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에너지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태양광 발전은 대체로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각종 잡음 및 부작용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태양광 발전 시설 관련 산사태다. 워낙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측면도 있지만, 태양광 발전의 무분별한 난립과 관리부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기도 했다. 심지어 1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장마철이 찾아왔음에도 재발방지를 위한 확실한 조치는커녕 보수조차 되지 않은 채 방치된 곳이 적지 않다. 이에 <시사위크>는 지난해 산사태 피해를 입은 충남 금산, 전북 남원·장수 지역을 돌아보며 태양광 발전 현장의 각종 난맥상과 개선책을 진단해봤다. [편집자 주]

친환경 에너지의 대표주자인 태양광 발전 시설이 ‘산사태’의 원인이라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 수십곳에선 산사태로 큰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산지 태양광 시설들은 장마를 앞두고 산사태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금산=권정두·박설민 기자 “전재산을 들여 농사를 짓다 피해를 봤는데 1년이 지나도록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속이 터질 지경이다.”

지난 6일 <시사위크> 특별취재팀이 찾은 충남 금산군 제원면 동곡리는 마치 시간을 과거로 돌린 듯 평온한 시골마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박서현(39) 씨는 취재팀을 향해 울분을 터뜨렸다. 

인삼 농사를 짓고 있는 박서현 씨는 지난해 8월 발생한 산사태로 큰 피해를 입었다. 산사태는 인삼밭 바로 위 산지에 조성된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박씨의 인삼밭을 덮친 토사는 성인 어깨 높이만큼이나 쌓였다고 한다.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인삼 농사를 하고 있는 농부 박서현 씨는 지난해 8월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작년 수해 당시 모습. / 사진=박서현 씨 제공

◇ 보수공사 했지만 곳곳이 ‘위태’… 보상도 ‘지지부진’

취재팀이 방문한 충청남도 금산군 동곡리 태양광 발전 시설에선 지난해 발생한 산사태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해 토사가 무너져 내린 곳은 얼마 전 공사를 마친 듯 축대와 시멘트로 보수가 이뤄진 상태였다. 

하지만 시멘트는 조금만 만져도 부스러졌고, 위로 들려 흙이 드러나기도 하는 등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또 다른 한쪽으로는 지난해 토사가 무너졌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등 아예 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해 농가에 큰 피해를 일으킨 산사태가 발생한 충청남도 금산군 동곡리 태양광 발전 시설은 시멘트, 돌 등으로 어느 정도의 산사태 대비 보수공사가 진행돼 있었다. 하지만 취재진이 가까이서 살펴본 결과, 시멘트는 손으로 살짝 만져도 부스러질만큼 약한 상태였다./ 사진=박설민 기자

이곳은 불과 하루 전인 지난 5일, 박찬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장마철을 맞아 태양광 발전 설비 현장점검 차 방문했던 곳이다. 박찬규 차관은 이날 피해복구 현장을 확인하는 한편, “사업자는 인근 주민의 안전을 생각해 신재생설비와 주변부지를 철저히 점검하고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대할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박서현 씨는 “1년이 지났지만 아직 피해보상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고, 비가 올 때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여전히 걱정이 크다”고 호소했다. 박씨는 해당 태양광 발전 설비 토지주 및 시공사, 금산군청 등을 상대로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진행은 더디기 만한 상황이다. 

박씨는 “소송으로 가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속이 터진다”며 “어제(5일) 산업부 차관이니 하는 정부 관계자들이 피해 현장을 방문했는데, 정작 피해자인 우리에겐 말 한 마디 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자기들끼리 현장을 보면 뭘 아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충청남도 금산군 선원리 주민들도 지난해 태양광 발전 시설 산사태로 큰 피해를 받았다. 현재 피해보상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코로나19 사태, 업체와의 갈등 등으로 보상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박설민 기자

