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21대 국회 개원 후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 진행하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3건 발의됐다./그래픽=김상석 기자
21대 국회 개원 후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3건 발의됐다. /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지난 2000년 인사청문회법 제정 이후 21년 동안 이어져 온 인사청문회가 21대 국회에서도 손질 대상에 올랐다.

인사청문회는 공직 후보자의 직무 능력과 자질, 도덕성에 대해 공개 검증한다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역기능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야당은 ‘인사 참사’라는 프레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인사청문회를 정권 공격 도구로 활용했고, 여당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 정권 보호에 급급하면서 정쟁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후보자에 대한 능력 검증보다는 ‘신상털기’에 매몰됐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7년 7월 발간한 ‘국회 인사청문제도의 운영을 둘러싼 쟁점’ 보고서는 “그동안 국회 인사청문제도는 대통령의 고위공직자 인사권을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기능해 온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국회의 고위공직자 자질 검증이 업무 적격성이나 전문성 검증보다는 도덕성 검증에 치중되어 왔고, 인사청문회가 대통령의 인사권 견제보다는 여야간 정쟁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인사청문회법 제14조에 따르면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명백한 경우’에는 위원회의 의결로 인사청문회를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다”며 “따라서 이 조항에 근거하여 후보자의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할 소지가 큰 경우에는 인사청문회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이 같은 인사청문회의 폐단을 막자는 취지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3건 발의돼 있다. 개정안별로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자는 취지는 같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비공개 공직윤리청문회와 공개 공직역량청문회로 분리해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의 개정안은 도덕성 검증 비공개 청문 대상을 국방부 장관과 합동참모의장 후보자로 국한했다는 점이 홍 의원의 개정안과 다르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의 개정안은 ‘예비심사소위원회’를 신설해 사전에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자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역대 국회에서도 도덕성이나 사생활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정권교체로 여야가 바뀔 때마다 인사청문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 후보자 가족 인격 살해, 역량 검증 뒷전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측은 ‘국민 알권리 침해’와 ‘깜깜이 인사청문회’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나 홍영표·정성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 취지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19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던 김영우 국민의힘 전 의원은 여전히 소신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의원이 지난 2014년 8월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공직후보자의 자질 및 업무능력 등 공직자로서의 적격성 여부는 공개로 진행하되, 공직수행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공직후보자 및 그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사생활은 비공개로 진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김 전 의원은 19대 국회 당시 개정안 발의 이유에 대해 “인사청문회 때문에 공직후보자의 모든 가족이 인격 살해를 당하는 것은 안된다고 봤다”며 “후보자가 일을 잘 할 사람인지 역량 평가를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특히 배우자나 가족에 대한 공격은 너무 후유증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원은 ‘누가 여당이 되든 초당적으로 청문회법은 손봐야 한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저는 그런 소신을 갖고 있다”며 “인사청문회는 손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 교수는 정성호·홍영표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찬성 여부를 떠나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청문회가 지금까지 도덕성과 정책, 이념 검증 세 가지가 뒤섞여서 진영 논리로 진행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후보자의 능력은 정작 제대로 알기 힘들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청문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을 해야 된다”며 “청문회가 정책 중심의 검증이 돼야 한다고 보고 그런 의미에서 따로 절차를 둬서 도덕성 검증을 하는 것은 발전적이고 긍정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국민의 알권리 침해’ ‘깜깜이 청문회’ 우려와 관련해서는 “국회 정보위원회가 비공개 진행 후 여야 간사가 브리핑하는 것처럼 도덕성 관련 비공개 청문회에서 충분하게 여야 공방을 주고받고 청문회 종료 후 정리된 내용을 각 당에서 브리핑을 한다면 깜깜이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해 “그럴 필요는 있겠다”라고 동의하면서도 ‘실효성 담보’가 관건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노 교수는 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청문회 자체가 매번 그런 문제(도덕성 논란)만 갖고 싸우다가 실효성 있는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아왔다”며 “과연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 그런 것은 전혀 얘기가 안되고 예를 들어 ‘도자기를 밀수했느냐 안했느냐’ 이런 것만 가지고 싸우다가 끝나니까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 교수는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편은 적당히 하고 남의 편은 가혹하게 하고, 내가 하면 검증이고 상대편이 하면 네거티브가 되는 것”이라며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것에 대한 실효성을 과연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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