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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Tech-잃어버린 기술들
[Lost Tech, 잃어버린 기술들③] 3D TV의 ‘일장춘몽’
2021. 08. 13 by 박설민 기자 ihatefree1@sisaweek.com

‘로스트 테크놀로지(Lost technology)’. ‘잃어버린 기술’이라는 단어적 의미처럼 주로 과거에 이용됐지만 현재는 모종의 이유로 사라진 기술들을 의미한다. 현재 사라진 기술들은 대체기술 등장으로 인한 시장경쟁력 확보 실패부터 국가의 지원 부족으로 개발이 중단된 아쉬운 기술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히 하루하루 기술의 주도권이 달라질 정도로 빠른 변화를 거듭하는 현대 사회에서 로스트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치부된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현재 사라진 기술들을 살펴보고, 이것이 앞으로 과학기술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살펴보는 자리를 가졌다. <편집자 주>

실감나는 입체 영상을 보여주는 3D TV는 글로벌 TV시장의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한때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몇 년 되지 않아 3D TV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술이 되고 말았다. 어째서일까./ 그래픽=박설민 기자
실감나는 입체 영상을 보여주는 3D TV는 글로벌 TV시장의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한때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몇 년 되지 않아 3D TV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술이 되고 말았다. 어째서일까./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의 이 유명한 속담은 직접 체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에게 시각적 자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속담이기도 하다.

특히 미디어·콘텐츠 분야에서 현실처럼 실감나는 영상이 주는 시각적 자극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한때 ‘3D 텔레비전’이 IT업계에서 열풍이 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3D TV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어째서일까.

◇ 90년대 ‘반짝’ 인기 부른 3D스크린… 흥미 떨어지자 쇠퇴

일단 3D TV가 무엇이며, 어째서 몰락하게 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선 그의 시조격인 ‘3D스크린’ 기술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3D스크린이란 스테레오스코피(Stereoscopy: 3D 착시를 일으키는 기술) 기술을 적용해 2차원 영상에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장치로, 일반적으로 영화관 등 대형 스크린에서 사용된다. 

기본적인 원리는 두 디스플레이 화면을 하프 미러로 합성하고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을 각각 색 필터. 편광 필터로 분리한 안경 등을 써서 양쪽 눈에 각각 다른 영상이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눈에 비친 영상 정보는 시신경을 통해 합쳐진 형태로 뇌로 전달되고, 생생하게 화면 밖으로 튀어나온 듯 한 영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3D스크린의 원리는 3D TV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사실상 가정용으로 작게 제작된 3D스크린이 3D TV라고 보면 되겠다.

조금 놀라운 점은 첨단 기술을 떠올리게 만드는 3D스크린이 사실은 굉장히 오래된 기술이라는 점이다. 1855년 3D영사기 ‘키네마토스코프(Kinematoscope)’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3D영상에 대한 기대감을 점점 키워갔다. 

3D영상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들어서다. 하지만 고질적인 화질 등 영상 문제와 콘텐츠 부족 등으로 대중들의 관심이 식어갔다. 실제로 위 사진 속에서 볼 수 있듯 1975년 개봉한 죠스1(사진 위)보다 1983년 개봉한 죠스3-D 속 3D 상어의 모습이 훨씬 더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이후 본격적으로 3D스크린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계기는 1922년 세계 최초의 3D상업영화 ‘사랑의 힘(Power of love)’이 미국에서 개봉한 것이다. 이후 1950년대를 거쳐 수많은 3D영화가 개봉하며 인기를 끄는 듯했다. 

하지만 1950년대 당시 빠른 속도로 TV가 보급되면서 VHS 기반의 비디오테이프 영화 시장이 급성장하게 됐다. 문제는 가정용 TV에서 3D로 제작된 영화를 볼 경우, 3D효과를 즐기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오히려 화질이 떨어지고 생각보다 실감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아졌다. 

