 느꼈다. 내게 이런 기회가 찾아와줘서 정말 좋았다. 재연이라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된 상황 자체를 오롯이 잘 받아들이고 싶었다. 어떤 캐릭터든 매 작품 들어갈 때마다 부담과 책임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것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고 노력의 시간, 이겨나가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역시 그냥 차곡차곡 그 시간을 지나갔다.”

‘낙원의 밤’에서 총기 액션을 완벽 소화한 전여빈. /넷플릭스
‘낙원의 밤’에서 총기 액션을 완벽 소화한 전여빈. /넷플릭스

-재연의 총기 액션은 어떻게, 얼마나 준비했나.
“물리적인 시간은 많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사격장에 가서 연습했다. 처음엔 반동 소리에 놀라고 총기의 무게에 적응이 안 됐는데,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금방 습득되고 극복이 되더라. 나도 놀랐을 정도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몸에 붙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주도에 가있는 동안 항상 (총기를) 갖고 다녔다. 재연이 몸의 일부처럼 총을 갖고 다니는 인물이기 때문에, 나도 거의 모든 시간 총과 함께 했다. 쉬는 날에도 거의 항상 총을 갖고 놀면서 익숙해지도록 했다.”

-감정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촬영하는 동안 일상과 분리가 잘 됐는지,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역할을 맡게 되고 그 작품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나 전여빈으로 사는 시간보다 그 역할로 사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나의 시간마저 작품 하고 있을 때는 온통 캐릭터에 대한 생각과 작품에 대한 생각으로 차있어서 떨어져 있진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일시된다. 특히 제주도라는 낯선 공간이 재연으로 사는 데 도움을 줬다. 그 순간을 믿고 따라가면 됐다. 나는 아직 스스로 새싹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제일 잘할 수 있는 연기 스킬은 그 상황에 몰입하고 믿는 거다. 하고 나면 힘들지만, 그것밖엔 방법이 없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렵지만 행복했던 과정이었다. 촬영하는 동안 바짝 집중하고, 돌아오는 길에 제주도의 하늘과 바다를 보고 바람소리와 빗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고요해졌다가 다시 또 집중했다가 하면서 균형을 잘 맞춰갈 수 있었다.”

-태구 역을 맡은 엄태구가 유난히 내성적인 성격으로 유명한데, 호흡은 어땠나.
“연기를 보면 전혀 그런 성격일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다.(웃음) 엄태구 선배는 ‘밀정’ 때 단역 출연한 적이 있어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도 정말 말이 없었다. 그런데 하시모토 역이라고 해서 설정이 바뀌었나 싶었다. 영화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도대체 뭐가 진짜 모습일까 궁금했던 배우였다. 이번에 만나서 느낀 건 말수는 적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연기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라는 거다. 재연과 태구로서 정말 잘 살고 싶은 마음과 열정도 큰 상태라 서로 배려하면서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또 그렇게 되도록 박훈정 감독님이 공을 많이 들였다. 우리 둘을 데리고 맛집에도 가고 여기저기 산책도 하고 카페에 가서 같이 커피도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떤 노력을 하기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친구가 돼버렸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배우로서 엄태구는 나를 반성하게 만들고 더 노력하고 싶게 만든 좋은 선배였다.”

‘낙원의 밤’에서 호흡을 맞춘 엄태구(왼쪽)과 전여빈. /넷플릭스
‘낙원의 밤’에서 호흡을 맞춘 엄태구(왼쪽)와 전여빈. /넷플릭스

-마지막 장면에서 재연이 바다를 바라보며 짓는 표정이 슬프면서도 편해졌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연기했나. 덧붙여서 재연이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설정된 게 있었나.
“소품팀에서 준비한 음악을 들었는데, 파도 소리가 너무 커서 사실 잘 안 들렸다. 그런데 내가 재연이라면 이어폰만 끼고 아무 음악도 안 들었을 것 같다. 가끔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 노래는 안 듣고 싶은데 외부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이어폰만 꽂기도 하지 않나. 재연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외로운 상태에서 고요를 원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어폰을 끼고 하늘과 바다를 쳐다봤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을 것 같다. 복수는 했지만 해갈되지 않은 심정과 복수했다는 혹은 이 세상에서 완벽히 살아질 수 있고 편안함에 이를 수 있다는 감정이 어우러진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빈센조’ 홍차영과 ‘낙원의 밤’ 재연은 결이 완전히 다른 인물이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이나 복수를 향해 나아간다는 면에서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 캐릭터가 영향을 주고받은 부분이 있을까.
“닮아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캐릭터에 접근할 때 각 인물로서 만나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려고 했다. 어떤 캐릭터에서 얻은 영감이나, 무언가를 연결하면 왠지 그 캐릭터들에게 미안해지더라. 재연은 재연대로 홍차영은 홍차영대로 살았다. 매 작품, 각 인물의 전사를 만들고, 각자의 말투나 음색, 호흡 몸짓을 완전히 다르게 설정한다. 애초부터 설정값을 다 다르게 구현하려고 한다.”

-상반된 모습이 대중에겐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아무리 대중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해도 기회가 오지 않거나 공개 시기에 따라 또 달라질 수 있는데, 나는 지금 이 시기가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냥 감사한 마음이다. ‘행운이 와주었구나’라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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