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체이탈자’(감독 윤재근)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박용우.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영화 ‘유체이탈자’(감독 윤재근)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박용우.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박용우가 영화 ‘유체이탈자’(감독 윤재근)로 관객 앞에 섰다. 부드럽고 선한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그는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고 악랄하고 서늘한 악역을 완성,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유체이탈자’는 기억을 잃은 채 12시간마다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한 남자가 모두의 표적이 된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추적 액션으로, ‘범죄도시’(2017) 제작진이 선보이는 작품이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 초청 및 전 세계 107개국 선판매는 물론, 할리우드 리메이크까지 확정되며 개봉 전부터 주목받았던 ‘유체이탈자’는 지난달 개봉한 뒤 꾸준히 관객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박용우의 활약이 돋보인다. 극 중 이안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국가정보요원 박실장을 연기했다. 박실장은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안을 몇 번이나 치명적인 위기로 몰아세우는 인물로, 극적 긴장감을 자아내는 역할을 한다. 

박용우는 박실장의 집요한 면모부터 남다른 비밀을 간직한 미스터리함까지 내밀하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더욱 입체적이고 예측불허한 인물로 완성,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강렬한 빌런’을 탄생시켰다는 평이다.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더욱 무게감 있는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증량을 감행한 것은 물론, 꾸준한 훈련으로 강도 높은 액션을 완벽 소화했다. 또 인물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며 얻은 아이디어로 디테일과 살을 붙이며 박실장의 비워진 부분을 스스로 채워나갔다. 

최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박용우는 “빌런은 인간의 연약함을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라며 “박실장의 연약함은 피해의식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박용우가 ‘유체이탈자’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박용우가 ‘유체이탈자’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시사회 후 이 작품을 두고 ‘각별하다’고 했다. 어떤 의미였나. 
“배우로서 어떤 작품이든 똑같이 각별하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시국에 개봉하는 영화라, 나뿐만 아니라 감독님 이하 모든 배우들이 각별했을 거다.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시국에서 시사회도 하고, 무대 인사도 하고 그래서 더 특별한 감동이 있었고 뭉클했다.” 

-박실장은 어떤 인물이었고,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디테일한 부분보다 감정적으로 메인타이틀을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출발점이었고 그게 가장 중요했다. 감정의 기준을 잡는데 있어서 감독님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내가 최대한 취재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박실장의 전사부터 배경, 이름까지 물어봤다. 스스로 동의되는 부분은 참고를 했고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꾸민 것도 꽤 있다. 

동의된 부분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피해의식’이다. 피해의식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는 것에서 출발해서 디테일한 부분을 잡아나갔다. 피해의식도 여러 표현이 있을 텐데, 내가 해석한 것은 스스로 단단한 척하는 거였다. 강하고 여유 있고 불만이 없다고 위장하는 사람. ‘척’하는 감정이 어느 순간 제어가 안 되는 트리거가 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표현이 나오는 사람으로 상상했다. 나머지 디테일한 부분은 거의 현장에서 만든 애드리브였다.”

-간담회에서 악역을 두고 ‘연약함을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의미였나. 
“연약함을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많이 하고 싶다. 그게 빌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그 안에 공통된 단어를 말하자면 두려움이다. 내 가치관에 있어서 인간의 연약함은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돈을 벌지 못할까 봐, 인기를 얻지 못할까 봐 또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나오는 두려움이 확장되면 분노가 되는 것이고 슬픔이 되는 것이고, 공포감에 휩싸여서 폭력으로 발현될 수 있고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두려움이 인간의 매력적인 본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을 배우로서 많이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결국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한 주제, 가치관을 빌런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는 문화적인 환경이 조성된 시대이기 때문에 빌런 역할에 대한 매력을 느낀다.”