또한 영화관에서조차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값비싼 3D스크린이 가정에 보급된다는 것은 별로 기대할만한 것이 아니었고, 영화관에서 사용하는 3D스크린용 안경은 대중들에게 불편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이 같은 이유로 1990년대 3D영화 시장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시들했던 3D스크린의 부활을 알린 것은 2009년 개봉한 영화 '아바타'였다. 신비로운 가상의 행성 판도라의 모습을 3D영상으로 구현한 영화 ‘아바타’는 3D영화, 3D TV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사진=네이버 영화

◇ ‘아바타’가 이끈 3D스크린의 부활, 3D TV로 돌아오다

1990년대 이후 놀이공원 등의 흥미를 끌만한 어트랙션이나 행사장의 관심끌기용 정도로 여겨졌던 3D스크린이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은 2009년 한 편의 영화가 개봉하면서다. 바로 ‘에일리언2’ ‘터미네이터 시리즈’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역작 ‘아바타’다. 

약 170분의 상영시간 동안 신비로운 가상의 행성 판도라의 모습을 3D영상으로 구현한 영화 ‘아바타’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바타의 3D영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했다. 기존 브라운관 TV 기반의 3D스크린의 한계로 꼽혔던 화질, 색감 등의 영상 품질 문제가 LCD 등 고화질 TV 기술의 등장으로 해결됐기 때문이다. 아바타의 성공 이후, 영화관에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블러드발렌타인’ 등 수많은 3D영화들이 쏟아져 나왔고, 영상 미디어 시장에서 3D스크린은 대세가 됐다. 

2011년 당시 3D TV 시장 확보에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외 IT업계의 경쟁은 치열했다. 사진은 지난 2011년 5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D 산업 글로벌 강국 도약의 길' 전시회에서 LG전자와 삼성전자가 3D TV를 참석자들에게 선보이는 모습./ 사진=뉴시스

또한 그동안 화질 외엔 이렇다 할 혁신적 변화가 없어 정체돼 있었던 가정용 TV시장에도 3D TV 열풍이 불었다. 여기에 2012년 FIFA 월드컵이라는 대형 이벤트까지 발생하면서 3D TV 시장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대표 TV제조사들뿐만 아니라 일본의 소니, 파나소닉 등 수많은 글로벌 경쟁사들도 앞다퉈 3D TV 신모델들을 쏟아냈다. 지난 2010년 개최된 세계 최대의 전자·가전 박람회 ‘CES 2010’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3D TV제품 홍보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시장조사기관 등 전문가들 역시 3D TV 시장의 미래는 앞으로 ‘장밋빛’일 것이라는 긍정적 관측을 내놨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NPD DisplaySearch의 경우 2011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2019년까지 글로벌 3D 디스플레이 시장 규모는 2011년 대비 407.6% 증가한 670억 달러, 판매량은 344.9% 증가한 2억2,6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2012년 발간한 ‘글로벌 3D 디스플레이 시장 장미빛 성장 전망’ 보고서에 ”2011년 이후 3DTV로 즐길 수 있는 3D 콘텐츠 확충 및 TV 제조업체들의 전략변화로 3D TV 보급률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긍정적 전망을 내놨었다.

2011년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World IT Show 2011에서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부스에서 75형 세계 최대 3D 스마트TV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결국 돌고 돌아 ‘불편함’과 ‘콘텐츠 부족’”… 또 다시 몰락한 3D TV

그러나 이 같은 3D TV의 인기는 모래사장 위에 쌓은 성과 같은 것이었다. 1990년대 3D스크린이 대중들에게 외면 받았던 단점들인 ‘불편함’과 ‘콘텐츠 부족’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출시된 첨단 3D TV의 경우, 과거 3D스크린 제품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수한 화질을 자랑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3D 전용 안경을 쓰고 영화를 봐야한다는 불편함은 그대로였다. 

