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테크놀로지(Lost technology)’. ‘잃어버린 기술’이라는 단어적 의미처럼 주로 과거에 이용됐지만 현재는 모종의 이유로 사라진 기술들을 의미한다. 현재 사라진 기술들은 대체기술 등장으로 인한 시장경쟁력 확보 실패부터 국가의 지원 부족으로 개발이 중단된 아쉬운 기술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히 하루하루 기술의 주도권이 달라질 정도로 빠른 변화를 거듭하는 현대 사회에서 로스트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치부된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현재 사라진 기술들을 살펴보고, 이것이 앞으로 과학기술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살펴보는 자리를 가졌다. <편집자 주>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교통산업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기술은 단연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차를 개발했다는 사실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의 교통체계와 ICT기술이 융합된 ‘스마트 모빌리티’ 산업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다. 특히 사람의 조작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운행할 수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은 구글과 아마존, 애플, 테슬라 등 전 세계 굵직한 IT기업들이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ICT기술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현재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주목받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로스트 테크놀로지’라는 것이다. 구글과 테슬라가 설립되기도 전, 우리나라가 전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를 상용화 하는데 실패했고, 근 20년간 ‘잊혀진 기술’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 도심자율주행은 우리나라가 최초… 개발자 한민홍 교수, 학계에서도 인정받았던 ‘대가’

우리나라가 정말로 세계 최초의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의 개발 국가인지 알아보기 위해 자료를 찾아본 결과, 자율주행의 역사는 예상보다 매우 오래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1977년 일본의 쓰쿠바 대학교 기계공학 연구소에서는 시속 30km의 느린 속도로 지정된 구간을 달릴 수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1986년 독일의 뮌휀연방대학교 연구진들도 시속 100km의 속도로 정해진 구간을 달릴 수 있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했다. 

두 사례 모두 사전적 의미인 ‘사람의 조작 없이 운행하는 차’로써는 의미가 있는 발명이었으나, 실제 도로 위에서의 주행할 수 있는 ‘진짜’ 자율주행기술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 우리나라의 한민홍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선보인 자율주행차 기술이 전 세계 자율주행차 연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한민홍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개발했던 세계 최초의 무인주행차량. 1992년 고려대학교 운동장에서 자율주행을 시연하는데 성공했다./ 사진=고려대학교 유튜브 KUTV 캡처

1993년, 한민홍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자율주행차는 대전 엑스포에서 서울시내의 청계천부터 63빌딩까지 17km의 거리를 사람이 조작 없이, 그것도 시속 10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성공적으로 운행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1995년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과 부산까지, 무려 400km가 넘는 거리를 정속 자율주행으로 이동하는데 성공했다.

국제 논문 저널에서도 한민홍 교수의 자율주행 연구실적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해외에서도 크게 인정받았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국제 산업 학술 저널인 IIE Transactions에 1987년 개제된 ‘On Sequencing Retrievals In An Automated Storage/Retrieval System  IIE Transactions’ 논문의 경우, 인용 횟수가 296건에 달할 정도로 국제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 인정받는 ‘대가’ 중 한 명이었다.

한민홍 교수가 재직했던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현 산업경영공학부)에 따르면 한민홍 교수가 개발했던 자율주행기술은 1990년대 현재 자율주행 기술 수준 4단계에 해당하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자율주행기술 4단계는 ‘고등 자율주행(High Automation)’로 대부분의 도로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을 말한다. 한민홍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사실상 30년 시대를 앞선 기술이었던 셈이다. 해당 공로를 인정한 고려대학교는 ‘제1호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고공영웅(KUHERO)’로 한민홍 교수를 선정하기도 했다.

전 세계 최초로 도심 속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을 성공한 한민홍 전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사진=박설민 기자

◇ 1990년대 개발한 자율주행기술, 레벨 4단계에 육박… ‘구글과 맞먹는 수준’

한민홍 교수의 논문 실적, 국제 저널 등을 조사한 결과,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됐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에 본지 기자는 당시 기술이 현재 기술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지난달 27일 한민홍 교수가 근무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았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 한민홍 교수는 살이 따가울 정도로 뜨거운 날씨에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한 채 연구를 하고 있었다. 8평 남짓한 허름한 사무실에는 컴퓨터와 TV 모니터 몇 대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 최초의 자율주행차를 발명한 과학자에겐 모자란 처우란 생각도 들었다.

