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심달기. /엣나인필름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심달기. /엣나인필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최선의 삶’(감독 이우정) 속 엉뚱하고 자유분방한 열여덟 아람은 세상에 무서운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씩씩한 성격이지만, 아빠의 계속되는 폭력으로 마음속 상처와 슬픔이 눈덩이처럼 커진 인물이다. 고양이부터 장갑까지, 버려진 모든 것이 자신처럼 외로워 보여 그들을 품는 아람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최악의 오늘도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책 속에만 존재했던 아람은 배우 심달기를 만나 살아 생생하게 숨 쉬는 인물로 완성됐다. 오랜 시간 이우정 감독과 의견을 나누며 자신만의 아람을 만들어갔고, 직접 의상을 준비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람의 상처와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잊고 있던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기도 하고, 언제나 마음속에 아람을 떠올리고 함께했다. 아람에게 미안하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었고,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개봉한 ‘최선의 삶’은 더 나아지기 위해 기꺼이 더 나빠졌던 열여덟 강이(방민아), 아람(심달기), 소영(한성민)의 선택을 담은 작품이다. 임솔아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신예 이우정 감독이 연출을 맡아 십대 시절의 불안하고 예민한 감정을 세밀하게 스크린에 옮겨냈다. 

심달기는 이번에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열여덟 아람을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인물로 완성해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천진난만하고 맑은 얼굴부터 가슴 깊이 뿌리박힌 아람의 아픔과 상처까지, 직접적인 설명이나 장면 없이도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 감탄을 자아낸다.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심달기는 “아람에게 미안하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었다”고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그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작품에 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 ‘최선의 삶’(감독 이우정)으로 관객 앞에 선 심달기. /엣나인필름
영화 ‘최선의 삶’(감독 이우정)으로 관객 앞에 선 심달기. /엣나인필름

-작품을 택한 이유는.
“시나리오를 처음 받은 게 2018년 여름이었다. 영화 ‘배심원들’을 촬영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그만큼 굉장히 흡입력 있는 시나리오였고, 현실에는 존재하지만 영화로는 본 적 없던 이미지, 장면들이 많이 떠올라서 정말 매력적이었다. 소설로 봤을 때는 더 깊고, 자세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었다. 작품의 태도가 착하지가 않은데 그 상태로 끝까지 간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고민도 없이 무조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1년 뒤 가을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이우정 감독이 원작소설을 읽자마자 ‘아람은 심달기’라고 했다고. 본인 역시 아람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와닿았는지, 처음 아람을 마주했을 때 느낌과 감정이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만 봤을 때는 아람의 핵심적인 감정선을 알기에는 당시에는 힘들었다. 아무래도 강이에게 더 이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아람을 할 수 있을까 막연한 걱정이 있었다. 아람은 내게 알쏭달쏭한 인물이었는데, 소설을 읽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더라. 신기하게도 감독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속에 있는 아람을 먼저 보신 거다. 나도 잊고 있던 아람과 닮았던 과거가 많이 떠올랐다. 감독님이 그걸 어떻게 알고 나를 아람으로 생각하셨는지 지금도 되게 신기하다.”

-어떤 면이 아람과 닮았다고 느꼈나. 
“일단 어릴 적 내 모습과 많이 닮아있는데,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버려진 물건이나 고양이에 대한 애착이다. 아람과 동기는 많이 다를 수 있지만 버려진 물건들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히 컸다. 어릴 때 밖에 나가서 버려진 물건이 있으면 꼭 가서 뒤져보고 하나씩 들고 오고 그랬다. 또 아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무섭기 때문에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이나 당하는 폭력에 대한 고통을 감각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람이 하는 선택들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고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나의 청소년기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나도 잊고 있었고, 모르고 있었는데 아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된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친구 관계에 있어서도 특히 청소년 시기에는 서열이 뚜렷하게 존재하잖나. 극 중에서 소영이 서열 가장 위에 있고 강이가 가장 밑에 있는 인물이라면, 아람은 그 어디에도 없이 서열 밖에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도 굉장히 많이 닮아 있었다.”  

