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시사위크|용인=박설민 기자  공상과학(SF)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영화 ‘매트릭스(1999)’에서는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계들이 인간을 연료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매트릭스에서 인간은 산채로 빨대처럼 생긴 관을 꼽힌 채 기계들의 ‘영양분’인 전기를 생산하는 배터리로 전락한 삶을 살고 있다.

이 끔찍한 이야기는 다행히 인간들에겐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말도 안 되는’ 공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아있는 상태에서 몸에 빨대가 꽂힌 채 자신의 ‘쓸개’를 빼앗기며 살아가는 동물이 실제로 존재한다. 바로 우리에게 멸종위기종으로 잘 알려진 ‘반달가슴곰’이다. 

지금도 몇몇 농가에서는 웅담에 사용될 쓸개를 채취하기 위해 반달가슴곰을 사육하고 있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웅담을 채취하기 위해 반달가슴곰을 사육했던 농장을 직접 방문해 그곳에 지금도 남아있는 반달가슴곰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을 카메라에 직접 담았다.

13일 오후 2시쯤 도착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반달가슴곰 농장. 1평 남짓한 좁은 철제 우리 안에 곰들이 갇혀 있었다./ 용인=박설민 기자

◇ 녹슨 철창 안 무기력한 반달곰들… 자유 찾아 탈출하면 ‘사살’

햇빛이 들었음에도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매섭게 찌르던 13일, 기자는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당하던 반달가슴곰들을 만나기 위해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위치한 반달가슴곰 농장으로 향했다. 

약 40분쯤, 산길을 따라 올라가 도착한 반달가슴곰 농장은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아무도 관리하고 있지 않는 듯한 사육장에는 남아있는 반달가슴곰들만이 힘없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반달가슴곰들은 기자가 다가가자 흥미가 생긴 듯 잠시 몸을 일으켜 쳐다봤다. 하지만 힘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좁은 우리의 답답함에 지친 것인지 이내 녹슬어버린 우리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곰들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기자를 쳐다봤는데, 마치 ‘여기서 내보내주세요’라고 말하는 듯 했다.

좁은 우리에 갇힌 반달가슴곰들은 답답함에 지친 것인지 무력해 보였다. 기자가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잠시 쳐다만 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용인=박설민 기자

무기력한 곰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농장의 관리 상태 역시 좋지 않았다. 곰을 가두는 1평 남짓한 우리들은 모두 녹이 슬어있었고, 우리 안에는 겨울철 추위를 막아줄 그 흔한 지푸라기 뭉치하나 없었다. 또한 곰들은 목이 마른지 녹이 슨 철제 울타리에 맺힌 이슬을 핥기도 했다.

이처럼 반달가슴곰 사육장이 제대로 관리돼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이유는 농장주가 경찰에 구속됐기 때문이다. 농장주 A씨는 지난 7월 반달가슴곰 불법 도축사실을 숨기기 위해 반달가슴곰 1마리가 탈출했으나 2마리가 탈출했다고 허위 신고했다. 

이에 경찰은 공무집행방해와 동물보호법 위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 이후 해당 농장의 곰들은 야생생물관리협회 용인지부에서 하루 한두 차례 먹이를 주는 정도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관리가 부실해진 농장에서는 지난 11월 반달가슴곰 5마리가 탈출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현재 2마리는 생포, 2마리는 사살 당했으나 여전히 1마리는 행방이 묘연하다.
※탈출한 반달곰을 목격한 주민이나 시민은 현수막 하단에 있는 연락처(용인시청 환경과: 031-324-2247)로 신고하면 된다
/ 용인=박설민 기자

이처럼 농장이 사실상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다보니 반달가슴곰이 탈출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농장에서는 지난 11월 22일 사육 중인 반달가슴곰 16마리 중 5마리가 탈출했다. 이 중 2마리는 생포하는데 성공했지만 저항이 심했던 2마리는 결국 사살됐다. 아직까지 남은 한 마리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지난 7월에 탈출했던 반달가슴곰도 저항이 심해 사살된 바 있기 때문에 남은 한 마리도 무사히 생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렇게 좁고 관리가 부실한 우리에서 고통 받고, 탈출했을 경우 사살까지 당하고 있는 반달가슴곰들이 대형 동물원이나 국립공원 등 안정적인 보호소로 이송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해당 문제에 대한 답을 얻고자 야생생물관리협회 관계자에 연락을 했으나 관계자는 “자신은 그것에 대해 대답할 권한이 없다”며 답을 피했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야생생물관리협회 측으로부터 확답을 얻지 못해 반달가슴곰들의 관리를 협회에 위탁했던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에 다시 문의를 했다. 그 결과, 농장주가 구속된 상태지만 반달가슴곰들은 개인의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한강유역환경청에서는 이송할 권한이 없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농장주가 공무집행방해와 동물보호법 위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의로&nbsp;구속당한 이후 별다른 관리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농장./ 용인=박설민 기자
농장주가 공무집행방해와 동물보호법 위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의로 구속당한 이후 별다른 관리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농장./ 용인=박설민 기자

◇ 웅담 채취에 사육된 곰들… 잘못된 정책으로 농민·곰들 모두 ‘고통’

이처럼 반달가슴곰들이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고 있는 이유는 바로 곰의 ‘쓸개’ 때문이다. 반달가슴곰의 쓸개는 값비싼 한약재 ‘웅담’에 사용되는데, 1g에 약 3~4만원에 이를 만큼 고가로 거래된다. 때문에 지금도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농가들에서는 반달가슴곰을 기르며 살아있는 상태에서 빨대를 꼽아 쓸개를 뽑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반달가슴곰은 세계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심각한 멸종위기종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멸종위기종 적색 목록 리스트에 따르면 반달가슴곰은 현재 ‘취약(VU: 야생에서 절멸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음)’ 종으로 분류돼 거의 모든 국가에서 보호종으로 취급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심각한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들을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는 전적으로 ‘우리나라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볼 수 있다. 약 30년 전인 1981년, 우리나라 정부에서 농가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곰사육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1985년 우리나라 정부는 홍보물로 제작한 영상을 통해 ‘대한뉴스 1557호-야생동물 사육’에서는 “곰은 잡식성 동물로 안전관리만 유의하면 병 없이 쉽게 사육할 수 있고, 곰의 피와 웅담 등은 높은 수익과 수입대체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곰 사육을 농가에 장려했었다. 이에 당시 농민들은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곰 사육에 너도나도 뛰어들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불법증식도 성행했다.