두 눈으로 확인한 자율주행 영상은 매우 놀라웠다. 지난 1995년 촬영한 것이라고 밝힌 해당 영상에서 자율주행차는 앞에서 다른 자동차가 추월을 할 경우, 순간적으로 속력을 낮추고, 차선을 바꾸는 등 실제 운전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주행이 가능했다. 심지어 어두운 터널과 야간 주행까지 안정적으로 하는 모습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기술을 보유했다고 평가받는 구글이나 테슬라와 비교해 봐도 전혀 뒤지지 않는 듯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때의 기술과 현재 자율주행기술의 기본 원형은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한민홍 교수가 개발한 자율주행차는 GPS를 통해 정해진 목적지까지 이동함과 동시에 실시간 감지센서로 차량 앞의 장애물이나 타 차량 등을 피하면서 운행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현재 구글, 테슬라 등이 사용하는 기술과 원천적으로 ‘똑같은’ 기술이다.

한민홍 교수는 “당시 연구팀에서 개발한 자율주행차 기술 수준은 4단계에 달했다. 지금의 기술과 달라진 것은 훨씬 더 정교해진 GPS기술과 라이다(Lidar: 레이저 펄스를 발사해 그 빛이 대상 물체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을 받아 물체까지 거리 등을 측정하고 물체 형상까지 이미지화하는 기술) 정도”라며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더 높은 수준의 자율주행이 가능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5년 한민홍 교수가 개발한 자율주행 자동차가 국내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모습./ 사진=첨단차 제공
1993년 한민홍 교수가 개발한 자율주행차가 전 세계 최초로 야간 자율주행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첨단차 제공

◇ 왜 한민홍 교수의 자율주행 기술은 상용화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이처럼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도 우리나라가 세계 자율주행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자의 이 같은 질문에 한민홍 교수는 씁쓸한 너털웃음을 지으며 정부 기관의 소극적 태도와 투자 부족 등이 이유였다고 답했다. 당시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기관들이 해당 기술이 ‘불필요한 기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민홍 교수는 “당시 해당 기관 공무원들은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그들은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기업들 역시 해외에서 개발된 기술을 사오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굳이 많은 자금을 투자해 자체 기술을 개발하려는 의지를 보이진 않았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분야는 ‘시장이 작다’ ‘돈이 되지 않는다’ 하면 중도에 포기했다가, 다른 선진국에서 해당 기술이 다시 떠오른다 하면 다시 하는 ‘되새김질’ 방식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큰 진전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민홍 교수는 우리나라의 자율주행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선 흩어진 기술들을 집약화하고, 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조언했다./ 사진=박설민 기자

한민홍 교수는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자율주행기술 국가가 되지 못한 것은 다소 아쉽지만, 지금도 선진국을 따라 가는 것은 전혀 늦지 않았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다만 기술들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해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치 레고 블록을 쌓아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저기 레고 블록이 흩어져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민홍 교수는 “우리나라의 자율주행기술 수준은 전혀 무방비인 상태는 결코 아니다. 다만 수많은 기업과 연구소 등 여기저기에 핵심 기술이라 꼽을 수 있는 것들이 흩어져 있다”며 “이 기술력들을 한 곳으로 다 끌어모은다면 미국, 중국, 유럽 등 선진국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예산이 조금 아깝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그동안 흩어진 기술을 집약화 하기 위한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기업들의 경우엔 모두가 완벽한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려고 하는 것보단 실생활에 당장 응용이 가능한 청소차, 항만 자동화 등에 투자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어쩌면 전 세계 자율주행 시장을 선도해 나갈 수 있었던 우리나라. 하지만 당시 ‘불필요하다’‘선진국 기술을 사오면 되지 않냐’는 안일한 생각이 결국 세계 최초 타이틀도, 자율주행 시장 주도권도 내주는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많은 과학자, 스타트업 연구원들은 매일 같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피나는 노력이 과거 한민홍 교수의 자율주행기술처럼 우리나라의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들의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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