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산양은 지난 200만년 동안 한반도의 강산에서 살아온 터줏대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밀렵과 서식지 파괴 등으로 인해 이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양구=박설민 기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이는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르면 불변할 것 같았던 것들조차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의 속담이다.

특히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도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바뀔 만큼 변화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10년이 훨씬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산맥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오랜 세월 우리나라 강산에서 살아온 ‘산양’들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우리 강산을 지켜왔던 산양들은 밀렵과 서식지 파괴 등으로 인해 이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산양들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산양증식복원센터’를 찾아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한 산양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기자가 산양을 만나기 위해 지난 3일 방문한 강원도 양구군의 산양증식복원센터./ 박설민 기자

◇ “염소인 듯 사슴인 듯”… 가파른 절벽 위에 사는 ‘숲속의 신사’ 산양

추운 겨울을 지나 녹음이 자라나기 시작한 5월 3일, 기자는 산양을 만나기 위해 동서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산양증식복원센터로 향했다. 지난 2008년 문을 연 산양증식복원센터는 천연기념물인 산양 복원기술의 자체 개발, 유전자원 보호, 증식기술 확보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4시간이 넘는 여정 끝에 도착한 산양증식복원센터에 도착하자 입구 근처에 위치한 우리에서 산양 한 마리가 기자를 마중 나온 듯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커다랗고 검은 눈동자를 가진 산양의 눈매는 순수하고 선하다는 인상을 줬다.

몸길이 105~130cm, 몸무게는 22~35kg 정도의 작은 몸집을 가진 산양(Long-tailed goral)은 우제목 소과에 속하는 포유류다. 이름에 ‘양’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처럼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양(Sheep)’과는 친척 관계다. 하지만 산양의 외모는 친척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우리에게 익숙한 양의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

산양증식복원센터에서 만난 산양의 모습.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양과 다르게 뾰족한 뿔과 회갈색의 털이 난 모습은 사슴이나 영양과 비슷해보였다./ 박설민 기자

실제로 산양증식복원센터에서 만난 산양은 머리 위에 난 뾰족한 뿔과 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복슬복슬한 솜털을 가진 일반적인 양과 달리 부드럽지만 짧고 회색빛의 고운 털로 덮여 있었다. 때문에 산양의 모습은 오히려 염소나 사슴, 아프리카 초원에서 볼법한 영양과 비슷한 모습에 가까웠다.

산양증식복원센터 전문가들은 모습뿐만 아니라 생활 방식도 일반적인 양들과는 크게 다르다고 했다. 보통 양들이 넓은 초원에서 살아가는 것에 비해 산양들은 ‘숲속에 사는 작은 양’을 뜻하는 이름 그대로 가파른 바위가 존재하는 산악지역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산양증식복원센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산양들 역시 센터에서 조성해 놓은 인공 절벽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산양들이 척박한 산악 지형을 선호하는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산양의 천적인 표범이나 늑대 등의 맹수들은 날카로운 발톱 때문에 가파른 절벽을 잘 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과 새끼들의 안전에 유리하다. 

그렇다면 산양들은 춥고 가파른 척박한 환경의 산악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이는 산양들의 특이한 신체구조를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산양들은 튼튼한 발굽과 발달한 두 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어 깎아지른 절벽을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또한 두꺼운 회갈색의 털은 산 정상의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막아 체온을 유지시켜준다.

산양들은 춥고 가파른 척박한 환경의 산악 지역을 선호한다. 산양증식복원센터에서 조성해 놓은 인공 절벽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산양의 모습./ 박설민 기자

◇ 밀렵·서식지 파괴로 멸종위기에 처한 ‘살아있는 화석’

하지만 기나긴 시간 동안 한반도를 지켜왔던 산양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인간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밀렵과 서식지 파괴 등이 증가하면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발표한 멸종위기종 목록인 ‘레드 리스트’에 따르면 현재 산양은 멸종위기 직전으로 분류되는 ‘취약종(VU)’에 해당한다. 또한 우리나라 환경부에서도 산양을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한 상태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 따르면 산양은 현재 강원도와 충청북도, 경북 울진 등 태백산맥 일대의 산악지역에 개체군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는 한반도와 러시아동부지역과 중국 동북부 일부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산양의 멸종위기는 우리나라 자연 생태계에 큰 타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동물들은 열매를 섭취하고 대변을 통해 씨앗을 배출해 더 많은 지역에서 식물들이 번성하도록 만드는 매개체가 돼준다. 뿐만 아니라 동물의 대변은 거름 역할까지 해줘 배출된 씨앗의 발아 확률을 크게 높여준다. 

특히 척박한 고산지대는 서식하는 초식동물의 수가 저지대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이런 식물 번식의 매개체로써 산양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자연에서 죽은 산양의 시체들은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독수리나 족제비, 담비 등 다양한 포식동물들과 각종 곤충들의 먹이 자원이 되어주기도 한다.

산양은 현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발표한 멸종위기종 목록인 ‘레드 리스트’에서 멸종위기 직전으로 분류되는 ‘취약종(VU)’에 해당한다./ 박설민 기자

생태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산양은 학문적 연구가치가 매우 높은 생물이기도 하다. 산양은 아주 오랜 세월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은 ‘살아있는 화석’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화석이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진화를 하지 않아 모습이 과거의 모습이 거의 유지되는 생물들을 뜻한다.

