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이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으로 돌아왔다. /BH엔터테인먼트​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이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으로 돌아왔다. /BH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이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으로 돌아왔다. 매 작품, 관객의 기대 그 이상을 충족시키는 그는 이번에도 한계 없는 소화력과 깊은 연기 내공을 보여주며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재난상황에 직면해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리얼리티 항공 재난물이다. 영화 ‘관상’(2013), ‘더 킹’(2017) 등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지난해 제74회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 공식 초청돼 호평을 얻었다. 지난 3일 개봉해 국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병헌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했다. 극 중 딸아이의 치료를 위해 비행기에 오른 탑승객 재혁으로 분했다. 재혁은 아토피로 고생 중인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을 견디고 비행기에 오르지만, 자신이 탄 비행기가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을 맞게 되는 인물이다. 

이병헌은 혼란스러운 재난 상황 속에서 딸을 지키고 싶어 하는 절절한 부성애와 어려운 상황 속 타인을 도와주고 싶은 이타심,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까지 인물의 다양한 심리 변화를 내밀하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자신이 비행기에서 실제 겪었던 감정을 이끌어내며 보다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완성,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이다.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팬데믹 이후 관객과 만나는 것에 대해 “감회가 새롭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비상선언’에 대해서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는 이병헌. /BH엔터테인먼트​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는 이병헌. /BH엔터테인먼트​

-‘남산의 부장들’ 이후 팬데믹을 겪고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기분이 어떤가.
“영화 촬영은 쉼 없이 했다. 1년에 두 번, 적게는 한 번 작품을 공개하고 무대 인사를 통해 관객들을 직접 만나는 게 일상이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늘 해왔던 일을 하지 못했는데, 지난 시사회를 통해 몇 년 만에 다시 관객과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감사한 마음이다. (‘비상선언’ 개봉 일정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어쩌면 훨씬 더 이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도 굉장히 좋았다.”

-극 중 재혁은 딸을 둔 아빠이자, 비행 공포증을 겪으면서도 위기의 상황 속 다른 승객들을 챙기는 남다른 책임감을 지닌 인물이었다. 어떻게 캐릭터를 이해하고 접근했나. 
“처음 이 캐릭터를 받았을 때 아주 평범한 아빠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사람의 전사라든가 과거의 트라우마라든가, 어떤 직업을 가졌고 왜 이렇게 공포스러워하고 불안해하는지 나오긴 하지만, 어쩌면 재혁은 이 영화 안에서 당황스러움, 공포감, 두려움 등의 감정을 가장 먼저 표현하는 대변인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재혁이 마치 히어로처럼 짠하고 나타나서 영웅화되는 느낌이 가장 안 좋은 예라고 생각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트라우마가 있어서 비행기 조종석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상황 속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 긴장하며 숨을 고르면서 어쩔 수 없이 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졌으면 했다. 갑자기 영웅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언론배급시사회 당시 공황장애를 고백했다. 그 경험이 재혁의 서사와 감정을 더 이해하고 공감하게 했나. 
“더 공감했다기보다 내가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재혁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감독과 가장 많이 이야기한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 재혁이 어떤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 몸의 증상이 어떤지 호흡이 어떤지, 또 그 호흡으로 인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얼굴 표정은 어떤지 등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공황장애에 대한 표현은 영화에서는 슬쩍 보이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정말 리얼하게 잘 표현하고 싶었다.”

-부성애 연기를 보여줬다. 실제 아빠가 된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했나.
“나도 아이가 있는 아빠로서 직접 한 경험이 연기하는데 확신 혹은 자신감을 줬다. 다만 나는 아들밖에 없으니 딸을 가진 아버지가 어떤 모습인지 주변 사람들을 많이 관찰했다. 확실히 되게 다르더라. 아이와 노는 방법도 다르고. 또 하나 재밌는 것은 ‘백두산’에서 딸 역할을 했던 친구(김시아)와 이번 ‘비상선언’에서 딸을 연기한 친구(김보민)가 자매다. 내가 두 자매의 아빠 역할을 다 하게 됐다. 둘 다 참 좋은 배우들이다. 연기를 하면서 어떻게 그 나이에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쿨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 놀랄 정도였다. 정말 좋은 배우가 될 친구들이다.”

