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 알권리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그래픽=김상석 기자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 알권리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신상털기’ 인사청문회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내놓은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홍영표·정성호·김병주 의원은 지난해 21대 국회 개원 이후 각기 차례대로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자는 취지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홍영표 의원은 비공개 공직윤리청문회와 공개 공직역량청문회를 분리해 실시하도록 했고, 김병주 의원은 도덕성 검증 비공개 청문 대상을 국방부 장관과 합동참모의장 후보자로 국한했다. 정성호 의원은 ‘예비심사소위원회’를 별도로 신설해 사전에 비공개 도덕성 검증을 실시하도록 했다.

이들은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 청문회가 정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과 과도한 인신공격, 신상털기로 인해 자질·역량 검증이라는 청문회의 본래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그동안 걸림돌이 돼왔던 정권 교체에 따른 여야의 입장 변화 극복은 둘째치고 거센 반대 여론의 장벽부터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여론조사 결과 민심은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인사청문회 후보자 검증 방법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자의 76%가 ‘도덕성·정책 능력 모두 공개 검증’을 선택했다. 반면 ‘도덕성은 비공개 검증, 정책 능력은 공개 검증’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9%에 불과했다. ‘의견 유보’는 5%로 집계됐다. 

◇ “신상털기 인사청문회는 의원들 탓”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측은 주로 ‘깜깜이 청문회’ ‘국민의 알권리 침해’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한국정치학회 연구이사인 지병근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동안 청문회가 신상털기에 매몰됐던 것은 인사청문회법이 문제가 아니라 청문회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병근 교수는 “도덕성 검증이 비공개로 진행됐을 때 의원들의 담합에 의해서 관련 사실이 은폐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며 “또 여당 의원들이 청문회 대상을 보호하는 것에만 치우치는 역작용도 분명히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 교수는 “그동안 청문회가 신상털기에만 치우쳐 왔던 것은 의원들의 자세가 문제”라며 “법적인 제도의 분리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의원들 스스로 자성하고 제대로 된 역량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비공식적 규범을 스스로 창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역설했다. 지 교수는 “그런 노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도덕성 검증을 분리부터 해서 국민들로부터 보호막을 치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우려의 시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 교수는 “그동안 의원들이 청문 대상자를 모독하거나 피고인화하고 ‘질문한 것에만 답하세요’라는 식으로 몰아세우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며 “또 일방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든지 청문회장을 개인 홍보의 장이나 정쟁의 장으로 활용해왔던 것부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민선영 간사는 “정책 능력 검증과 도덕성 검증은 동시에 진행돼야 하는 부분”이라며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문제는 어떤 부분들이 논란이 됐었는지, 후보자가 이에 대해 얼마나 성실하게 답하고 소명을 했는지 국민 누구나 알수 있게 공개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 간사는 “지금 발의된 법안의 취지를 보면 과도한 신상털기와 이로 인한 정치 불신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이유로 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청문회를 만들었던 것은 질의를 한 국회의원 자신들의 문화에서 기인한 탓도 있다”며 “과도한 신상털기를 이유로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겠다는 법안 취지는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덕성 사전 검증은 청와대에서 할 역할이라고 규정하며 도덕성 검증 청문회를 비공개로 진행할 경우 그에 대한 기준 마련부터가 쉽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도덕성 검증 비공개 청문회는 당연히 반대한다”며 “만약 후보자가 위장전입을 했다든지 부동산 투기를 했다면 그것은 윤리의 문제냐, 범법의 문제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범법의 문제다. 여태까지 그런 것들이 주로 문제가 됐었다. 그런 것들이 꼭 도덕성, 윤리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정성호 의원의 개정안에 담긴 도덕성 사전 검증을 위한 비공개 ‘예비심사소위원회’ 신설에 대해 “사실 그런 건 원래 청와대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라며 “정부 기관들이 다 힘을 합쳐서 사전 검증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인사청문회 개최 이전에 언론에서 후보자 관련 도덕성 문제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제기될 것인데 국회에서는 의원들끼리만 비공개로 쓱싹해서 끝내면 일반 국민은 뭐가 되나. 그런가보다 하고 쫓아가야 하는 존재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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