인근에 위치한 선원리 주민들 역시 지난해 태양광 발전 설비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피해를 입고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경수 선원리 이장은 “토지주와 업체 등은 마을에 알리지도 않은 채 태양광 발전 시설 공사를 시작했다”며 “지난해 결국 일이 터졌는데 업체에서는 법대로 하자며 배째라 식이고, 군청에서는 손을 놓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서 재판 진행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경수 이장은 특히 마사토 계열의 토질인 이 곳은 애초에 태양광 발전 설비가 들어서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토목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굵은 입자와 낮은 점토분으로 구성된 마사토는 푸석푸석하고 응집력이 약해 폭우가 내릴 경우 산사태 위험이 높다.

충청남도 금산군 선원리 태양광 발전 시설의 토양은 마사토 계열로, 해변가 모래 수준의 강도였다. 전날 내린 비로 이미 상당 부분이 침식된 상태였으며, 흘러내린 토사는 갯벌처럼 발이 푹푹 빠지는 뻘을 형성할 정도였다./ 사진=박설민 기자

실제 취재팀이 살펴본 선원리 태양광 발전 시설의 토양은 해변가 모래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지지대 아래쪽 지면은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이미 상당부분 침식된 상태였고, 내려간 토사가 길을 덮고 있었다.

또한 이곳 역시 앞서 살펴본 동곡리 현장과 마찬가지로 보수공사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멘트와 방수포 등으로 무너진 곳을 덮어 놓은 정도였다. 특히 지난해 산사태 이후 설치됐다는 배수로는 그 크기가 여전히 작았다. 다량의 토사가 배수로로 흘러들 경우 금세 역류해 또 다시 아래쪽 인삼밭을 덮칠 가능성이 상당해보였다. 

김경수 이장은 “지금도 짧은 주기로 배수로 토사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며 “심한 폭우가 내릴 경우 손쓸 틈 없이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배수로 역시 문제였다. 배수로망이 찌그러져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크기도 작아 다량의 토사가 흘러들어갈 경우, 역류해 또 다시 아랫쪽 농가를 덮칠 가능성이 높았다./ 사진=박설민 기자

◇ 인적 끊긴 산 속, 부서진 태양광 시설 그대로 ‘방치’

금산군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대산리 현장은 상황이 가장 심각했다. 이곳은 현장으로 접근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 사람의 발길이 끊긴 듯, 수풀이 우거져 길의 흔적이 사라진 상태였다. 

우거진 수풀을 뚫고 도착한 대산리 태양광 발전 시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최소한의 보수공사는커녕 부서진 시설이 그대로 방치돼있었다. 마치 무언가 할퀴고 지나간 듯한 산사태의 흔적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고, 설비가 위치한 위쪽에만 파란색 방수포가 덮여있었을 뿐이다. 폭우가 내릴 경우 언제라도 토사가 유실될 수 있는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충청남도 금산군 대산리 태양광 발전 시설의 상황은 앞서 방문한 두 곳보다 더욱 심각했다. 최소한의 보수공사는커녕 방수포로 무너진 부분을 덮어놓는 정도가 고작이었으며, 부서진 태양광 시설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사진=박설민 기자

이에 대해 금산군청 측은 “태양광 사업자 측과 농지 주인 간 소송에 따른 현장 보존 문제 등으로 인해 현장 정리 및 복구가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산군청 관계자는 “현재 군청에서는 해당 태양광 산사태 현장을 확인한 상태”라며 “군청에서는 최대한 빨리 복구 조치를 하라고 독촉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미 준공이 끝난 발전 시설에 대해 강력한 행정처분을 내리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방치된 현장 바로 아래쪽에서 양봉업을 하고 있는 주민 A씨 역시 장마철을 맞아 걱정이 태산이다. 그는 “태양광 발전 시설 공사를 하기 전엔 이런 일이 없었다”며 “축대를 쌓거나 어떤 대책을 세우지 않고 골짜기를 그냥 밀어버리니 벌어진 일이다. 올해 장마에도 언제 무너질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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