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경찰청은 넉달 간 디지털 성범죄 피의자 총 801명을 검거하고 이 중 53명을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연미선 기자  #지난해 8월 A씨는 인터넷으로 알게 된 미성년자에게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 알몸 영상 등을 전송받아 아동성착취물을 제작했다. 추가 영상 전송요구에 응하지 않자 A씨는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했다. 경찰청은 A씨를 검거하고 구속 수사 중에 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은 올해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동안 디지털 성범죄 집중단속을 시행 중이다. 집중단속 4개월(3월 1일~6월 30일) 간 디지털 성범죄 피의자 총 801명‧786건을 검거하고 이 중 53명을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불법행위에 대한 인식 부재가 지목된다.

디지털 성범죄는 디지털 기기와 정보통신기술을 매개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발생하는 성인지(젠더) 기반 폭력이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신체일부 혹은 성적인 장면을 불법 촬영하거나, 불법촬영물 등을 유포‧유포협박‧저장‧전시 또는 유통‧소비하는 행위, 타인의 성적 자율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모두 포괄한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올해 4월 발간한 ‘2021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8년~2021년) 접수된 디지털 성범죄 피해발생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총 1만353건이며, △유포불안(25.7%) △불법촬영(21.5%) △유포(20.3%) △유포협박(18.7%) △사이버 괴롭힘(5.1%) △편집‧합성(1.7%) 순으로 많았다.

◇ “불법행위라는 인식 미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텔레그램 n번방 등 온라인 매개 성폭력 사건들을 통해 본 이 시대 성폭력의 특성’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는 △불법행위라는 인식 미미 △온라인 특성 상 무한한 피해의 가능성 △피해자의 취약성 이용이 쉬움 △범행 은폐의 기대 높음 △성차별적 성의식 위에서 성립하는 범죄 등의 특성을 가진다.

특히 촬영 및 유포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디지털 성범죄 안내서에 따르면 동의하고 영상을 찍었어도 동의 없이 유포하면 불법이다. 영상 유포 협박 또한 불법이다. 거절하기 두려워 수락한 것도 동의가 아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상대를 성적인 대상으로 놓고 자신이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관념, 타인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적 대상화하는 관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디지털 성범죄가 어떤 종류의 피해를 일으키고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받는지 보도가 간간히 되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공감이 되지 않고 있다”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장난처럼 느껴져도 피해자는 매우 고통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정형이 낮은 것은 사실이고 처벌 강화도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강제추행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을 정하고 있는데, 불법촬영 등도 강제추행에 부분적으로 포함되고 그 정도가 낮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정형은 강제추행보다 낮은 수준, 충분히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수사과정과 법이 적용되는 과정에서도 “성적 대상화에 대한 피해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피해에 비해 처벌 수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 경찰 “디지털 성범죄, 엄정 단속할 것”

특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할 전망이다. 경찰은 지난해 9월 개정된 청소년성보호법 시행으로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위장 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결과 시행 후 9개월간 총 147건의 위장 수사를 해 피의자 187명을 검거하고 1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남은 단속기간 동안 기존의 단속체계를 더욱 강화하고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 위장 수사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10대를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 교육도 필요해 보인다. 경찰이 최근 4개월간 사이버성폭력 집중단속을 한 결과 아동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에 가담한 피의자 절반 이상이 10대 청소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제작‧배포 행위에 대해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다. 아동 청소년에게 신체 사진 촬영을 요구해 그 촬영물을 전송받거나 타인에게 배포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앞으로도 위장 수사 제도뿐만 아니라 일반 사이버 수사기법, 국제공조수사 등을 총망라해 엄정하게 단속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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