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테크놀로지(Lost technology)’. ‘잃어버린 기술’이라는 단어적 의미처럼 주로 과거에 이용됐지만 현재는 모종의 이유로 사라진 기술들을 의미한다. 현재 사라진 기술들은 대체기술 등장으로 인한 시장경쟁력 확보 실패부터 국가의 지원 부족으로 개발이 중단된 아쉬운 기술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히 하루하루 기술의 주도권이 달라질 정도로 빠른 변화를 거듭하는 현대 사회에서 로스트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치부된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현재 사라진 기술들을 살펴보고, 이것이 앞으로 과학기술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살펴보는 자리를 가졌다. <편집자 주>

20대 후반부터 30·40세대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비디오 테이프, 그중 VHS테이프는 한때 영상 미디어 시장을 지배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20대 후반부터 30·40세대의 어린 시절 ‘엔터테인먼트’를 책임졌던 것은 바로 ‘비디오 테이프’였다.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모아 만화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대여점에서 빌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재생시키면 나왔던 ‘호환마마’ 경고 문구는 이제는 훌쩍 커버려 어른이 된 우리에겐 그리운 옛 기억이 됐다. 

놀랍게도 20·30·40세대의 어린 시절과 함께했던 비디오 테이프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기술이 되고 말았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더 익숙한 현재의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비디오 테이프의 사진을 보여주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디오 테이프는 오랜 시간 이어져온 ‘영상’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기술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비디오 테이프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부흥기를 가졌으며, 어떻게 시장에서 쇠퇴하게 됐는지 <시사위크>와 함께 옛 추억을 더듬으며 자그마한 시간 여행을 한 번 떠나보자.

어린 시절 만화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 나왔던 문화체육관광부의 경고 문구.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불법 비디오'라는 유명한 문구는 여기서 나왔다./ 사진=유튜브 캡처

◇ VHS, 미디어 시장을 바꾸다

비디오 테이프란 자기 테이프에 정보를 기록하는 아날로그 저장 매체다. 세계 최초의 비디오 테이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51년으로, 스카치 테이프, 업무용 장갑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3M사에서 제작된 2인치짜리 녹화용 테이프다. 당시 영상을 ‘저장’할 수 있다는 개념이 탄생하면서 막대한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3M사의 비디오 테이프는 방송가 및 영화 제작 등에서 제법 많이 이용됐다. 하지만 매우 비싼 가격과 편집기능이 없는 점은 큰 불편함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일반 가정 등에서 대중적 인기를 끄는데는 실패했다. 이후 미국의 암펙스(Ampex)사에서 1961년 세계 최초의 가정용 비디오 테이프를 출시했지만 이 역시 비싼 가격 등의 이유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이렇게 예상보다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던 비디오 테이프의 역사를 바꾼 것은 일본의 JVC사가 1976년 출시한 가정용 비디오 테이프인 ‘VHS’ 모델이 등장하면서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비디오 대여점의 그 비디오 테이프 모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디오 테이프 모델인 VHS는 편의성을 앞세우며 전체 영상 비디오 테이프 시장의 90% 가까이를 차지하게 됐다./ 사진=픽사베이

VHS의 가장 큰 특징은 ‘편의성’이었다. 기존의 비디오 테이프에 비해 녹화 시간이 길었고, 편집도 가능했다. 또한 가격 역시 기존 모델들보다 훨씬 더 저렴했고, 작동방식도 간단했기 때문에 전자기기 제조사들에서도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를 쉽고 저렴한 가격에 제작 및 판매가 가능했다.

이 같은 VHS의 장점은 가정용 비디오 테이프를 대중화를 이끌었다. 동시에 VHS는 베타맥스 등 경쟁 비디오 테이프 모델들을 제치고 시장을 장악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전자기기 회사 사우스트리(Southtree)에 따르면 VHS는 1987년까지 미국에서만 52억5,000만달러 규모의 비디오 테이프 시장 중 90%를 차지한 것으로 기록됐다.

