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분양가 완전 자율화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브랜드 아파트
펫네임으로 파악하는 단지 특성… 잘 바꾼 아파트 이름, 집값 상승효과 선사

부르기는 어려워도 소비자들은 고급스러운 이름의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다. /뉴시스
부르기는 어려워도 소비자들은 고급스러운 이름의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송대성 기자  ‘목동 O단지’ ‘구로 주공 O차’ ‘압구정 현대’. 

과거에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이처럼 행정구역과 건설사가 합쳐진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직관적이기 때문에 이름만 들어도 어디 있는지 알기 쉽고 부르기도 편하기에 대부분의 아파트가 이러한 공식으로 작명을 했다. 

하지만 아파트가 나날이 고급화되면서 명칭 역시 변화하고 있다. 더 길어지고 복잡해지는 추세다. 심지어 기존 아파트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가기 위해 명칭 변경을 하는 경우도 적잖다. 

아파트 이름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또 어떤 공식과 절차에 따라 정해지게 되고, 집값에는 끼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 브랜드 아파트 탄생… 본격적인 네이밍 경쟁

아파트 이름이 고급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후반부터다. 1995년부터 단계적으로 분양가 자율화를 시행하던 정부는 IMF 외환위기가 몰아닥친 1998년에 완전 자율화를 선언했고 이듬해 롯데건설의 ‘롯데캐슬’을 시작으로 브랜드 아파트 시대가 열리게 됐다.

이후 건설사들은 저마다 특색을 갖춘 브랜드를 발표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래미안(삼성물산), e-편한세상(대림산업), 힐스테이트(현대건설), 아이파크(현대산업개발), 자이(GS건설), 푸르지오(대우건설) 등이 탄생하며 브랜드 아파트 시장이 본격화됐다. 2014년에는 아크로(대림산업), 디에이치(현대건설), 푸르지오 써밋(대우건설)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고 차별화 전략에 나서는 건설사들도 등장했다.

브랜드 아파트 등장과 더불어 펫네임(Pet Name)까지 붙기 시작하자 이름은 길어지고 부르기 어려워졌다. 건설사들이 다양한 펫네임을 적용한 배경에는 ‘우리 아파트는 타 아파트와 차별성을 갖고 있다’는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기대효과가 녹아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분양 단지의 이름이 평균 4.2자였던 것에 비해 2019년에는 9.84자로 두 배 이상 길어졌다. 2019년 분양단지 가운데 가장 이름이 긴 단지는 ‘이천증포3지구대원칸타빌2차더테라스’로 총 18자에 달한다. 때문에 잘 지은 이름은 기대 이상의 홍보 효과를 선사한다는 분석이 따르지만, 과도하게 길어지는 이름이 오히려 아파트의 특색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시어머니가 아들 집을 찾지 못하게 하려고 길게 지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분양시장 최대어 '래미안 원베일리'는 중세 유럽 시대 성의 영주와 그의 가족들이 거주한 성의 중심부를 뜻하는 단어를 택했다. /삼성물산
최근 분양시장 최대어 '래미안 원베일리'는 중세 유럽 시대 성의 영주와 그의 가족들이 거주한 성의 중심부를 뜻하는 단어를 택했다. /삼성물산

◇ 우리 아파트 단지 이름은 어떻게 정해지나요?

이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건설사들도 작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파트의 특색을 잘 드러나야 하고, 한 번 정해진 이름을 바꾸려면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이 작명 시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은 주변 환경이다. 중심가에 있다면 ‘센트럴’, 주변에 공원과 산 등이 있다면 ‘파크’, ‘포레’라는 펫네임을 적용해 작명한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가 3~4개 정도 이름을 정해 입주 예정자들이나 조합원들에게 공지하면 투표를 통해 이름이 정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더 나은 이름이 있는 경우 투표 이후에도 바뀔 수도 있다”라며 “뜬금없는 이름보다 주변 환경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입주자들이 고급스러운 이름을 원하기 때문에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살펴보면서 최대한 차별화를 두고자 한다”라며 “과거처럼 1차, 2차 등이 붙는 것보다 펫네임 적용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이름만으로도 단지의 특성까지 파악할 수 있다. 최근 분양 시장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받는 ‘래미안 원베일리’는 중세 유럽시대 성의 영주와 그의 가족들이 거주한 성의 중심부를 뜻하는 ‘베일리’(Bailey)라는 단어를 채택해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로 고품격 주거공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북구청역 푸르지오 에듀포레’는 역세권, 숲세권에 교육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이름에 녹였다.

