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로 관객과 만나는 이돈구 감독. /콘텐츠판다
영화 ‘봄날’로 관객과 만나는 이돈구 감독. /콘텐츠판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봄날’(감독 이돈구)은 한때 잘 나갔지만 현재는 집안의 애물단지인 철부지 형님 호성(손현주 분)이 아는 인맥 모두 끌어모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부조금으로 한탕 크게 벌이려다 수습불가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데뷔작 ‘가시꽃’(2012)으로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데 이어, 내면에 잠재한 불안과 공포를 내밀하게 담아낸 영화 ‘현기증’(2014),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팡파레’(2020)로 실력을 인정받은 이돈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손현주를 필두로 박혁권‧정석용‧손숙 등 베테랑 배우들과 박소진‧정지환 등 실력파 신예들이 출연했다. 

전작을 통해 강단 있는 연출력과 몰입도 높은 스토리로 관객을 사로잡아 온 이돈구 감독은 ‘봄날’에서도 제2의 전성기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설정과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흡입력 높은 전개로 풀어내 관객을 매료한다. 특히 땅에 발을 디딘 현실적인 캐릭터 묘사로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며 따뜻한 공감과 힐링을 전한다. 

오는 27일 개봉을 앞두고 지난 25일 <시사위크>와 만난 이돈구 감독은 “인생의 봄날이 다시 오기를 바라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라며 “따뜻한 봄날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라고 ‘봄날’을 소개했다.  

따뜻한 웃음과 공감을 안기는 ‘봄날’. /콘텐츠판다
따뜻한 웃음과 공감을 안기는 ‘봄날’. /콘텐츠판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힘없는 뒷모습을 보고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십여 년 전에 할아버지 장례식을 했는데, 조문객도 그렇고 상주인 아버지나 삼촌, 가족들도 그렇고 뭔가 불협화음 같은 느낌이 있었다. 장례식의 본질은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발견했고 영화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동시에 분향소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데 다시 인생에 어떠한 봄날을 기다리는 듯한 느낌과 감정을 받았다. 그래서 차근차근 이 이야기를 쓰게 됐다.” 

-전작 ‘팡파레’는 장르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었고, ‘가시꽃’ ‘현기증’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뤘다. ‘봄날’은 그동안 해온 작품들 중 가장 일상적이고 편안한 느낌이지 않았나 싶은데.
“영화를 만들 때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쫓아가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 결은 전작도, ‘봄날’도 똑같다. 다만 ‘봄날’은 장르적으로 드라마 색채가 강한 영화다. 전작들이 마니아틱한 부분들이 있는 반면, ‘봄날’은 가족들이 부담 없이 같이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 차별점이지 않나 싶다.”

-장례식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영화가 진행된다. 다른 장치 없이 오롯이 인물들과 그들의 대사만으로 극을 채워야 했는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어떤 고민이 있었나.
“관객이 한 시간 반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 이 영화를 볼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기본적으로 있는데, 배우들의 연기를 잘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믿었다. 대사도 많고 배우들을 계속 봐야 하는 영화라, 배우들을 믿었던 것 같다. 비주얼이나 다른 부분으로 채워지는 것보다 배우의 호흡이 그 자리를 매우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음악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봄날’로 호흡을 맞춘 손현주(왼쪽)와 이돈구 감독. /콘텐츠판다
‘봄날’로 호흡을 맞춘 손현주(왼쪽)와 이돈구 감독. /콘텐츠판다

-캐릭터 구상 과정이 궁금하다. 호성을 중심에 두고 엄마 정님과 동생 종성, 아들 동혁과 딸 은옥, 오랜 친구 양희까지 각 인물들의 탄생 비하인드가 있다면.  
“우선 호성은 모티브가 된 인물은 없고 말투나 행동은 나의 아버지 모습에서 가져오려고 했다. 호성은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되는 사람들 있잖나. 최선은 다하는데 그 최선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상황들을 만드는 그런 사람이 나오면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만들어진 인물이다. 아버지도 남동생들이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호성에게 남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삼촌 사이 농담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 와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양희는 마을 장례식장에 그런 느낌의 분이 계셨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 상복이 아닌 붉은 점퍼를 입고 오신 아저씨였는데, 그분 기억이 많이 났다. 3일 동안 계셨고, 장지까지 오셨다. 양희처럼 춤을 추고 그러진 않았지만 말도 많이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저분이 진짜 추모를 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양희가 순수하잖나. 의도 자체가 진심인 사람이라서 그런 모티브가 있지 않았나 싶다. 너무 넘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이 나왔으면 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손에 닿을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봄날’에서 호성의 엄마 정님을 연기한 손숙. /콘텐츠판다​
​‘봄날’에서 호성의 엄마 정님을 연기한 손숙. /콘텐츠판다​

-호성과 주변인들과의 관계들도 흥미롭고 공감을 이끌어냈다. 감독이 제일 애착이 가거나 현실에서 꺼내온 관계가 있다면. 
“호성과 정님이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같이 살았다. 그때 느꼈던 정서들이 있다. 나 역시 어머니에 대한 각별함이 있다. 정님은 맹목적이잖나. 맹목적일 수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맹목적일 수 있는 관계는 어떻게 보면 진짜 사랑이지 않나.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호성도 은옥과 동혁에게 결은 다르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내리사랑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님과 호성의 관계에 마음이 간다.”

