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을 연출한 드니 데르쿠르 감독.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을 연출한 드니 데르쿠르 감독.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감독 드니 데르쿠르)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신원 미상의 변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진호(유연석 분)와 국제법의학자 알리스(올가 쿠릴렌코 분)의 공조 수사로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을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범죄 스릴러다. 

프랑스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국내외 제작진이 공동 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한국에서 촬영됐다. 배우 유연석과 할리우드 배우 올가 쿠릴렌코가 주인공으로 나서 호흡을 맞췄고, 배우 예지원‧최무성‧박소이 등도 함께했다. 

드니 데르쿠르 감독은 기존 범죄물의 공식을 뒤집는 신선한 연출로 색다른 작품을 완성했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부터 캐릭터들의 면면, 스토리 전개뿐 아니라, 화면 구성과 카메라 워킹, 음악 등 기술적인 부분까지 새로운 시각과 접근으로 ‘배니싱: 미제사건’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최근 드니 데르쿠르 감독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나 글로벌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낸 소감과 ‘배니싱: 미제사건’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한국에서 내가 만든 영화를 개봉하는 것은 감독으로서 꿈을 이룬 것이라 생각한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색다른 범죄물 ‘배니싱: 미제사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색다른 범죄물 ‘배니싱: 미제사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한국 관객과 만나게 됐다. 기분이 어떤가. 
“글로벌 프로젝트 영화를 직접 연출했다는 것이 큰 영광이었고 아주 즐거움으로 가득한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훌륭한 배우진, 그리고 제작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고, 좋은 기회로 만든 이 작품을 여러분에게 소개할 수 있어 영광이다. 특히 한국에서 개봉할 수 있어 영광이다. 한국은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 자체가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곳이다. 한국의 영화나 음악, 문화적 요소들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한국의 문화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찍은 영화를 개봉하는 것이 뜻깊고 큰 영광이다. 영화를 사랑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한국에서 내가 만든 영화가 개봉한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꿈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모든 촬영이 진행됐다. 연출하는 데 가장 고민한 지점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인의 마인드를 이해하는 거였다.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해도 되는 건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것인지 캐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한국영화들도 많이 봤고, 내가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과도 많은 토론을 했다. 또 하나 신경 쓴 것은 클리셰를 범벅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외국인 감독의 시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기존 한국영화에 나오는 익숙한 것들을 다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함께 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것이 클리셰인지, 뻔한 전개인지 계속 물어봤고 그들의 대답이 내가 접근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러닝타임도 굉장히 짧고 내용도 간결했다. 감독이 평소 추구하는 연출 스타일인가. 
“확실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스릴러 장르에 있어서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한다. 미니멀하게 스릴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것을 상상하고 준비 과정에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과도하지 않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객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스릴러가 가득 차고 전개돼야 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벌려놓고 전개하다 보면 힘들어지는 것 같다. 보통 사전에 많은 글을 써놓고, 촬영도 많이 한다. 그다음에 편집실에서 미니멀하게 잘라내는 게 나의 접근 방식이다. 그렇게 해야 관객에게 다가가는 효과가 더 강력한 것 같다.”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에서 형사 진호를 연기한 유연석.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에서 형사 진호를 연기한 유연석.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진호 역에 유연석을 캐스팅한 이유는. 
“유연석은 정말 잘생겼다. 흥미로운 것은 잘생긴 것에만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는 배우라는 점이다. 잘생겼지만, 잘생긴 것만으로 어필하고 싶지 않아 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성격이 좋았다. ‘나이스 가이’였다. 또 자기가 맡은 역할에 몰입해서 충실히 노력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영화 ‘올드보이’였다. 연기를 정말 잘해서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가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잘생긴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 흥미로웠다.”

