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의 끝을 아십니까 ⑦커피믹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인간 역시 이 같은 진리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숨이 다한 인간은 이내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각종 물건들은 어떨까.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물건들이지만, 우리는 그 끝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아주 잠깐, 너무나 쉽게 사용한 물건들 중 상당수가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 머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인간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무수히 많은 물건들, 그것들의 끝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믹스는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남긴다. /그래픽=권정두 기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믹스는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남긴다. /그래픽=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커피는 이 시대 우리 인류 최고의 기호식품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추정치이긴 하지만, 전 세계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커피가 무려 25억 잔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질 정도다. 그만큼 커피의 종류도 무궁무진하고 커피에서 비롯된 산업의 규모 역시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 역시 커피를 사랑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거리를 둘러보면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오는 게 커피 파는 곳이고, 편의점만 들어가도 무수히 많은 커피 제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나 물만 있으면 간편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커피믹스는 한국인의 커피사랑을 상징하는 존재다.

사실, 인간이 커피 한 잔의 즐거움을 누리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까다롭다. 커피는 심어진지 약 3년이 지난 커피나무에서 맺은 열매로부터 시작된다. 이 열매에서 외피와 과육, 내과피, 은피 등을 벗겨내면 비로소 ‘생두’를 얻을 수 있다. 커피열매에서 생두를 얻는 과정은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공정이기도 하다. 

이후 이 생두는 열을 가해 볶는 이른바 ‘로스팅’을 거쳐 ‘원두’가 된다. 이 역시 커피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공정이다. 이어 품종이나 생산지, 로스팅 등이 서로 다른 커피를 혼합하는 블렌딩, 원두 분쇄, 커피 추출 등의 공정이 이어지며 각각의 공정은 상당히 다양한 방식들로 이뤄져있다. 이렇게 추출된 커피는 바로 마시기도 하고, 여러 제조법을 통해 각양각색의 커피로 거듭나기도 한다.

커피믹스는 이러한 장대한 과정을 ‘초간편’으로 단축시켜 준다. 그저 봉지를 뜯어 컵에 담은 뒤 적정량의 물을 붓고 젓기만 하면 된다. 누구든 바리스타가 될 수 있고, 어느 곳이든 훌륭한 카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간편하게 즐기는 커피믹스가 필연적으로 남기는 것이 있다. 바로 ‘쓰레기’다. 커피와 설탕, 식물성 크림 등을 담고 있는 커피믹스 포장재질은 통상 ‘비닐’이라 불리는 폴리에틸렌이다. 내열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폴리에틸렌은 페트병의 소재이기도 하다.

폴리에틸렌은 분리배출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커피믹스 포장재는 그 특성상 분리배출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커피믹스 포장재는 야외는 물론 각종 다중이용시설에서도 많이 발생하는데, 이때 분리배출이 이뤄지지 않는 게 다반사다. 특히 커피믹스 포장재는 크기가 크지 않다보니 더욱 무분별하게 버려지고 있다. 

이렇게 마구 버려진 커피믹스 포장재는 각종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썩는데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리고, 미세플라스틱이 되기도 한다. 버리는 사람에겐 15cm 남짓의 커피믹스 포장재 하나일 순 있지만, 전체적인 규모를 따져보면 심각한 문제다. 5분 남짓한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지구에 남기는 쓰레기의 시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떠올려 볼 수 있다.

먼저, 커피믹스 소비를 자제하는 것이다. 커피와 설탕, 식물성 크림 등을 구비해 그때그때 타 마시면, 커피믹스 포장재 남발을 막을 수 있다. 다만, 이는 일부 대안이 될 수는 있어도 전면적인 대안이 되긴 어렵다. 

두 번째는 커피믹스 포장재를 생분해성 재질 등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아직까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커피믹스 생산업체 관계자는 “기능적인 부분을 비롯해 다양한 점이 충족돼야 하는데 아직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포장재 뿐 아니라 친환경을 위해 꾸준한 노력과 연구를 진행 중이므로 머지않아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은 커피믹스 포장재의 분리배출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에 해당한다. 간편한 커피 한 잔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선 최소한의 책임 또한 다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 커피믹스 포장재에 분리배출을 강조하는 문구를 삽입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도 긍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