◇ 개명만 해도 집값 상승?… 기존 아파트에 부는 개명 열풍

고급스러운 이름의 브랜드 아파트 증가와 부동산 시장 가격 폭등이 맞물려 시세 상승 기대심리가 작용함에 따라 기존 아파트들도 개명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5년 12월에 준공된 ‘위례더힐55’는 당초 명칭이 ‘위례사랑으로부영’이었지만 주민들이 나서서 지금 명칭으로 변경했다. 지명을 바꾼 케이스도 있다. 2017년 신월동에 ‘신정 뉴타운 아이파크 위브로’로 분양했던 이 단지는 입주를 앞두고 ‘목동 센트럴 아이파크 위브’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서남부권에서 집값과 교육열이 높은 목동을 단지명에 넣으면서 프리미엄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반대로 공급사의 이름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대구 칠성휴먼시아는 지난 2019년 대구역 서희스타힐스로 개명했다. LH 공급으로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인식이 강해 집값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LH 브랜드명인 ‘휴먼시아’를 지우고 시공사 ‘서희스타힐스’를 채택했다. 더불어 대구역을 추가해 역세권 이미지를 갖췄다.

잘 바꾼 이름은 집값 상승효과를 불러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잘 바꾼 이름은 집값 상승효과를 불러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하지만 개명도 쉽게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까다로운 절차가 따른다. 우선 아파트 소유권자 4분의3 이상의 서면 또는 전자적 방법을 통한 합의가 필요하다. 또한 변경한 브랜드명에 부합하는 실체적·유형적 변경(외벽 BI, 문주 등)이 수반돼야 하고 명칭 변경으로 인해 인근 단지와 혼동을 야기하지 않도록 타인의 권리·이익 침해가 없는지를 검토해 브랜드 소유권자(건설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러한 요건을 모두 갖추면 입주자대표회의가 관할관청인 시장이나 구청장에게 건축물 표시변경신청을 하고 최종 승인 과정을 거쳐야 개명이 완료된다. 이 과정에서 주민 부담금 등의 비용이 발생하고 개명 신청이 반려되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런 복잡한 절차에도 많은 단지가 개명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역시 ‘돈’이 가장 큰 이유다. 올해 한국부동산분석학회가 발행한 <명칭 변경 사례를 통해 살펴본 아파트 브랜드 프리미엄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명칭 변경이 거래 가격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중차이분석(DID·Difference-In-Difference)을 적용해 브랜드 변경 사례 5개(서초참누리에코리치→서초호반써밋 등), 지역명 변경 사례 4개(가재울아이파크→DMC아이파크 등) 총 9개의 모델을 분석한 이번 논문에는 “4만여개의 데이터를 사용한 이중차이분석 결과 명칭 변경이 아파트 거래 가격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라며 “수치적으로 명칭 변경을 통한 브랜드 효과의 경우 약 7.85% 가격 상승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다만 브랜드 변경과 지역명 변경 단지의 차이도 있다. 해당 논문에는 “긍정적인 명칭 변경 효과는 브랜드와 연관된 경우에만 유의하여 사실상 명칭 변경의 효과가 아닌 브랜드 효과임을 보여주고 있다”라며 “반면 지역명과 연관된 경우에는 명칭 변경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러한 상승효과가 지역 주택 시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해당 아파트에만 국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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