특히, 이미 시력교정용 안경을 쓰고 있는 관람객의 경우, 안경 위에 다시 3D안경을 써야하는 불편함에 3D영화를 멀리했다. 또한 3D 콘텐츠의 중심인 영화의 경우, 보통 2시간 이상의 장시간 동안 시청해야 하는 콘텐츠인데, 무거운 3D안경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고객들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이런 고객들의 불만에 안경을 쓰지 않고 볼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된 3D TV 등이 출시됐지만, 이 역시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3D 영상을 볼 수 없고, 오히려 영상이 2개로 나뉘어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불편함과 비싼 가격을 무릅쓰고 3D TV를 구매한다 하더라도 볼만한 콘텐츠가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2012년 월드컵이 끝난 이후 3D TV는 사실상 일반 TV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상파 4사(KBS, SBS, MBC, EBS)는 지상파 3D 실험방송 등을 통해 3D 콘텐츠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는 못했다. 또한 SK브로드밴드, KT 올레tv 등 이동통신사들 역시 3D TV콘텐츠 마련에 나섰으나 영화 등 3D전용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제외하곤 사실상 3D TV만의 장점을 부각시킬 콘텐츠는 전무했다.

이용 시의 불편함과 콘텐츠 부족이라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 3D TV는 소비자들에게 ‘비싸기 만한 애물단지’라는 비판을 받으며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가 지난 201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3D TV 판매율은 8.4%로 지난 2014년 54.4%에 달했던 점유율이 2년 만에 46%p가량 급락했다.

시장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3D TV는 세계 TV 시장에서 퇴출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외 대형 TV제조사들은 2016년 3D TV 생산을 중단했다. 이후 일본의 소니가 2017년을 마지막으로 3D TV 제조 중단 선언을 하면서 3D TV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3D TV는 불편함과 콘텐츠 부족으로 몰락했다. 3D TV의 바통을 이어받은 실감 콘텐츠 미디어인 VR과 AR 역시 콘텐츠 부족과 기기의 불편함 등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 3D TV의 바통 이어받은 VR·AR… 약점 극복할 수 있을까

3D TV는 과거 선배였던 ‘3D스크린’이 가졌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똑같은 길을 걸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실감나는 입체 영상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지속되고 있으며, 2021년 현재도 3D TV의 바통을 이어받은 새로운 영상 기술들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커지고 있다. 바로 ‘VR과 AR(가상·증강현실)’ 기술이다.

하지만 VR과 AR 역시 3D TV와 3D스크린이 가졌던 불편함과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VR과 AR의 경우 각각 HMD, AR글래스 등의 기기를 활용해야 하는데, 이는 과거 3D 안경처럼 불편하다. 또한 콘텐츠 역시 아직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VR 콘텐츠는 3D의 가상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용량의 데이터를 이용하지만 정작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길어야 20분에서 30분에 불과하다. 이는 AR 역시 마찬가지다. DMC리포트가 발표한 ‘2018 모바일 게임 이용행태' 보고서에 따르면 AR 게임 이용률이 2017년 23.8%에서 1.0%로 대폭 감소했다. AR 게임의 설치율 역시 50.2%에서 6.4%로 포켓몬 고의 유행이 끝남에 따라 급락한 것이다. 

결국 비싼 AR글래스나 VR용 HMD를 구매해도 별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없다고 소비자들이 느낀다면 언제든 3D TV처럼 언제든 외면 받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IT분야 전문가들도 VR·AR이 향후 시장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더 많은 콘텐츠 확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7월 개최된 ‘제1회 VR·AR 글로벌 비대면 컨퍼런스 2020’에서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 김정현 교수는 “최근 일반 소비자들의 영역에서도 VR·AR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부쩍 늘고 있으나 여전히 진입장벽은 높다”며 “어렵고 전문적인 콘텐츠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용 가능한 ‘라이트 실감형 콘텐츠’의 발굴도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영상 매체의 새로운 혁명을 부를 것으로 기대 받았던 3D TV. 하지만 미디어·콘텐츠 시장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편리하고 재미있는’을 갖추지 못해 결국 쇠퇴의 길을 걷고 말았다. 현재 떠오르는 VR·AR 역시 3D TV의 교훈을 통해 보다 편리한 기기, 그리고 풍부한 콘텐츠를 갖춰 시장경쟁력을 확보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