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질’(감독 필감성)로 존재감을 드러낸 김재범. /NEW
영화 ‘인질’(감독 필감성)로 존재감을 드러낸 김재범. /NEW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대중에게 낯선 배우 김재범은 연극과 뮤지컬 등 무대를 넘나들며 탄탄히 내공을 쌓아온 18년 차 배우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공연계에서는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실력파다. 그리고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인질’(감독 필감성)을 통해 더 많은 관객 앞에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인질’은 어느 날 새벽, 증거도 목격자도 없이 납치된 배우 황정민(황정민 분)의 이야기를 담은 액션 스릴러다. 단편 ‘무기의 그늘’ ‘어떤 약속’ 등으로 주목을 받은 신인감독 필감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충무로 대표 배우 황정민이 ‘황정민’으로 분해 사실감 넘치는 액션스릴러를 완성했다. 

김재범은 인질범 조직의 리더 최기완으로 분했다.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인질’에 캐스팅된 그는 탄탄한 연기력과 개성, 흠잡을 데 없는 캐릭터 소화력으로 자신의 몫을 해내며 호평을 얻고 있다. 실제 살아있을 법한 생생한 인물을 완성시키며, 극의 리얼리티를 배가시켰다는 평이다. 

최근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김재범은 ‘인질’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호평에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호평이 아닌 혹평은 읽지 않고 있다”며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 섬뜩한 인질범 최기완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재범이 ‘인질’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NEW
김재범이 ‘인질’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NEW

“오디션 합격 소식에 펄쩍펄쩍 뛰었다”

필감성 감독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황정민을 제외한 캐릭터는 친숙한 배우가 아닌 스크린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들을 캐스팅했다.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오디션을 진행했고,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다섯 명의 인질범 조직이 완성됐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 최기완 역에 캐스팅된 김재범은 “오디션에 임할 때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허탈감과 상실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오디션 과정을 떠올렸다. 황정민의 추천으로 오디션에 참여하게 됐다는 그는 “황정민 선배가 직접 오디션 과정에 참여해 연기 호흡을 맞춰줬다”며 “정말 감사한 오디션 현장이었고, 떨어져도 대접받고 나온 느낌이라 서운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김재범은 치열한 과정 끝에 최기완 역에 캐스팅됐다. 그는 “합격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고, 천장을 뚫을 정도로 펄쩍 뛰었다”며 “가족도 정말 좋아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족 외에는 기쁜 소식을 알릴 수 없었다고. 그는 “빌런에 대한 정보를 숨겨야 했기 때문”이라며 “아내한테만 계속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그랬다. 지금은 속 시원히 얘기할 수 있어 기쁘다”고 웃었다. 

기쁨 못지않게 부담감도 컸단다. 18년 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매체 연기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작품에 폐를 끼칠까 봐 걱정됐다고. 김재범은 “무대는 18년을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알게 됐고 편안한데, 영화는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부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부담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함께 고민하고 조언해 준 동료들 덕이다. 그는 “많은 분들이 조언을 해줬다”며 “혹시 내가 잘못된 길로 가면 잡아주는 걸 보며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최기완이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 연기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든든한 분들이 옆에 계셔서 잘 해낼 수 있었다”고 제작진과 배우들을 향한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인질’에서 인질범 동훈과 기완으로 분한 류경수(왼쪽)과 김재범. /NEW
‘인질’에서 인질범 동훈과 기완으로 분한 류경수(왼쪽)과 김재범. /NEW

“근본 없는 자존감 거대한 최기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최기완은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극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치밀하고 섬뜩한 계산 아래 움직이다가도 예상 밖의 행동으로 당황함을 안기기도 한다. 기존 범죄영화에서 그려온 사이코패스 악역과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으로 화면을 압도한다. 

김재범은 최기완에 대해 “자존감이 거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근본 없는 자존감. 의리 따위는 없고 책임감도 없다. 대장인데 책임감이 전혀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잘났는데 내가 잘못된 건 이 사람 때문이야 이것 때문이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며 “안 그러면 이 세상에서 버틸 수 없으니까. 그게 점점 쌓이고 쌓이면서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됐다고 해석하고 접근했다”고 말했다. 

사이코패스 인질범의 심리를 이해하고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등 수많은 자료와 시나리오 안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김재범은 “일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되는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며 “내 기준이 아닌 그 사람들의 생각으로 접근해보자는 마음으로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고 이야기했다. 

또 김재범은 “인질범 다섯 명이 하나로 뭉쳐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안에서도 기완이 다른 캐릭터와 다르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2인자 염동훈(류경수 분)과 차별성을 둬야 했다. 2인자가 불같다면 기완은 얼음, 동적이라면 정적으로 가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더 다양한 활동을 예고한 김재범. /NEW
더 다양한 활동을 예고한 김재범. /NEW

“무대든 매체든, 연기엔 진실성 있어야 해”

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매체 연기가 낯설진 않았을까. 김재범은 “무대나 영화나 기본은 같다고 생각한다”며 “진실성이 있어야한다”고 연기 철학을 밝혔다. 이어 “물론 표현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며 “무대는 목소리도 커야 하고 발음도 또렷해야 한다. 영화는 덜어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뿐만 아니라 모니터를 해주는 감독, 많은 스태프들이 함께 해줘 어려움은 없었다. 과했다 싶으면 덜하면 됐고, 덜했다 싶으면 더 하면 됐다”고 말했다.

연극‧뮤지컬이 무대 위에 오른 배우가 오롯이 그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관객과 호흡한다면, 영화는 감독과 스태프, 배우가 의견을 나누고 함께 만들어가는 협업에 더 가깝다. 김재범은 “영화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조율해가며 장면 장면을 만들어가는 임팩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체에 대한 설계보다 장면에 대한 디테일을 담아내는 재미가 있었다”고 영화 작업의 매력을 꼽았다. 

김재범은 ‘인질’을 시작으로, 더 다양한 작품을 통해 대중과 만날 예정이다. “더 많은 분들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다. 어떠한 수식어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 ‘배우’ 김재범으로 불렸으면 좋겠다. 뭐든지 할 수 있는 배우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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