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오성이 영화 ‘강릉’(감독 윤영빈)으로 관객 앞에 선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배우 유오성이 영화 ‘강릉’(감독 윤영빈)으로 관객 앞에 선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유오성이 영화 ‘강릉’(감독 윤영빈)으로 관객 앞에 섰다. 특유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따뜻한 인간미를 더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성, 건재함을 과시했다. 올해로 데뷔 30년 차를 맞은 그는 이 작품으로 인생 3쿼터의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었다. 

영화 ‘강릉’은 강릉 최대의 리조트 건설이라는 인생 역전 사업을 둘러싼 서로 다른 조직의 야망과 음모, 그리고 배신을 그린 액션영화다. 국내 최대 관광지이자 항구도시 강릉을 배경으로 두 조직 간의 치열한 대립이 펼쳐진다. 

오늘(10일) 개봉한 ‘강릉’은 예상을 빗나간 전개와 입체적인 캐릭터로 색다른 ‘낭만 누아르’를 완성, 호평을 얻고 있다. 거칠고 서늘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정통 범죄 액션 누아르의 클래식한 매력을 물씬 풍기면서도, ‘한국형 조폭물’의 클리셰를 완전히 비트는 신선함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그 중심엔 주인공 길석이 있다. 극 중 길석은 평화와 의리를 중요시하는 강릉 최대 조직의 2인자로, ‘낭만’이 살아있는 인물이다. 단단하고 묵직한 카리스마와 힘을 지녔지만, 그 힘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휴머니즘까지 갖춘 복합적인 인물로, 극에 깊이와 매력을 더한다.

길석은 유오성을 만나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완성됐다. 서 있기만 해도 화면을 장악하는 독보적인 존재감과 강렬한 카리스마는 물론, 투박하고 거칠지만 순박하고 따뜻한 매력으로 길석을 완성하며 관객을 매료한다. 사투리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길석은 유오성이어야만 했다.    

1992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뒤, 30년간 연기자로 살아온 그는 최근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나 “‘강릉’은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 소중함을 알려준 작품”이라며 “앞으로 배우 인생에 기준점이 되는 영화로 남을 듯하다”고 애정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유오성이 영화 ‘강릉’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유오성이 영화 ‘강릉’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작품을 택한 이유는. 
“2017년 모 영화 시사회장에서 윤영빈 감독을 만나 이 작품에 관한 회의를 했다. 그 전에 시나리오를 먼저 받았는데, 정서가 투박해서 좋았다. 내가 강원도 사람인데, 강원도의 정서를 담은 영화들이 별로 없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강원도 사람의 정서가 잘 전달됐고, 평소 누아르 장르를 선호하기도 해서 선택하게 됐다.”

-누아르 장르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릴 때 ‘비트’(1997)를 찍었을 때는 정신없이 했다. 영화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연기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배워나가는 과정이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어설펐겠나. 잘 모른 채로 그냥 하는 거였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염세적이 되는 것 같은데, 누아르가 갖고 있는 기본 정서가 페이소스라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연민, 회한 등의 정서를 가진 장르를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길석은 어떻게 다가왔나.
“캐스팅 비하인드인데,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길석이 아니고 다른 역할이었다. 그런데 내가 감독을 설득 아닌 설득을 해서 길석을 하게 됐다. 각 인물들이 20대나 30대 초반의 배우들이 하기엔 관객을 납득하는데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작품을 보고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뻔뻔하게 얘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길석이 주인공이지만 주변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이야기가 전달된다는 점도 참 좋았다. 시나리오가 워낙 탄탄했다.”

-길석의 어떤 면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20대, 30대 때는 어떤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뭔가를 많이 발산한다. 그런데 길석은 발산하지 않는 인물이라 좋았다. 나도 발산시키지 않고 전달을 해볼 만한 나이가 됐다고 생각했다. 부산하지 않고 조용해 보여서 좋았고, 표현해 보고 싶었다.”

‘강릉’에서 길석을 연기한 유오성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강릉’에서 길석을 연기한 유오성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강원도 사투리 연기도 인상적이었는데. 
“강원도 말을 두고 국자 모양이라고 한다. 춘천과 원주는 거의 표준말을 쓰고, 경상북도 위쪽 지방과 연이어 있는 강원도 지역의 말투가 비슷하다. 억양에 대한 차이가 있지, 단어 자체에는 사투리가 별로 없다. 나도 강원도 출신이고, 감독도 강원도 강릉 사람이라 나름대로 검증을 받고 훈련도 받고 그랬다.” 

-클리셰를 벗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누아르 작품과 다른 ‘강릉’만의 차별화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느림이라고 본다. 보통 누아르라고 하면, 음모와 배신, 복수 등이 다 들어가 있다. 어떤 하나의 영화적 문법일 거다. 그 안에서 ‘강릉’만의 매력은 여유와 느림이다. 그리고 각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에 인생이 녹아있다. 일반적인 누아르의 섬뜩함보다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많이 배치돼있다고 생각한다.”

​유오성이 연기 인생을 되돌아봤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유오성이 연기 인생을 되돌아봤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비트’ 때와 지금의 유오성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때도 좋은 건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지금도 뭐 없다. 배우라는 직업은 계속 배워나가야 한다. 크리에이터가 아닌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주어진 것을 분석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는 자세로 정진해야 한다. 그래서 그때 뭐가 좋았고 지금 내가 유리한 점이 무엇인지 그런 건 없다. 냉정하게 말해서 내가 이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고, 잘 해내야 하는 일이라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마음으로 해내가고 있다.”

-‘강릉’을 통해서는 무엇을 배웠나.
“처음 감독 미팅을 하고 나서 영화 촬영이 끝나고 개봉까지 걸린 시간이 4년 6개월이다. 50대 초반에 만나 중반까지 함께 한 작품이다. 27살에 이 일을 시작하고 4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작품은 없었다. 그래서 자랑스럽고 소중한 작품이다. 또 그 과정을 통해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참 녹록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역시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걸 확시맇 알게 됐다. 윤영빈 감독이 쫓기듯 촬영하는 타이트한 스케줄 속에서도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이탈자 없이 끝까지 해냈다. 감독의 몫이 거의 100%라고 본다. 이번 영화를 통해 배우의 예술은 연극이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게 됐다.” 

-어느덧 연기 인생 30년이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면. 
“민망하다. 나이는 가만히 있어도 먹는 거니까… 이제 내 인생의 3쿼터가 시작됐다고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그냥 지금까지 해온 길을 돌아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희망도 보고 즐거움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힘듦도 있었다. 3쿼터가 시작됐는데, 이제부터 다시 열심히 연기하는 연기자로, 한 가정의 가장이자 남편, 아버지로서 인생을 잘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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