산양의 경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제목 소과에 속한 발굽동물이다. 이때 진화된 소과 발굽동물들의 경우, 발가락이 퇴화되면서 발굽이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산양의 경우, 발굽 부분에 발가락이 있어 움직일 수 있다. 즉, 발굽동물들이 진화하던 과정 중간단계의 모습이 현재 산양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산양증식복원센터 전문가들에 따르면 산양은 소과 조상들의 태초 모습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현존 동물로, 약 200만년 전 쯤 지구에 모습을 드러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즉, 흔히들 ‘반만 년 역사’라고 말하는 우리나라의 역사보다, 아니 최초의 인류가 한반도 땅을 밟기 전부터 훨씬 긴 세월 동안 산양들은 한반도 강산을 지켜온 터줏대감들인 셈이다.

봄철을 맞아 털갈이 중인 암컷 산양(사진 앞쪽)과 새끼 산양으로 추정되는 어린 개체(사진 뒤쪽)의 모습./ 박설민 기자

◇ 정부, 반달곰에 이어 산양 복원 시도… 방사 및 모니터링으로 개체 수 회복 성과 얻어

이처럼 산양이 연구적 가치와 고산지대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생물자원으로써의 가치가 크다고 평가받으면서 우리 정부와 연구기관들 역시 산양 복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산양 복원은 우리나라 정부에서 반달가슴곰 이후 두 번째로 본격적인 복원을 시도하는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이다.

지난 2007년 4월 국립공원관리공단(현 국립공원공단)은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포획한 야생 산양 네 마리를 방사한 것을 시작으로 속리산국립공원 내 군자산에 지난 2015년 암컷 2마리와 수컷 1마리, 2016년에 수컷 2마리와 암컷 2마리, 2017년에 수컷1마리와 암컷 1마리를 추가 방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산양증식복원센터에서 진행 중인 산양 복원 활동 역시 산양 보호를 위한 국가사업의 일환이다. 복원센터를 운영하는 한국산양보호협회에 따르면 증식하는데 성공한 산양 개체들은 개체 관리 카드와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관리된다. 

산양증식복원센터 전문가들에게 극진한 보살핌을 받아 건강하게 성장한 산양 개체들은 야생적응훈련을 마친 후 자연에 방사된다. 산양증식복원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센터에서 방사한 산양은 총 28마리이며, 모니터링 결과 자체적으로 증식한 산양의 개체 수는 56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국가 기관과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산양의 개체 수는 서서히 회복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약 690~784마리였던 산양은 2020년 기준 약 1,000여마리까지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공원연구원 북부보전센터과 산양증식복원센터에서 지난 2020년 11월 18일  건강한 산양을 속리산 국립공원에 방사하는 모습./ 한국산양보호협회

◇ 도로 때문에 고립된 산양, 근친교배로 개체 수 감소… 기후위기도 악영향

그러나 아직까지 산양들이 멸종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보다 밀렵은 확실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산간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서식지의 파괴는 훨씬 더 빠르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산지 개발을 위해 건설된 수많은 ‘차량 도로’들은 산양의 생존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존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산지에 수많은 도로들이 생기면서 산양들이 로드킬(동물이 도로를 건너다 자동차 등에 치여 죽는 사고)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막아 ‘근친교배’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산지 개발을 위해 건설된 수많은 ‘차량 도로’들은 산양의 생존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존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로드킬을 당한 산양의 모습./ 한국산양보호협회울진군지회, 뉴시스

산양증식복원센터의 안재용 사무국장도 “1980년대 이후 산간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산양들이 살고 있는 산들에 건설된 수많은 도로들은 산양들의 고립을 불러왔다”며 “이는 곧 장기적으로 근친교배 등의 문제를 일으켰고, 산양 새끼들의 면역력과 환경 적응력 저하를 일으켜 개체 수 감소를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때문에 현재 복원센터에서는 설악산 등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구조된 산양의 개체들을 강원도 양구로 데려와 방사하고 있다”며 “동시에 양구 지역의 산양 개체들은 설악산이나 속리산으로 보내는 개체 교류 활동을 통해 고립에 의한 근친교배문제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로 인해 급격히 바뀌고 있는 기후 역시 산양을 위협하는 존재다. 실제로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0년 3월 이상기후로 갑자기 내린 폭설에 19마리의 산양이 고립되면서 이상저온과 먹이부족, 탈진 등으로 떼죽음을 당한 일도 있었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급증하는 산불도 산양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 하늘의 신 환웅과 웅녀의 자손인 단군이 고조선을 건설했던 시절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한반도를 지켜왔던 ‘살아있는 화석’ 산양. 이들은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근대사회를 거쳐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의 모든 역사와 함께했던 존재들이다.

하지만 산양들은 이제 오랜 세월 함께했던 단군의 먼 자손들의 욕심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이 지속적으로 산양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이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산양들은 ‘살아있는 화석’이 아닌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화석’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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