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IT기술의 진화는 우리에게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사이버 스토킹이라는 심각한 디지털 범죄의 급증이라는 문제를 야기시켰다. 특히 사이버 스토킹은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성범죄, 살인 등 중범죄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대책이 시급하다./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정보통신기술(IT)의 진화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 줬다. 예전엔 직접 편지를 쓰고 며칠을 기다려야 들을 수 있었던 상대방의 소식은 이제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 하나로 가능해졌다. 또한 스마트폰, 컴퓨터 등 이전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첨단 IT기기들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용·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IT기술의 초고속 진화를 따라 어두운 그림자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바로 ‘디지털 성범죄’다. 불법 촬영물 유포, SNS(사회 연결망 서비스)를 악용한 ‘n번방’과 같은 성착취 사건이 대표적 예다. 

여기서 최근 들어 점점 심각한 디지털 범죄로 불거지고 있는 것은 바로 ‘사이버 스토킹’이다. 과거 오프라인에서만 발생했던 스토킹 범죄는 이제 IT기술의 진화와 함께 온라인에서 더욱 교묘하고 위험하게 진화하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 급증하는 ‘사이버 스토킹’ 피해… 20대 여성 10명 중 8명이 당했다

‘사이버 스토킹’이란 이동통신·이메일·대화방·게시판 등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의도와 악의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포감·불안감 등을 유발하는 행위다. 사이버 스토킹 범죄자들은 상대방 의사에 반해  편지·전화·컴퓨터통신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말, 글, 사진, 그림 등을 전달한다. 

특히 최근 들어 SNS, 탤레그램 등 다양한 정보통신망 서비스의 이용이 급증하면서 사이버 스토킹도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여성가족위원회에서 지난 3월 발표한 ‘온라인 스토킹의 실태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10개 카테고리의 사이버 스토킹 사례 중 1개 이상을 경험해 봤다고 답한 응답자는 903명(20대 여성) 중 715명으로 79.2%에 달했다.

피해 경험 중 가장 많았던 유형은 전체 응답자의 56.8%를 차지한 ‘내 정보를 알아내 저장한 것’이었다. 이어 △사생활을 알아내려 한 경우 (56.4%) △내가 원치 않는 글이나 이미지 음향(54%) △허락 없이 내 개인정보를 사용한 경우 (41.1%) △내 개인정보를 유포한 경우(40.3%) 순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이버 스토킹 범죄 행위가 심각해질 경우, 디지털 성범죄나 오프라인 성범죄, 더 나아가 살인 등의 심각한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지난 3월 발생해 전 국민을 경악시킨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역시 사이버 스토킹이 시발점이었다. 

사건의 가해자 김태현(24)은 지난해 11월 피해자 A씨와 온라인 게임 상에서 처음 만난 후 지속적으로 스토킹을 시작, 올해 1월부터는 오프라인 스토킹까지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스토킹의 실태 및 대응 방안’ 보고서 연구기관인 한국여성정치연구소는 “온라인 스토킹은 디지털 성범죄의 한 갈래이자 전통적 성범죄의 전조 단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급증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는 온라인 공간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형태로 발생하고 기존의 전통적 유형의 성범죄와 병행되어 피해 규모 역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현실처럼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는 누구나 쉽게 계정을 만들고 인터넷을 통해 접속이 가능하다. 이런 접근성은 동시에 메타버스를 디지털 성범죄와 사이버 스토킹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 발전하는 가상현실 ‘메타버스’… 사이버 스토킹 그림자도 드리워

심각한 것은 이처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사이버 스토킹의 위협 범위가 앞으로 게임, SNS를 넘어 더욱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올해 IT 최대 트렌드 중 하나인 ‘메타버스(Metavers)’ 때문이다.

현실처럼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는 누구나 쉽게 계정을 만들고 인터넷을 통해 접속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다양한 전 세계의 사람을 실시간으로 만나 다양한 문화를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메타버스의 실시간 소통 기능의 장점은 디지털 성범죄와 사이버 스토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범죄자’가 포함될 가능서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 메타버스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와 사이버 스토킹 범죄가 발생한 사례도 존재한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성 착취 범죄를 저지르던 남성이 캘리포니아 경찰에 체포된 것.

지난 8월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해당 남성은 로블록스에서 만난 12세 여자 아이에게 자신이 13세 소년이라고 거짓말을 한 후, 연락처를 알아내 지속적으로 음란 문자와 사진을 보내며 스토킹을 저질렀다. 현재 해당 남성은 여아의 어머니가 딸의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한 후 FBI 측에 신고하면서 체포된 상태며, 미 법원에서는 보석없이 수감하라는 명령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입법조사처 정준화 입법조사관은 ‘메타버스(metaverse)의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 “메타버스는 개인간 상호관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모욕・비하・인신공격과 같은 개인 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특히 주요 이용자인 10대에 대한 아바타 스토킹, 아바타 몰카, 아바타성희롱 등의 아동 성범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스토킹이 향후 더욱 심각한 범죄의 전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처벌 방안이 부족한 실정이다./ 사진=Gettyimagesbank

◇ 규제 법률 있지만 현실적으로 스토킹 성립 및 신고 어려워… 대안 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이버 스토킹이 향후 더욱 심각한 범죄의 전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처벌 방안이 부족한 것은 큰 문제라고 꼬집는다.

현재 사이버 스토킹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인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불법정보의 유통금지)’로 규제가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적은 횟수의 스토킹으로는 사이버 스토킹 성립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전문가들 설명이다.

피해자가 사이버 스토킹으로 신고하는 과정이 상당히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사이버 스토킹이 주로 발생하고 있는 SNS 플랫폼의 경우, 대부분 서버가 해외에 있기 때문에 가해자를 추적하는 게 어렵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치연구소에서 발표한 ‘온라인 스토킹의 실태 및 대응 방안’ 보고서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스토킹 피해를 경찰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나, 경찰에 사건을 접수하고 수사를 의뢰하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경찰로부터 온라인 스토킹이 발생하는 SNS 플랫폼 대다수가 해외 서버이므로 조사가 어렵다거나 온라인 스토킹 가해자의 신원을 특정할 수 없어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 접수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는 사이버 스토킹의 위험성을 인지해 지난 3월 24일 본회의에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대안)’이 통과시켰다. 다만 해당 법안이 사이버 스토킹을 규제할 근거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는 있으나, 사이버 스토킹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이 담기진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는 “스토킹 범죄의 정의가 매우 협소해,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이버 스토킹의 다양한 행위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며 “스토킹 범죄가 성립되는 조건인 ‘반복적’이라는 의미가 불명확할뿐더러 사이버 스토킹의 경우 1회만으로도 심각한 피해가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보통신망법, 성폭력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 또한 사이버 스토킹 범죄와 일부 관련 있어 보이나, 스토킹 행위 자체를 규제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제한점이 따른다”며 “사이버 스토킹은 온라인이라는 매체적 성격과 특성을 고려한 다른 대응 방안을 필요로 한다”고 조언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길거리에서 소매를 스치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이라도 전생(前生)의 깊은 인연(因緣)에 의한 것임을 의미하는 불교 속담 중 하나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 중요하다고 해서 반드시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상처를 줄 수 있는 집착은 ‘인연’이 아니라 ‘악연’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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