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대표 이야기꾼 최동훈 감독이 돌아왔다. /케이퍼필름
충무로 대표 이야기꾼 최동훈 감독이 돌아왔다. /케이퍼필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최동훈 감독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을 통해 한국형 케이퍼 무비의 장을 연데 이어, 장르 영화의 신기원을 보여준 ‘타짜’(2006), 최초의 한국형 히어로 무비 ‘전우치’(2009), 연달아 천만 흥행을 기록한 ‘도둑들’(2012)과 ‘암살’(2015)까지.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으며 한국 장르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매 작품 매력적인 캐릭터와 빈틈없는 이야기,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아 왔는데, 신작 ‘외계+인’을 통해서는 한국 도술 세계와 SF적인 세계의 만남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탁월한 이야기로 그려내 신선한 볼거리와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외계+인’ 1부는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2022년 인간의 몸속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스토리가 1부와 2부로 나뉘어 동시 제작돼, 1부가 지난 20일 먼저 개봉했다. 

최동훈 감독은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나 ‘외계+인’의 시작부터 시나리오 작업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최 감독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던 이 프로젝트를 두고 “힘든 과정이었다”면서도 “관객에게 소개되면 얼마나 재밌고 즐거울까 하는 기대감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영화 ‘외계+인’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선보인 최동훈 감독. /케이퍼필름
영화 ‘외계+인’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선보인 최동훈 감독. /케이퍼필름

-오랜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어떤가.
“7년 만이라, 예전에 (홍보활동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영화는 5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면 굉장히 재밌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찍었다. 개봉이 기다려졌다.” 

-현대는 가족물, 과거는 케이퍼 무비에 가깝다고 느꼈다. 코미디, 무협 등 다양한 장르도 더해졌다. 이를 하나로 엮는데 어려움이 컸을 것 같은데. 
“처음 구상할 때 현대와 과거를 어떻게 이을까 고민이 많았다. 시간 순서대로 풀기는 싫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 영화를 본다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구조를 짰다. 미스터리라고 할까, 그런 지점들이 뒤에 가서 풀리는 게 흥미로웠다. 보통 대중영화에서 쓰이지 않는 방식이긴 하지만, 이런 플롯으로 가야만 될 것 같았다. 2년 반 동안 시나리오를 고쳐 쓰면서 아주 여러 번 플롯을 움직여 봤는데 지금이 가장 적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최대한 쉽게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약간의 시간차이는 있지만 관객들이 잘 즐길 거라고 생각한다.”

-1부와 2부로 나눠 구성한 이유가 궁금하다. 가장 고민한 지점은 무엇인지, 고충은 없었나. 
“고충 많았다. 결국엔 외계 존재와 현대의 인간, 과거의 인간이 서로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세계관을 가진 이야기인데,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더 많은 분량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한 편의 영화로 담기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양이 많았다. 어떻게 줄일까 고민을 하다가 제작사 측에서 두 편 연작으로 찍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새로운 시도고 재밌는 작업이 되겠다 싶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1부 이야기만으로도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처럼 보이길 바랐고, 그 지점이 가장 힘들었다. 1부 엔딩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도 고민이 많았다. 촬영하면서도 스태프들과 많은 의견을 나눴는데, 편집하다가 본능적으로 느낌이 왔다. 거기에서 끝나야 모험극이자 또 하나의 미스터리를 남기는 드라마가 될 것 같았다.” 

-인물들의 입을 빌려 반복적으로 정리하고 설명하는, 굉장히 친절한 영화였다. 연출자의 의도였나. 
“관객이 이 복잡한 세계관에 쉽게 접근하길 바랐다. 썬더의 대사는 30번 정도 고쳐 썼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친절함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극의 흐름이 빠르고, 그걸 잘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 순간 기억돼야 할 것들을 놓치는 경향이 있더라. 썬더의 대사는 다소 설명적이긴 하지만, 관객을 위한 과정이었다.”

-극을 끌고 가는 무륵(류준열 분)과 가드(김우빈 분), 이안(김태리 분)에게서 어떤 균열과 충돌, 시너지를 바랐나. 
“가드는 하나의 임무를 가진 사람이다. 균열돼 가는 과정 속에 있는 인물이다. 이안은 자신만의 상처와 사명감이 있고, 앞으로 계속 직진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무륵은 일종의 호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이다. 호기심이 그를 계속 스토리 속으로 밀고 가고 몰아넣는다. 각각 다른 입장을 가진 세 명의 존재가 각자 다른 사고방식으로 이 일에 말려들길 바랐다. 이 캐릭터들이 많이 만나진 않는다. 스쳐 지나가면서 만들어가는 짧은 찰나의 인연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찍었다.”

최동훈 감독은 총을 쏘는 여성의 이미지가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전했다. 사진은 이안을 연기한 김태리 스틸. /CJ ENM
최동훈 감독은 총을 쏘는 여성의 이미지가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전했다. 사진은 이안을 연기한 김태리 스틸. /CJ ENM

-신검, 부채, 권총 등 다양한 무기가 눈길을 끌었다. 캐릭터가 가진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시나리오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있었을 때 떠오른 단상 같은 걸 꼽으라고 한다면, 과거 어느 여인이 그 시대 사람처럼 있지만, 태연하게 총을 꺼내서 총알을 장전하는 모습이다. 처음 떠오른 이미지였다. 전작에서도 많은 여성캐릭터가 총을 쏘긴 하는데, 시대에 맞지 않은 소품을 갖고 있는 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부채는 이 영화의 개념을 잘 설명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접으면 간단하고 작아 보이지만 펼치는 순간 공간이 너무 넓어진다. 동양적인 마인드가 잘 담겨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무륵에게 부채를 쥐여 주고 그 부채 안에 잘 꺼낼 수 없는 무거운 칼 두 자루를 담아놓고 그것을 꺼내 쓰면 좋겠다는 게 무륵의 스토리였다.

