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아역들의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인신매매 조직에게 납치된 아이 역할을 소화한 박소이 스틸컷. /CJ ENM
스크린 속 아역들의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인신매매 조직에게 납치된 아이 역할을 소화한 박소이.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이제 스크린 속 ‘아역’은 더 이상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대신하는 ‘조연’에 머무르지 않는다.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캐릭터로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사의 중심에 서서 극을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성인 연기자도 감당하기 힘든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이들은 어린아이가 아닌 ‘배우’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6월 30일까지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흥행 성적 상위 25편(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제외)을 대상으로 아역배우가 출연한 작품(단역 제외)을 살펴봤다. 

먼저 지난해 상위 25편 중 11편에 아역배우들이 출연했고, 주요 캐릭터로 활약한 작품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반도’ ‘담보’ ‘클로젯’ ‘소리도 없이’ 등 5편이었다. 올해는 6편의 영화에 아역배우들이 참여했고, 이 중 ‘발신제한’ ‘고백’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아이들은 즐겁다’ 등 4편의 영화에 주조연급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 중 대부분의 영화에서 아역배우들은 주로 범죄에 연루되는 캐릭터를 맡거나, 부모와의 이별이나 학대 등 시련을 겪으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역할을 소화했다.

지난해 여름 개봉해 코로나19 발발 후 국내 영화 중 최고 스코어를 기록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황정민 분)과 그를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이정재 분)의 처절한 추격과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극 중 황정민은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향한 태국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이정재와 끝없이 대치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치열한 혈투가 벌어지는 동안 딸 유민을 연기한 아역배우 박소이는 장기적출 수술대에 눕기도 하고, 어둡고 갑갑한 여행가방 안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피 칠갑을 한 어른들 사이 간신히 살아남아 죽어가는 아빠 황정민을 바라본다. 

아역배우들은 주로 범죄에 연루되는 캐릭터를 맡거나, 부모와의 이별이나 학대 등 시련을 겪으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역할을 소화했다. /CJ ENM, 리틀빅픽처스
아역배우들은 주로 범죄에 연루되는 캐릭터를 맡거나, 부모와의 이별이나 학대 등 시련을 겪으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역할을 소화했다. /CJ ENM, 리틀빅픽처스

지난 6월 개봉한 ‘발신제한’에서도 아역배우의 수난이 이어진다. 은행센터장 성규(조우진 분)가 아이들을 등교시키던 출근길 아침, ‘차에서 내리는 순간 폭탄이 터진다’는 의문의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를 받으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성규 아들 역의 김태율은 폭탄이 설치된 차 안에서 다른 차량이 폭파되는 것을 목격하며 공포를 느끼는 것부터 다리에 유리 파편이 박혀 피를 흘리는 고통까지 극한의 감정을 표현해내야 했다. 

지난 2월 관객과 만난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영화 ‘고백’은 직접적인 폭력 장면이 나오진 않지만, 피해 아동 보라를 연기한 감소현은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앞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고,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빠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이의 불안한 심리를 그려내야 했다. 이 밖에도 ‘소리도 없이’ ‘담보’가 아동의 납치‧유괴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클로젯’은 공포물로 다수의 아역배우들이 섬뜩한 분위기를 유발한다.

물론 아역배우들이 스토리 전체를 상기하거나, 해당 장면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를 갖고 촬영에 임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세부적으로 나누어 촬영이 진행돼 감정을 지속하는 시간이 짧을뿐더러, 직접적인 상황 제시가 아닌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대체 상황을 만들어 유사 감정을 이끌어낸다는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체 상황이더라도 아직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한 아동심리 전문가는 “아이들은 성인과 달리 충격적인 상황을 회피하거나 부인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자칫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지금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보다 그 기억이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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