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고 또 곱씹게 되는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 /명필름
곱씹고 또 곱씹게 되는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 /명필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혼란스럽다. ‘70대 해녀와 30대 PD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한편이 아리다. ‘이게 가능하다고?’라며 물음표를 띄우다가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는 두 남녀의 애틋한 눈빛에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다. 곱씹고 또 곱씹게 되는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이다. 

“제 이름은 고진옥, 제주 해녀입니다.” ‘바다에서 숨 오래 참기’로 기네스북에 오른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 성질도, 물질도 제주에서 그를 이길 사람이 없다. 진옥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다큐멘터리 PD 경훈(지현우). 하지만 진옥의 반응은 냉담하다.

경훈은 진옥의 마음을 열기 위해 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고, 진옥은 바다에 빠진 경훈의 목숨을 구해준 이후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졌음을 알고 경훈에게 마음을 연다. 제주 그리고 해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경훈, 그런 경훈을 통해 진옥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70대 해녀와 30대 PD의 사랑을 담아낸 ‘빛나는 순간’. /명필름
70대 해녀와 30대 PD의 사랑을 담아낸 ‘빛나는 순간’. /명필름

‘빛나는 순간’은 제주 최고의 해녀 진옥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의 특별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2007년 제31회 끌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받은 ‘올드 랭 사인’로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은 소준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나이 많은 여성과 젊은 남성의 사랑 이야기라는 파격적이고 낯선 설정을 섬세하면서도 감성적으로 그려낸다. 70대 노년 여성과 30대 청년이 서로에게 가까워지고 ‘연정’을 느끼는 과정을 극적 사건이나 작위적 설정 없이 그저 담담히 보여준다. 같은 아픔을 가진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위로가 돼줄땐 ‘파격’이란 단어를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해녀의 삶을 진솔하게 녹여낸 점도 좋다. 평생 물질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 온 70세 해녀 진옥을 통해 강인하면서도 인간적인 해녀의 삶을 현실감 있고 생생하게 담아낸다. 여기에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은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한다. 밝고 푸른 제주 바다와 하늘, 싱그러운 숲 등 스크린에 펼쳐지는 그림 같은 영상미가 영화의 감성을 배가시킨다.

‘빛나는 순간’에서 안정적인 호흡을 보여준 고두심(위)와 지현우 스틸컷. /명필름
‘빛나는 순간’에서 안정적인 호흡을 보여준 고두심(위)과 지현우 스틸컷. /명필름

고두심은 이번에도 이름값을 해낸다. 자신의 고향 제주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평생을 바다에 몸 바쳐 살았던 해녀의 얼굴을 대변한다.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해녀의 모습, 사랑에 빠진 여인의 순수하고 고운 얼굴을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섬세하게 담아내 감탄을 자아낸다. 과거 ‘국민 연하남’으로 인기를 모았던 지현우도 제 역할을 다한다. 한층 성숙된 연기로 고두심과 안정적인 호흡을 완성한다.

그럼에도 영화의 파격적인 설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버거울 수 있다. 특히 진옥과 경훈 사이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사건(?)은 남녀가 바뀌었어도 웃어넘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러 생각이 충돌할 수 있다. 러닝타임 95분,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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