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교내 기숙사 휴게실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음을 맞았다. 2019년 8월 9일 서울대 공학관 직원 휴게실에서 한 노동자가 숨진 지 2년 만에 또 다시 일어난 비극이었다. 노동계에선 노동환경의 열악한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비극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시사위크>에선 청소노동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며, 노동현실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 6일 오후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만난 한 청소노동자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 /이미정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을 계기로 청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열악한 휴게공간 문제도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휴게공간 문제는 십수년간 문제 제기가 이뤄져왔지만 현장 내 개선 속도는 더딘 실정이다.  

◇ “땀 비 오듯 흐르지만, 쉴 공간 없어 서성여” 

“아침에 출근해 화장실 청소를 서둘러 마치고 나면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오전 주요 업무를 마치고 잠깐만이라도 숨을 돌리고 싶지만 쉴 곳이 마땅히 없다. 지하에 있는 대기실에 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 그저 건물 안을 서성이곤 할 때가 많다.” 

지난 6일 오후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만난 여성 청소노동자 김정희(가명) 씨의 말이다. 김씨는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한다고 한다. 학생이나 교수, 교직원 등이 오기 전에 서둘러 화장실 청소를 끝내기 위해서다. 김씨는 “정시에 출근을 하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중에 사람들이 들어온다”며 “쫓기면서 일을 하면 더 힘들어, 차라리 1시간 일찍 출근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바쁘게 오전 업무를 마친 김씨는 잠시라도 쉬면서 커피나 간식을 먹고 싶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다고 한다. 마땅히 쉴 공간이 없어서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건물동 층엔 휴게공간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김씨는 “예전엔 여자 화장실 한켠에 청소도구를 놓고 걸레를 빠는 공간이 있어 그곳에 의자라도 갖다놓고 쉬었는데, 그마저도 화장실 공사를 하면서 없어졌다. 남자화장실엔 그런 공간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쪽에선 쉬긴 껄끄러워 가진 못 한다”고 토로했다. 

해당 건물 지하층엔 미화원 대기실 공간은 존재한다. 하지만 근무시간 중에 해당 공간을 이용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 한다. 김씨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지하 대기실까지 가려면 계단을 통해 가야 한다”며 “잠깐 쉬겠다고 수십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더 힘이 든다. 게다가 관리자들이 근무 시간 중에 대기실에서 쉴 경우엔 눈치를 줘 대기실은 점심 때 외엔 내려가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물 층 중간에 의자라도 놓고 쉴 수 있으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지하에 위치한 대기실도 청소노동자에겐 제대로 된 쉼터 공간을 하진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날 기자가 방문해 직접 본 미화원 대기실은 지하 계단 바로 아래 위치해 있었다. 쪽방을 연상케 하는 대기실을 8명 가량의 노동자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동국대학교 한 건물동 지하층 계단 밑 공간에 마련된 휴게공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천장이 낮아져 제대로 설 수 없는 구조다. /이미정 기자

이날 대기실엔 2~3명의 노동자들이 쉬고 있었다. 지하에 공간이 위치하다보니 창문은 없었다. 환기는 낡은 환풍기 하나에 의지하고 있었다. 한 노동자는 “곰팡이 냄새가 심한데 환풍기라도 계속 돌리지 않으면 답답해서 못 있는다”고 토로했다. 벽 한쪽엔 구형 에어컨이 달려 있었으나, 시원한 바람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기실 공간은 독특한 구조를 띠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층고가 낮아졌다. 계단 구조물 밑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보니,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다. 기자가 허리를 펴고 서려고 하자 천장이 머리에 바로 닿았다. 겨우 허리를 숙이고 들어간 뒤에야 안쪽 어두컴컴한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노동자들은 “천장이 낮아서 머리를 찧은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안쪽에 들어갈 땐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 화장실서 쌀 씻는 청소노동자들… “그마저도 눈치 보여”    

대기실 공간 한편엔 밥솥과 식기류들이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오거나 간단하게 밥을 해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싱크대나 탕비실 공간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에 화장실에서 쌀을 씻거나 설거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노동자들은 토로했다. 

청소노동자인 오종익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동국대시설관리분회 사무국장은 “지금은 방학 중이라 학생들이 많이 안 와 사정이 낫지만 학기 중엔 화장실에선 쌀을 씻으면 눈치가 보일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동국대는 2019년 서울권 사립대학 최초로 용역체 소속인 청소노동자들을 직접고용했다.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외치며 수년간 치열한 투쟁을 벌인 결과다. 당시 노동자들은 열악한 휴게공간 문제 해소도 요구했지만 직접고용이 이뤄진 현재까지도 개선 속도는 더딘 모습이다. 

오종익 사무국장은 “학교 측에서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수년간 휴게공간이 개선된 곳은 1곳에 불과하다”며 “대학 건물동 대부분의 휴게시설은 열악한 상황이다. 최근엔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뒤, 학교 측에서 실태 점검을 하겠다고 했지만 개선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숭실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쉬고 있는 휴게공간./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숭실대시설관리분회

이 같은 열악한 휴게 공간 문제는 비단 해당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대학들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휴게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기실 공간도 대부분 지하층 계단 밑에 열악한 형태로 마련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이어 “최소한 인간답게 쉴 수 있는 휴게공간 마련을 오랫동안 요구했지만 개선 속도는 더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확인된다. 유하진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숭실대시설관리분회장도 “우리 학교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며 “화장실 공간에서 의자 하나 갖다놓고 쉬거나 에어컨도 없는 대기실에서 선풍기 바람에만 의존한 채 쉬고 있다”고 토로했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자가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청소노동자들은 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학 뿐 아니라, 공기업, 사기업, 병원, 지하철 등 여러 공동시설 청소노동자들의 휴식공간은 계단 밑이나 창고 등 열악한 공간에 마련돼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없는 게 허다하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김선기 민주노총 일반노조 교육선전실장은 “다른 업권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지방으로 갈수록 제대로 파악조차 안 될 정도로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근 휴게공간 설치를 의무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는 휴게시설을 설치해야 하며, 휴게시설 설치·관리를 불이행한 경우 별도의 제재가 가능하다. 이번 법안 통과를 계기로 청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시설 공간 문제가 개선될 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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