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최근 여야에서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20대 남성 표심 잡기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여야에서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20대 남성 표심 잡기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4.7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은 더불어민주당에 철퇴를 가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72.5%가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시장을 선택했다고 응답했고,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22.2%의 지지를 받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20대 남성, 이른바 ‘이대남’ 표심 잡기 경쟁이 벌어지면서 군가산점 부활 주장까지 제기됐다. 군가산점은 제대군인이 취업보호실시기관의 채용시험에 응시하는 경우 시험 만점의 5% 범위 안에서 가점 혜택을 부여하던 제도다.

이는 이화여대 졸업생 등이 군가산점이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공무담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면서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에서 1999년 12월 23일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이 나 효력이 상실됐다. 이후 채용시험 응시 상한 연령을 3세 범위 안에서 연장하는 응시상한 연령 연장제도로 대체됐다. 또 채용된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군가산점 부활 시도는 계속됐다. 직접적으로 군가산점 부활을 시도한 법안도 발의됐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군가산점 효과를 노린 법안도 있다. 17대 국회에서는 주성영·고조흥 한나라당 의원, 18대 국회에서는 주성영 의원, 20대 국회에서는 하태경 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제대군인의 채용시험 시 가점을 부여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는 김금래 한나라당 의원과 최영희 통합민주당 의원, 19대 국회에서는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 남인순 현 민주당 의원 등이 제대군인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이 역시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다. 현재 청년들에게 병역 의무만을 강요할 뿐 군 복무에 따른 시간과 기회의 손실에 대한 합당한 혜택을 부여하지 않아 병역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적절한 보상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최근 3년 동안 일반기업체의 군경력 인정 비율은 5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픽=김상석 기자
최근 3년 동안 일반기업체의 군경력 인정 비율은 5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픽=김상석 기자

개정안에 어떤 내용 담고 있나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지난달 21일 현재 법이 의무복무 제대군인의 군 경력을 호봉이나 임금 결정 시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권장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의무조항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법안 발의 이유에 대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의무복무 제대군인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해 국가의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며 “취업실시기관으로 하여금 호봉, 임금 결정 및 경력 평가 시 군 복무 경력을 의무적으로 반영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과 전용기 민주당 의원의 개정안은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뿐만 아니라 ‘승진 심사’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더욱 적극적인 지원책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사실상의 ‘군가산점 부활’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채익 의원은 지난달 15일 채용된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 결정 외에 승진 심사에 있어서도 군 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의원은 또 제대군인의 군 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하는 사기업체 또는 사단체에 대해 국가가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이 의원은 최근 3년 동안 공기업의 제대군인 군 경력 인정 비율이 점차 줄어가고 있고, 특히 사기업의 경우 군경력 인정 비율이 가장 낮다는 점에 주목해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

이채익·전용기 의원실이 제공한 국가보훈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2,000여개의 국가기관 등에서의 군경력 인정 비율은 100%였다. 2,000여개 공기업의 경우는 군경력 인정 비율이 2018년 89.9%, 2019년 89.7%, 2020년 88.5%였다. 반면 1만1,000여개의 일반기업체의 군경력 인정 비율은 2018년 40.3%, 2019년 40.0%, 2020년에는 39.7%에 그쳤다.

이채익 의원은 “군가산점 폐지, 승진 시 군경력 반영 금지 등 국방의 의무를 다한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과 보상들은 사라져만 가고 있다”며 “정부는 합리적인 지원안조차 제시하지 못하면서 형평성과 역차별만을 이유로 그나마 있는 지원마저 뺏어간다. 그러니 청년들이 분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해당 법안이 꼭 통과돼 군 경력 인정 문화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며 폐지된 군가산점 부활 필요성도 주장했다. 이 의원은 “당시 헌법재판소 판단에 대해 60% 정도가 잘못된 판결이었다는 최근 여론조사를 본 적이 있다. 이제 재논의를 해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적정한 수준의 가산점을 정해 군 복무를 보상하는 방안을 논의하기에는 최적의 시기”라고 역설했다.

전용기 의원이 지난달 22일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승진, 경력평가 시 군복무 기간의 근무경력 포함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 의원은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해 “최근 기획재정부의 지침으로 한국전력공사 등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승진 평가 시 군 경력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바뀜에 따라 제도적 보상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며 “의무복무로 인한 2년 가량의 희생에 대해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의원은 “단순히 호봉에 대한 인정뿐만 아니라 ‘상실된 2년’에 대해 완전히 인정해야 한다”면서 “승진연차도 그 인정해야 할 범위의 하나인 셈이다. 즉 2년 뒤에 입사한 남성과 2년 전에 입사한 여성이 동일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법이 처리되어야 할 이유”라고 역설했다.

전 의원은 최근 자신이 군가산점 부활 필요성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서는 “제게 ‘의무복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하나의 소신이고 약속이었다”면서 “요컨대 정당한 보상에 대한 논의의 하나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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