부성애 연기를 펼친 이병헌. /쇼박스​
부성애 연기를 펼친 이병헌. /쇼박스​

-지상에서 연기한 배우들은 비행기 세트 촬영이 부러웠는데 직접 가보니 공포스러웠다고 하더라. 직접 경험한 세트는 어땠나.  
“비행기 내부에서만 촬영한 배우도 있었고, 밖에서만 촬영하는 배우도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고 부러워하면서 촬영했다. 안에만 있는 배우들은 답답하니까 밖에서 촬영하면 덜 덥겠다고 생각했고, 밖에서 하는 사람들은 한 군데서만 촬영하니 편하겠다고 서로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아래에 있는 이들의 안절 부절하고 어수선하고 답답하고 힘든 상황이 느껴지더라. 비행기 안에서 촬영한 배우뿐 아니라 모두 다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내부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 특히 무중력 낙하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360도 회전하는 짐벌(Gimbal)도 제작했는데,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미국에 요청을 했었는데,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딜레이 됐고 결국 못 오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 팀에서 직접 짐벌을 만들고 제작에 들어갔다. 할리우드에서도 이렇게 큰 사이즈의 비행기를 돌린 적이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세트 안에 들어가서 촬영하는 게 겁나고 긴장됐다. 물론 탑승하기 전에 여러 번 테스트를 통해 안정성이 검증됐다고 하지만 100명 정도 되는 인원이 탑승한 상태로 돌리는 것은 또 다르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별의별 생각을 다했는데, 그런 공포가 연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돌릴 때마다 긴장했지만 며칠 지나니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여유롭게 탈 수 있었다. 대단한 촬영이었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비행기를 돌릴 수 있는 짐벌을 만들고 끝까지 잘 해냈고 이 영화의 시그니처 장면 중 하나가 됐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후반부는 이병헌의 ‘탑건’을 보는 것 같다는 반응도 있다. 비행 장면을 촬영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나.
“김남길과 항공 교육을 받았다. 파일럿의 자연스러운 터치나 손길, 워딩 등을 교육받고 연습하면서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사실 비행기 안의 모습들은 실제와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가 흔들린다고 해서 우리 몸의 움직임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보일 때는 움직임을 살짝 주는 것이 더 실제 같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아닌 걸 알지만 실제처럼 보이기 위해 오히려 거짓말을 한 것 같은 상황도 있었다. 그 접점을 찾는 게 애매했고, 답이 없기 때문에 늘 불확실성에서 정해야 해서 어려웠다.”

또 한 번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 이병헌. /BH엔터테인먼트​
또 한 번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 이병헌. /BH엔터테인먼트​

-송강호‧전도연 등 충무로 대표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함께했다. 전작에서도 인연을 맺었던 배우들이었는데, 재회한 소감은.
“작품을 할 때 결과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잖나. 아무리 시나리오가 좋고 좋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잘못된 길을 따라가다가 영화가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일단 함께 호흡하게 되는 캐스트가 훌륭한 배우들인 경우에는 자신감이 생긴다.  의지할 수 있고. 또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배경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한재림 감독은 어떤 연출자였나.   
“같이 일해 본 감독 중 가장 집요하다고 생각한 감독이 김지운 감독이었는데, 그 선을 뛰어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집요하고 이토록 섬세하고 디테일에 목을 매고. 그래서 결국 배우들에게도 좋은 연기가 나오고 여러 가지 상황이 다 좋아진 것 같다. 정말 아주 집요한 감독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비상선언’ 속 재난은 실제 우리가 겪은 팬데믹 상황과 겹쳐 보이는 지점이 많았다. 특히 한국사회에 만연해지고 있는 배타성이나 혐오 정서를 반영한 게 인상적이었는데, 배우는 어떤 공감을 했나.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 팬데믹이 시작됐다. 다들 너무 당황스러웠다. 현실이 영화를 앞서나가는구나 걱정을 하면서 촬영을 했다.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는 감정 이입이 너무 심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를 보면 여러 인간 군상이 나오는데, 과연 나라면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지 않나 싶다. 우리가 팬데믹을 겪고 난 이후라 생각이 더 깊어지고 많아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병헌 연기는 정말 인정’이라는 반응이 매 작품 나온다. 이런 반응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정말 행복하다. 사실 똑같은 말을 계속 듣는 것이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는데, 그 말은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 배우로서 행복한 말이다. 물론 기대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온전히 진정성 있게 최선을 다했다고 판단이 되면 그 이후는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된 것 같다. 보통의 경우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니 그것에 기대어 계속 일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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