VHS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드라마 등 영상 미디어 시장의 발달도 가속화 됐다. 그동안 영화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비싼 가격의 티켓을 구매해 봐야했던 영화를 일반 대중들 누구나 원하는 영화의 테이프를 대여 혹은 구입을 통해 구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영화연구소는 지난 2014년 발간한 ‘디지털기술 발전에 따른 영화 부가시장의 다변화 - 디지털 온라인 시장 을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VHS 테이프와 영상 녹화 기술의 등장은 영화 감상의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며 “영화관 이외의 비디오 대여점이 자리 잡게 되고, 영화관과 공생하며 새로운 영화 부가시장을 형성했다”고 평가했다.

VHS의 몰락은 훨씬 우수한 화질과 편의성, 내구성을 갖춘 DVD 등장으로 시작됐다./ 사진=Gettyimagesbank

◇ DVD의 등장, 그리고 VHS의 몰락

VHS가 전성기를 달리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동네에는 수많은 비디오 대여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은 영상 미디어 시장이 유지되는 한 비디오 테이프의 표준인 VHS 역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꽃도 피면 지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라고 했던가. 영원할 것만 같았던 VHS의 쇠퇴는 한순간에 찾아왔다. 바로 훨씬 더 높은 고화질의 영상 저장 기기인 ‘DVD’가 등장하면서 VHS의 철옹성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1996년 등장한 CD형 영상 저장 장치인 DVD는 화질과 저장 용량 면에서 VHS를 압도했다. 뿐만 아니라 VHS의 고질적 문제였던 약한 비디오 테이프의 내구성보다 훨씬 튼튼한 내구도를 자랑해 오랫동안 반복해서 영상을 재생하더라도 화질의 저하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DVD가 등장하자마자 VHS시장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DVD플레이어의 보급은 느렸고, VHS용 비디오 레코더가 VCR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VHS테이프 시장의 몰락으로 2000년대 초반만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던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은 2021년 기준 사실상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다./ 사진=구글 거리뷰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컴퓨터’의 보급이 빨라지면서 별도의 디코더 없이도 DVD의 재생이 가능해지자 DVD는 급속도로 VHS의 시장 파이를 빼앗기 시작했다. 이후 VHS는 DVD에 이어 등장한 블루레이, VOD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Over the Top)의 등장으로 급속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VHS의 몰락과 함께 2000년대 후반까지 전성기를 달리던 비디오 대여점들 역시 우후죽순 문을 닫았다. 결국 VHS는 이러한 시장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2009년~2010년을 기점으로 시장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이후 2016년 마지막까지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VCR)를 생산하던 후나이 전기가 완전한 생산 중단 선언을 하면서 VHS,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30,40세대와 과거 문화에 흥미를 가지는 10,20세대들 사이에서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VHS테이프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 레트로 열풍에 ‘VHS’도 부활할 수 있을까 기대감도↑

재미있는 것은 VHS가 완전히 시장에서 사라진지 10년이 넘은 2021년 현재,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옛 추억을 되새기며 비디오 테이프를 다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레트로(옛날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체제, 전통 등을 그리워하는 것)’ 문화가 유행을 끌면서다. 

최근 레코드·카세트 플레이어 등이 레트로 열풍을 타고 다시 재출시 되는 경우도 있으니, VHS 비디오 테이프라고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듯싶다. 실제로 빌보드(Billboard)에 따르면 지난해 LP판은 수요가 급증하면서 무려 2,754만장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이동통신사 KT에서도 레트로 열풍을 맞아 레트로 스타일의 카세트 플레이어를 출시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다만 음원 재생을 목적으로 제작된 레코드나 카세트 테이프와 달리 VHS의 경우 화질 면에서 현재 영상 미디어와 크게 차이가 나는 만큼, VHS의 부활은 다소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기자 역시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머니 손을 잡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만화영화 VHS테이프를 빌려 집으로 돌아가던 예전이 그리워지곤 한다. 비록 편리함과 영상의 품질 면에서 VHS는 지금의 OTT와 비교도 할 수 없게 나쁘지만 최근 들어 코로나19와 집값 폭등, 무수히 많은 사회적 갈등들을 보고 있자면 그때의 VHS가, 아니 VHS를 보던 그때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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