‘최선의 삶’에서 상처를 간직한 열여덟 아람을 연기한 심달기(오른쪽) /엣나인필름
‘최선의 삶’에서 상처를 간직한 열여덟 아람을 연기한 심달기(오른쪽) /엣나인필름

-아람에게 미안하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었다고.  
“아람에게 미안하지 않는 게 중요했던 이유는 우선 아람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폭력적인 환경이나 위험한 상황에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감각하지 못하는 지경인 인물이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보여야만 하는데,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는 정도로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폭력적인 장면이나 아람이 호소를 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에 상상으로만 가져가야 하는 거라서 계속 그 마음을 놓지 않고 아람의 어두운 내면을 계속 상기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래야만 될 것 같았고 그래서 힘들기도 했다. 아람에게 미안하지 않은 연기를 해냈냐고 한다면 자신 있게 해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아람에게 그게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람에게 어른의 말이 과연 필요할까, 유효할까. 절대 아닐 것 같다. 아람도 사실 정답을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 그걸 행동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본인의 방식대로 생존하고 있는 아이라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을 것 같다.” 

-‘최선의 삶’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섬뜩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모두 지나온 시기이기도 하지만, 살다 보면 금방 잊게 되고 좋은 기억으로만 남게 되잖나. 실제로 그 속에서는 고통스러웠다는 걸 일깨웠으면 좋겠다. ‘최선의 삶’에는 판타지가 없다. 그래서 더 특별한 영화다.”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배우 심달기. /엣나인필름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배우 심달기. /엣나인필름

“납득하지 못한 대사 뱉는 연기하고 싶지 않아”

심달기는 연극배우로 활동해온 부모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접했다. 학창 시절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역량을 키울 수 있었고, 연기를 공부하는 대신 느낀 그대로 꺼내어 보여주는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 심달기는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배우가 됐다. 

2018년 단편영화 ‘동아’를 시작으로, 넷플릭스 ‘페르소나-키스가 죄’(2018), ‘보건교사 안은영’(2020), 올해 초 개봉한 그의 첫 장편영화 ‘더스트 맨’, 이번 ‘최선의 삶’까지 매 작품 어떤 역할을 맡아도 실제 살아있을 법한 인물을 완성하며 ‘날 것’ 그대로의 연기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부모님이 연극을 하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 무대에서 연기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부터 흥미가 생겼고 그러다 중고등학교 때 영화에 관심이 많아져서 막연하게 영화 관련 종사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 학교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걸 보고 배우를 모집하는 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려보라고 해서 올렸는데, 그게 인연이 돼서 단편을 찍게 됐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 배우가 돼있는 것 같다.” 

-대안학교에 다녔던 청소년 시절이 배우 심달기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
“대안학교에 가게 된 것도 내가 선택을 한 거였다. 우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하게 하지 않았다. 나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걸 억지로 하는 걸 굉장히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편이다. 일반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 자세를 똑바로 하는 걸 강요받는 게 싫었다. 자세를 똑바로 하지 않았을 때 혼나는 게 싫었는데, 대안학교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 걸 무리해서 억지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 굉장히 잘 맞았다.” 

-이후 대학교 진학을 택하지 않았는데, 전문교육기관에서 연기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 한 선택이었나. 
“어릴 때 연기과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재밌어 보이는 거다. 나도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막연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우리 엄마 아빠가 하지 말라는 게 없는 편인데 그건 안 된다고 하셨다. 연기를 배우는 건 안 된다고. 좋은 선택, 결정이었던 것 같다.”

매 작품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심달기. /엣나인필름
매 작품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심달기. /엣나인필름

-구체적으로 덧붙이자면. 
“우선 내가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반대는 아니었다. 누구보다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분들인데, 연기를 배우게 되면 정형화되기 때문에 나의 연기를 망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연기 레슨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그 레슨이 내게는 오히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무마시켜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험성을 부모님이 느끼셨던 것 같다. 그만큼 나에 대한 가능성이나 나의 연기를 나보다 먼저 알고 계셨던 분들이다. 그래서 과분한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 칭찬을 믿기 힘들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가 있어서 언제나 자신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홀로 연기를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나.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필요를 느껴서 따로 그런 시간을 가져본 적은 없고, 어릴 때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면서 좋아하는 배우들의 특징이나 연기를 자연스럽게 닮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인상 깊게 느꼈던 배우들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추구하게 된 것 같다.” 

-어떤 배우가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궁금하다.
“‘12 몽키즈’(1996) 속 브래드 피트. 작품 자체가 정말 인상 깊었다. 최근에는 ‘미나리’(2021) 한예리 선배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큰 용기가 됐던 것 같다.”

-용기가 됐다는 것은 본인이 추구하는 연기 스타일과 닿아있다는 점에서였을까.
“맞다. 내가 하고 있는 게 맞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되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절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런 연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보여주셔서 팬으로서 굉장히 고마웠다.”  

-연기를 할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일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내가 납득하지 못한 말을 내뱉는 순간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기하고 있는 배우도 이해하지 못한 말들을 대사로 뱉는 순간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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