반달가슴곰은 지금은 국제적인 보호종이 됐지만 1980년대 당시엔 정부에서 농가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반달가슴곰 사육을 장려하기도 했다./  KTV국민방송 '대한늬우스' 유튜브 캡처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에 대한 보호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됐다. 국내외에서 반달가슴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우리나라 정부는 1993년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반달가슴곰을 해외에서 수입·수출하는 것이 완전히 제한됐다. 

이후 웅담 수요 역시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반달가슴곰 사육은 사양산업이 되어 갔다. 수익이 크게 줄어들면서 대부분의 농장들은 사업을 접었지만, 몇몇 불법 농장들을 중심으로 반달가슴곰들의 불법증식과 밀수출이 성행하게 됐다. 

또한 불법증식을 통해 자란 어린 곰들은 도축해 중국 등 시장에서 밀거래 됐다. 여기에 농장 관리도 부실해지면서 잦은 탈출사고도 발생하게 됐고, 생포에 실패하면 반달가슴곰을 사살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됐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반달가슴곰의 웅담과 고기가 특효약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면서 불법 도축이 자행된 사례도 있다. 동물자유연대 측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경기도 용인의 사육곰 농가에서 ‘코로나19 등 다양한 바이러스에 효능 있는 반달곰 웅담 특별할인 판매’를 한다는 문자를 발송했으며, 실제 곰을 도축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과거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반달가슴곰은 농가에게는 막대한 금전적 피해와 불법행위를 유발하도록 만들었으며, 반달가슴곰들에게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1993년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면서 국내외 반달가슴곰의 수출 및 수입은 완전히 제한되게 됐다. 이에 생계에 타격을 입게 된 몇몇 농가들 사이에서는 수익을 얻기 위해 반달가슴곰을 불법도축과 불법증식이 성행하게 됐다./ 동물자유연대
우리나라 정부가 1993년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면서 국내외 반달가슴곰의 수출 및 수입은 완전히 제한되게 됐다. 이에 생계에 타격을 입게 된 몇몇 농가들 사이에서는 수익을 얻기 위해 반달가슴곰을 불법도축과 불법증식이 성행하게 됐다./ 동물자유연대

◇ 같은 곰, 다른 운명… ‘토종’아니라 보호 못 받는 사육곰들

역설적이게도 웅담 채취를 위해 고통 받고 있는 반달가슴곰들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멸종위기종으로 철저한 보호와 복원사업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리산에 토종 반달가슴곰들을 방사하는 복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환경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 부처들과 국민들의 보호 노력을 통해 현재는 개체수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지난 9월에는 완전히 야생에 적응한 반달가슴곰이 지리산 하동군 일대에서 진흙으로 목욕하는 장면이 국립공원공단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처럼 반달가슴곰의 복원과 착취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농장에서 사육되는 곰은 ‘토종 반달가슴곰’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종 반달가슴곰과 사육곰의 종은 아시아 흑곰(학명: Ursus thibetanus)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사육곰의 경우 과거 우리나라와 중국 북동부지역, 러시아 연해주에서 서식했던 토종 반달가슴곰과는 달리 미얀마, 태국 등에서 수입해 들어온 것이다. 때문에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에는 다른 지역의 유전자가 섞이지 않은, 지리적으로 순수한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는 반달가슴곰만이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웅담 채취를 위해 고통 받고 있는 반달가슴곰들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멸종위기종으로 철저한 보호와 복원사업까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순수한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는 반달가슴곰만이 대상이다./ 뉴시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농가에서 기르는 반달가슴곰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10월 환경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농가에서 사육되고 있는 반달가슴곰의 개체 수는 26개 농가 369마리로 2006년 기준 약 1,439마리였던 개체 수에 비하면 크게 줄어들었다. 

아울러 환경부에서는 지난 10월 보도자료를 통해 민관협의체 운영 등을 통해 올해 연말까지 곰 사육 종식 이행계획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불법증식된 사육곰들에 대한 보호조치와 관련자 처벌을 강화한다는 목표다.

현재 환경부에서는 연례적으로 이어지는 반달가슴곰의 불법 증식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기관과 협력해 불법 증식한 곰 2마리를 지난 9월 29일에 압수했다. 지난 8월부터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현재 반달가슴곰의 불법 증식 및 도축 등에 징역 3년 또는 벌금 3,000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또한 불법 증식되거나 사육 포기된 곰의 보호를 위해 구례군과 함께 보호시설을 건설 중에 있다. 해당 보호시설은 지난 3월부터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건설이 진행 중으로 부지면적은 2만7,804m², 총 사업비는 94억원이며 약 49마리의 반달가슴곰들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멸종위기종을 보호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하고 싶다면 거창하게 ‘멸종위기종들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외치기 전에 바로 우리 곁에서 철창 우리 속에 갇힌 채 고통 받고 있었던 반달가슴곰들에게 시선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닌데,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연고지’ 하나만으로 멸종위기 보호종에서 웅담 채취의 사육 대상이 되어버린 사육 반달가슴곰들을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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