그리고 도술을 할 때 어떤 아이템을 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두 신선(흑설‧청운)에게 뭘 안겨줄 수 있을까. 부적은 전 동양이 다 쓰는 것이니 아시아의 어떤 관객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걸 계속 찾았다. 그러다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졌던 다뉴세문경을 알게 됐다. 지금의 세공술, 과학으로 미스터리한 거라 하더라. 가느다란 선이 청동 거울 안에 그어져 있다. 되게 신비롭고, 그것이 도술에서 무기가 된다면 어떤 방식일까 고민하면서 찾아냈다.

-외계인과 로봇 설계는 어떻게 했나. 어떤 모습으로 보이길 바랐는지. 
“내가 원한 외계인은 입이 막혀있길 바랐다. 무성영화의 마임 같길 바랐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약간 무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발전시켜 나갔다. 로봇은 두 가지가 나온다. 가드가 변해서 나오는 로봇은 믿음직스럽고 한 번에 인식되길 바랐다. 외계에서 내려온 붉은색 로봇을 만드는 건 어려웠다. 어두운 복도에서 코너를 꺾어 올 때 ‘저건 뭐지?’라는 두려움이 들길 바랐다. 여러 로봇을 디자인하다가 이 디자인만큼은 영국에 있는 디자이너에게 판권을 구매해서 영화에 쓰겠다고 했다.” 

최동훈 감독의 작품에는 유머와 위트가 녹아있다. 사진은 무륵을 연기한 류준열 스틸. /CJ ENM
최동훈 감독의 작품에는 유머와 위트가 녹아있다. 사진은 무륵을 연기한 류준열 스틸. /CJ ENM

-유머, 코미디 요소도 눈에 띄었다. 감독의 작품에서 코미디는 어떤 장치고 의미인가.   
“나는 한국의 코미디언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남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안에서 코미디는 숨통을 트여주기도 하고 바쁘게 흘러가는 스토리 속에서 한 번쯤 재정비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준다. 미국 빌리 와일더 감독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그건 평범한 일이지만, 갑자기 차 문을 열고 들이닥친다면 그것은 우스꽝스러우면서 극적’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남들은 바쁜데 여기는 우당탕탕 하는 게 현실적이기도 하고 매력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넘치면 안 되니까 선을 찾아가는 게 힘들고 어려웠다. 이 영화의 코미디는 대부분 배우의 연기력에 의존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로봇, 외계인 등이 등장하는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이고 신선했다. 배경을 고려시대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선시대로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제일 강했다. 이미 많이 보이고 익숙한 시대였고, 이 영화에는 익숙하지 않은 과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고 조선시대가 아닌 시대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려말로 설정하게 됐다. 또 고려시대의 복식을 영화 속에서 표현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고려시대에 갑자기 현대적 차를 등장시키는데, 이 영화가 이런 영화라는 걸 프롤로그에서 다 이야기하고 싶었다.” 

오직 재밌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최동훈 감독. /케이퍼필름
오직 재밌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최동훈 감독. /케이퍼필름

-여러 인물, 다양한 인간 군상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감독 작품의 특징이다. 이러한 연출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 데뷔할 때 책상에 포스트잇으로 써서 붙여 놨다. 주인공 다섯 명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그때는 보통 한두 명의 주인공이 극을 끌어갔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서점에 가서 서점 직원과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 나와서 주인공의 일을 하게 되겠지. 그런데 그 서점 직원이 다시 나온다면? 그는 이제 스토리 안에서 꽤나 중요한 인물이 되는 거다. 대부분의 영화는 그 서점직원을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쓸 텐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우가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 나는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또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내가 어떤 것을 싫어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봤는데, 주인공이 따로 없는 것 같은 스토리를 좋아하더라. 어떤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과 이유를 가지고 하나의 사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스토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느꼈다. 왜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게 해서 만나는 것, 누군가는 스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굵은 관계를 맺기도 하면서 사건이 끝났을 때는 마치 인간사처럼 헤어지며 이야기가 끝나는 것.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감독의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독에게 ‘외계+인’이 가진 매력과 의미는 무엇인가.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닿았으면 하나. 
“‘어벤져스’만큼 재밌는 영화라는 망발을 하긴 했는데, 그만큼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북유럽 신화에서 가져온 ‘토르’처럼, 우리나라에도 그것에 버금갈 훌륭한 옛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모험극을 만들자 생각했고, 내게는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만들 수 있을 만큼 재미가 있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개봉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만들었다. 이런 영화가 있구나, 영화가 가진 상상력과 호기심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대중의 높은 기대가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나.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매일 집에만 있고 영화를 보고 만들고 있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데,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를 들으면 그만큼 부담감이 느껴지긴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의 영화를 기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열심히 더 노력해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다른 이들도 좋아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한다. 나중에 영화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나 자신은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고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영화를 만드는 하루하루가 더 중요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외계+인’ 다음 이야기 말고, 지금 진행 중이거나 구상 중인 작업 혹은 더 펼쳐내고 싶은 감독의 상상력은 무엇인가.  
“정말 말 그대로 두 명만 나오는 영화를 찍어볼까 싶기도 하다.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그건 못 찍을 것 같아’라고 하더라. 내가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할 수 있겠지 싶다. 지금은 ‘사랑’이라는 게 참 어렵고 소중하고 쓸쓸하고 아프고 너무나 아름답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하다. 열심히 고민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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