-처음 제작 단계에서는 미숙 캐릭터가 없었다고. 미숙 캐릭터의 탄생 배경과 미숙 역에 예지원을 캐스팅한 과정이 궁금하다. 
“알리스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고 한국어를 못하는 캐릭터로 세팅됐다. 그런 이유 때문에 언어를 매개로 하는 다른 캐릭터가 필요했고 그래서 미숙이 탄생하게 됐다. 언어적인 요소 때문에 미숙을 만들었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너무 훌륭한 인물이었다. 인물 간에 충돌도 부여하면서 흥미로운 캐릭터가 탄생했다. 예지원을 캐스팅한 이유는 우선 불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영화를 하면서 불어 실력이 점점 늘었다. 그 자체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감독을 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는 예지원이 처음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프랑스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예지원이 아주 완벽한 불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잘해줬다. 연기 자체도 아주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잘 소화해 줬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으로 호흡을 맞춘 유연석(왼쪽)과 올가 쿠릴렌코.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으로 호흡을 맞춘 유연석(왼쪽)과 올가 쿠릴렌코.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범죄 스릴러 장르인 이 영화에서 진호와 알리스의 러브라인과 같은 감정선이 엿보였다. 두 인물의 감정이 어떻게 비치길 바랐나. 
“엿보이기만을 원했다. 완전히 대놓고 사랑이라고 하기보다 조금만 보이도록 의도했다. 왜냐면 한국 관객들은 똑똑하기 때문에 조금 비춰주기만 하더라도 캐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장르상 러브스토리를 큰 줄기로 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약간이라도 둘의 관계와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릴러 장르 안에 녹여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유연석과 올가 쿠릴렌코가 잘 소화해 줬다.” 

-감독의 시각으로 담긴 한국의 풍광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감독이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이었고, 한국의 어떤 매력을 담고 싶었나.  
“내가 느낀 한국의 모습은 영화를 찍기에는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예를 들어, 영화에 악당이 많이 나오는데 내가 경험한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배려심도 많았다. 한국에 대한 좋은 경험을 하면서 한국의 악당을 그리는 영화를 찍는 게 쉽지 않았다. 풍광은 주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야경을 담고 싶었다. 밤에 갈 곳이 되게 많더라. 야경을 집중적으로 담으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점을 둔 것은 외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 어필할 수 있는 걸 담으면서도, 한국인이 봤을 때 뻔하지 않은 것 두 가지를 다 잡을 수 있는 풍광을 담고자 한 거다.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뻔하지 않은 풍광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곳을 알리스의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도움이 됐다. 외국인의 눈으로 보는 한국을 그릴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점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글로벌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친 소감을 전했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글로벌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친 소감을 전했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자칫하면 애매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위험이 있는 프로젝트였다. 어떤 점에 유념하며 작업했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너무 다른 문화적인 요소들을 한꺼번에 집어넣다 보면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비밀은 서로 다름을 인지하고 공유하고 서로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프랑스 사람이지만 독일이라는 외국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서로 다름에 대한 인식이 있다. 올가 쿠릴렌코도 출신국과 작업하는 나라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름에 대한 의식이 있어 도움이 됐다. 작품에 참여한 제작자들도 다른 나라에서 영화를 많이 찍어 본 사람들이었고,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더 잘 할 수 있었다.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의식하고 접근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영화가 인간의 감정에 포커스를 뒀다는 점도 중요했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고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서로 나눈 것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한국 배우, 제작진과 함께 호흡했는데, 기존 작업들과 다른 점이나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한국 현장만의 특색을 발견한 게 있다면. 
“모든 것이 흥미롭고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영화라는 것을 잘 아는 프로들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이 철저히 준비된 채 현장에 왔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사전 작업이 필요한데, 모든 것을 다 꼼꼼히 체크해 놓고 준비된 상태로 온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친구들에게 전화로 ‘한국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것은 미스터리가 아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작품인데 어떻게 인기가 없을 수 있느냐’고 말했을 정도다. 한국은 24시간 일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메일을 하나 보내더라도 즉각적으로 답이 왔다. 그게 한국 현장의 특색이 아닌가 싶다.

또 스타를 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큰 스타로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신격 대우 같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스타들은 특권의식 없이 일반인처럼 행동하더라. 남들은 신처럼 대우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평범하게 행동하는 게 특징이었다. 솔직히 나는 한국의 스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내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으면 부담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스타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일을 많이 해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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