-호성이 손현주여야 했던 이유는.  
“손현주라는 배우를 정말 좋아했다. 어떨 때는 되게 강렬한 느낌이 있는데, 어떨 때는 측은함도 있다. 페이소스가 있다. 센 역할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갖고 있는 스펙트럼이 되게 넓은 배우라는 생각을 전부터 해서 함께해 주시면 너무 고맙겠다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드렸는데 감사하게도 답을 주셨다. 내가 해석한 호성은 조금 더 냉정하다. 그런 호성이 너무 밉지 않게, 대중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만든 것은 손현주 선배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도 너무 좋았다.”

인상적인 열연을 보여준 정석용(왼쪽)과 박소진. /콘텐츠판다​
인상적인 열연을 보여준 정석용(왼쪽)과 박소진. /콘텐츠판다​

-양희 역의 정석용과 은옥 역의 박소진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정석용 선배는 너무 화끈하고, 성격이 정말 좋다. ‘이게 될까?’ 이런 스타일이 아니고, ‘오케이 해볼게’ 하는 스타일이다. 장지에서 미끄러지는 장면도 대역 배우가 현장에 왔는데, (정석용이) 한 번 해보면 안 될까 하더니 직접 다 하셨다. 그 정도로 열정이 있으셨다. 박소진 배우는 연기 경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미지로 은옥 역에 떠올렸다. 만나서 리딩을 하는데 바로 되겠다 생각을 했다. (박소진이) 되게 진지하다. 인물 구축이나 작품 분석도 엄청 성실하게 해온다. 기본적으로 감각도 좋다. 촬영장에서도 만족스러웠다.”

-영화의 제목을 ‘12월의 봄’에서 ‘봄날’로 바꿨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나.
“관객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고 잘 남았으면 했다. ‘12월의 봄’은 은유적인 표현이기도 하고 기억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봄날’은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다. 호성 혹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심지어 영화를 만든 나조차 인생에 봄날이 오기를 바란다. 인생의 봄날을 다시 맞이하는 순간을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봄날’이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봄날은 올 거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현기증’도 그렇고 이번 ‘봄날’도 그렇고 가족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유가 있나. 
“‘현기증’ 만들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가족에 문제가 있는지, 나의 상태는 괜찮은가 였다.(웃음) 우리 가족은 화목하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가족 안에서 어떤 사람인지. 당연히 아들이고, 동생이고 가족이지만 그 안에서 진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이 사람들과 어떤 유대를 쌓고 있는지. 그냥 피로 엮인 의무적인 유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가족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현기증’은 누나의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불안해서 만든 영화였고, ‘봄날’은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만든 거라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족은 어떤 순간과 기억이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다양한 영화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는 이돈구 감독. /콘텐츠판다​
다양한 영화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는 이돈구 감독. /콘텐츠판다​

-배우로 먼저 데뷔했다고. 영화를 만들기까지, 또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영향을 끼친 존재가 있다면. 
“두 편의 영화가 있다. 봉준호 감독님의 ‘살인의 추억’과 이창동 감독님의 ‘오아시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연출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 때 이창동 감독님의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분의 영화에는 인물들이 온전히 존재한다. 그런 점이 너무 좋고, 나 역시 연출을 하면서 많이 생각하고 참고하는 부분이다.” 

-전작들이 강하고 세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선뜻 접근하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색깔 안에서 상업적인 재미를 담기 위한 고민도 하나.  
“고민은 안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 이야기가 상업적인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야기라면 상업영화가 되는 거다. 당연히 조금 더 수익을 낼 수 있는, 대중과 가까울 수 있는 영화를 기획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는지 뼛속부터 나오는 이야기인지 의심이 없어야 하지 않겠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무조건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었던 것 같다.”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견제하는 것이 있다면.  
“견제하는 것은 코멘트다. 코멘트를 많이 받지 않는다. 영화를 만든 다음에도 그렇다.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시나리오 같은 경우 돌고 돌고 돌아서 결국 초고로 돌아온 기억이 많다. 내가 처음 생각하고 믿었던 그 에너지를 넘어서는 경험을 아직 못해봐서 코멘트를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 연출 철학은 사실 크게 없다. 그냥 최선을 다하자, 일을 내가 제일 많이 하자.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올리지 말고 내가 밥을 차리자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 마음 하나는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감독으로 남고 싶나. 
“다양한 영화를 하고 싶다. 장르 색채가 강한 작품도 좋아하고 ‘봄날’처럼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도 좋아한다. 어떤 주제를 갖고 어떤 이야기,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냐 확실히 정해지면 장르에 상관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좋아하는 물고기가 심해어다. 감독으로서 대중적인 심해어가 되고 싶다. 바닷가 나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물고기도 아름답고 좋지만, 쉽게 보지 못하는 물고기 대중적인 심해어가 되고 싶다.” 

-‘봄날’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큼 공감을 많이 불러일으키는 소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봄날’을 보며 많은 분들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또 그 안에서 배우들의 연기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다. 봄날에 가족과 함께 보면 좋은 영화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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