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된 정인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모가 2심 선고 공판에서 감형을 받은 지난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뉴시스
생후 16개월 된 정인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모가 2심 선고 공판에서 감형을 받은 지난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국민적 공분을 산 ‘정인이 사건’이 2020년 10월 13일에 발생한 이후 생후 16개월 된 입양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장모 씨가 28일 징역 35년 형을 확정 받았다. 

2021년 2월 26일 ‘아동학대범죄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정인이법 이라는 명칭으로 국회를 통과하고 1년이 넘게 시행되고 있다. 법 개정 이후 현장 실무자와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정인이가 정부와 시민들의 인식 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례법 개정을 통해 우리나라도 미국과 일본처럼 아동복지와 별개로 아동학대에 대한 법이 있는 나라가 됐으며, 학대행위자의 처벌과 피해아동 보호절차가 강화됐다. 아동학대 치사죄가 적용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이 징역에 처하고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게 됐다.

또한 신고 의무자 범위를 확대하고, 학대 행위자에 대한 친권 제한·정지 등의 임시조치 근거 규정이 생겨 피해 아동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피해아동의 권리 보호를 위해 임시후견인을 지정할 수 있게 돼 법정대리인의 공백이 없어진 점도 특례법이 만들어낸 개선점이다.

◇ 예산·인력, 입법 따라가지 못해

하지만 선진적 아동학대 범죄 예방과 처벌을 위해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개정법이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의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수사기관이 수사에 착수하도록 의무화했지만, 현장에서 이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내 아동학대 사건 접수 규모는 한 해 2만건을 넘어선 상태다. 반면 해당 문제를 전담할 공무원은 전국에 200여명에 불과하다. 단순 산술로 보면 1인당 한 해 약 100건 가량의 신규 신고를 처리해야 한다.

전문가들을 피해 아동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예산과 인력의 부족에서 찾았다. 이들은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지 않은 채 법으로 절차만 강화하는 것은 현장을 더 힘들게 한다며 대책을 실현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이 얼마인지 가늠해 보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양기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 지방자치단체, 응급의료기관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사태 발생 시 신속하고 일목요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협력·지휘체계를 수립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게 아동문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전경숙 평택대학교 아동청소년 복지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특례법이 시행되면서 경찰이 동행하여 조사하고 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는 등 경찰의 역할과 기능이 확대됐지만, 특례법 적용에 있어 아동학대에 대한 상호간 시각차이가 발생하여 개별 사례진행 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경찰은 상해가 발생하고 명확한 증거가 있는 신체학대나 성학대의 경우만 아동학대 범죄로 인식하고 피해아동의 처벌의사에 준해서 수사를 개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아동보호전문기관 조사원은 아동보호와 복지적 측면에서 보다 포괄적인 관점으로 아동학대 문제에 접근한다. 따라서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조사원 사이에 현장 사건을 처리하는데 갈등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한 실무자는 “경찰과 현장출동 시 응급조치에 대한 기준이 상담원과 다르다 보니 상담원이 경찰에게 응급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지만 경찰은 응급한 상황이 아니니 조치가 안된다고 하는 경우가 발생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증언했다.

입양한 16개월 여아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모의 대법원 선고를 앞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관계자들의 추모 용품들이 놓여 있다./뉴시스
입양한 16개월 여아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모의 대법원 선고를 앞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관계자들의 추모 용품들이 놓여 있다./뉴시스

◇ 아동학대 전문 인력이 시급한 과제

아동을 학대하는 것에서 나아가 정인이 사건과 같은 살인사건은 항거 불능의 아이를 대상으로 발생하는 것이어서 어른들의 사건과는 잔혹함의 정도가 다르다. 현장 실무자들은 그에 따라 아동 전문가의 시각이 필요하지만, 전문 인력이 육성되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도 표했다.

<시사위크>는 학대 당해 숨진 ‘양천 16개월 입양아’에게 ‘정인이’라는 이름을 돌려준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에게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 대표는 이웃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나서 신고를 해 경찰이 출동했지만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버티다가 문을 열어주고는 ‘애들이 한두 번 우느냐. 우리가 학대했다는 근거를 대라’고 적반하장식으로 나와 경찰이 그냥 돌아가야 했던 실제 사건을 소개하며 “정인이도 처음에 신고가 들어갔을 때는 아이가 양모에게 잘 안기는 것을 보니 애착형성이 잘 돼있다고 무혐의 처분이 났다”고 말했다.

학대 받는 아이들을 비전문가가 구분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아이들은 아무리 학대하는 사람이라도 외부인보다는 얼굴을 아는 사람에게 가게 돼있다. 그리고 어쨌든 부모와 헤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지금 학대의 고통보다 더 클 수도 있다”며 “그렇게 경찰이 한번 방문하면 그 아이는 더 숨겨져서 학대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느냐는 질문에 공 대표는 “아무리 아동학대 부서가 생겨도 공무원들이나 경찰은 2년에 한번 순환보직 된다. 이들은 피해 아동의 발달 심리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아이들은 ‘네가 잘못해서’ ‘너를 위해서’라는 가스라이팅에 노출돼 ‘내가 나쁜 아이라서 맞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공무원, 경찰 뿐 아니라 검사와 판사도 아동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소년들은 소년전문 판사가 있다. 하지만 아동전문 판사는 없다. 일반 검사와 판사들이 아동 대상 범죄를 판단하면 여타 다른 범죄와 동일 선상에 두고 그 가혹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다”며 사법 체계의 개편 필요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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