남다른 노력으로 더욱 입체적이고 새로운 빌런을 완성한 박용우.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남다른 노력으로 더욱 입체적이고 새로운 빌런을 완성한 박용우.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후반부 이안과 박실장의 액션신이 강렬했다. 준비 과정이 궁금하고 만족도는 어떤가.  
“준비한 게 참 많았는데, 현장에서는 아쉬웠다. 오랫동안 연습했는데 분량이나 여러 기술에 있어서 5분의 1 정도만 표현했던 것 같다. 그래서 굉장히 아쉬웠는데 결과물을 봤을 때는 이렇게 하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연습했던 액션의 합은 박실장도 강이안 못지않게 힘도 좋고 기술적으로 현란한, 이안을 제압할 수준의 뛰어난 액션을 표현하는 기술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기술보다 그 상황에서 나오는 박실장의 표정이라든지 감정이 중요했던 것 같다. 액션은 장치일 뿐이고 박실장의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으로 전환된 것 같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봤을 때 그 선택이 캐릭터에 있어서도 좋고 더 도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유체이탈이라는 설정 탓에 윤계상과 2인 1역을 해야 헀다.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재밌었다. 이런 연기는 처음이었는데, 윤계상이 연기를 먼저 하고 모니터링한 다음에 내가 그대로 따라 해야 했다. 멀리서 보이는 장면은 액션만 맞추면 됐는데, 타이트하게 잡은 장면은 표정이 보이기 때문에 이안이 그 표정을 짓는 이유라든가, 의미에 있어서 현장에서 취재를 하면서 표현하고자 했다. 또 거기에 개인적인 욕심은 그대로 따라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미묘한 차이로 어떤 암시를 주고 싶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서는 꼭 똑같이 할 필요가 있을까 조금 다르게 해도 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거울을 통해 마주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굉장히 어색했다. 둘이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진지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어떤 테이크에서는 웃음이 터져서 오랫동안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재밌었다.” 

-역할을 위해 증량도 했다고. 박실장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나. 
“다행스럽게 오랫동안 운동을 하고 있던 와중에 이 역할이 들어왔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왜소한 느낌보다 압도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게 더 유리하겠다 싶었다. 정확한 무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엄청나게 증량을 했다. 나를 자주 보는 사람들조차 너무 변했다고 할 정도로 증량을 했고, 나태해진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 증량한 상태에서 근육량만 유지하고 체지방만 빼려고 간헐적 단식과 운동을 병행했다. 가만히 있어도 압도되는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 외적인 에너지가 차분하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해도 더 무섭고 잔인하고 단단한 느낌을 줄 것 같았다. 나름대로 예상이 맞은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다.”

자신의 영역을 또 한 번 확장한 박용우.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자신의 영역을 또 한 번 확장한 박용우.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박용우의 또 다른 얼굴을 봤다는 호평이 많다. 
“배우로서 진심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당연한 것인데, 그 진심이 온전히 배우의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의 디렉션에 따라 보일 수도 있고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서도 내가 의도하지 않은 진심이 보일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뜻이 맞고 능력과 인성이 훌륭한 분들을 작품을 통해 만난다는 게 배우로서 가장 큰 행복이다. 예전에는 연기를 하는 이유가 일의 성공이었다면, 지금은 좋은 분들과 만나 관계하고 최대한 빛나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오랫동안 그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 

-동안 외모도 여전하다. 비결이 있다면. 
“타고난 거지 뭐. 하하. 농담이다. 삶과 죽음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지 꽤 됐다.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평생 팽팽할 순 없으나, 평생 멋질 순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 아름답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예쁘다’와 ‘아름답다’, ‘잘생겼다’와 ‘멋지다’는 표현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적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은 같이 가는 것이지 따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적인 아름다움을 꾸미는데 운동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다 잘 될 거라는 믿음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더 많은데 더 큰 성장과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장을 위함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런 마음들이 외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

-결국엔 이안이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지 어떤 점을 깨닫고 새롭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다행히 내가 몇 년 전부터 고민해왔던 주제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 등을 고민하며 가치관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운동을 꾸준히 했고, 취미생활이 전혀 없던 내가 10년 가까이 드럼을 치고 있는 이유도, 읽지 않았던 책을 꾸준히 읽는 이유도, 가끔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쓰는 이유도,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왜 살고 있는지, 연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더라. 그런데 나는 그동안 나를 너무 자학해왔고 끊임없이 괴롭히기만 했다. 물론 그런 것들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만 살아왔기 때문에 가치관의 변화가 내 삶의 정말 큰 전환점이 됐다. 그 이후 이 시나리오가 들어온 거다. 모든 촬영을 마친 다음 내가 그때 스스로 고민하고 삶의 가치관을 바꾼 게 정말 잘 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했다. 꼭 내게 필요한 일이었구나, 아주 좋은 길로 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라는 사람, ‘박용우’를 두고 스스로 자신 있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절대’ ‘결코’라는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가치관으로 자신 있게 정의할 수 있는 건 ‘평생 성장하는 사람’이다. 성장을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할 거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고 그렇게 살아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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