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박희순이 넷플릭스 시리즈 ‘모범가족’으로 전 세계 시청자 앞에 섰다. 또 ‘조폭’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멋’과 내공으로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이며 보는 이들을 매료한다.
지난 12일 공개된 ‘모범가족’은 파산과 이혼 위기에 놓인 평범한 가장 동하(정우 분)가 우연히 죽은 자의 돈을 발견하고 범죄 조직과 처절하게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남은 넷플릭스 범죄 스릴러 시리즈다.
넷플릭스 시리즈 ‘좋아하면 울리는’ 시즌2와 드라마 ‘굿 닥터’ ‘힐러’ ‘슈츠’ 등으로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인 김진우 감독이 연출을 맡아, 각자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얽혀버린 이들의 위태로운 이야기를 그렸다.
박희순은 ‘모범가족’에서 사라진 조직의 돈 가방을 쫓아 동하를 추적해가는 마약 조직의 2인자 광철을 연기했다. 광철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도 좋고 배신할 수도 없는 동하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며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가는 인물이다.
박희순은 2인자의 카리스마와 조직에 충성하지만 혈연으로 묶인 이들 사이에서 발붙이지 못하는 외로움을 동시에 가진 광철의 이중적인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해 공개돼 큰 사랑을 받았던 ‘마이네임’ 무진과는 또 다른 얼굴로 메마른 광철을 완성하며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이다.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박희순은 “‘마이네임’ 무진이 뜨거운 불같았다면, ‘모범가족’ 광철은 메마르고 건조한 사람이었다”고 차별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힘을 빼고 연기했다”고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모범가족’을 택한 이유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여러 유사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게 좋았다. 기존에 있던 순한 맛의 가족 이야기가 아닌,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어서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또 가족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사건으로 얽혀감으로써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 벌어지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마이네임’으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 또 한 번 글로벌 시청자를 만나게 됐다. 기분이 어떤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날 수 있다는 게 OTT의 매력이자 장점인 것 같다. 반갑고 기쁘다. ‘마이네임’ 이후 해외 팬들도 메시지를 보내주신다. 소위 말하는 ‘짤’도 어느 편집기사 못지않게 정교하게 만들어주신다. 뿌듯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그렇다. ‘마이네임’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그분들에게 또 새로운 작품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고 설렌다.”
-‘마이네임’ 무진에 이어 또 조직보스를 연기했다. 어떤 차별점을 뒀나.
“무진은 불같은 사람이다. 열정적이고 자기애가 강하고 아주 뜨거운 인물이었다. 반면 광철은 메마르고 건조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론 배우 박희순이 연기하기 때문에 유사점이 있을 수 있고 연관성을 줄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또 감독에게 최대한 힘을 빼고 연기하겠다고 했다. 열연하지 않겠다고. 감독도 내가 생각한 것과 같았다. 디렉션도 ‘지금 좋은데 조금만 더 대충 해주실래요’였다.”
-광철은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기보다 눈빛이나 표정으로 주로 표현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광철은 가족에 대한 결핍이 있는 인물인데, 그 결핍을 대사로 이야기하는 게 없기 때문에 눈빛이나 표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내재돼 있는 광철의 심정을 머금고 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고, 그와 동화되기 위해 고민했다. 물론 어려웠다. 대사가 있으면 한 번에 표현될 텐데, 관객이 읽어주길 바라야 하니 어려움은 있었다. 그러나 작품의 미장센이나 배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동화된 것 같다.”
-과거 회상 신에서 황용수(최무성 분)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살짝 미소를 보이는 게 광철이 유일하게 웃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해당 장면에서 광철의 감정을 어떻게 해석했나.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가족이 생긴 거야’라는 용수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가장 결핍이 있고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나타난 장면이기 때문에 그 미소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개 때문에 가족을 버릴 수 없잖냐’는 용수의 말에는 쓴웃음을 짓는다. 어색하지만 행복한 미소와 약간의 눈물이 고인 쓴웃음. 그 두 번의 미소가 광철을 다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캐릭터의 결핍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의 결핍을 끌어내보기도 했나.
“인간은 누구나 다 고독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업을 하고 협업한다고 해도 결국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나다. 내가 모든 걸 해결해야하기 때문에 항상 외롭고 공허함을 갖고 있다. 나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김진우 감독의 연출력도 돋보였다. 작업은 어땠나.
“나랑 작업했을 때 장면만 확인했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했을까 어떻게 화면에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미장센이나 감독이 추구하려고 했던 부분이 너무 잘 살아서 깜짝 놀랐다. 감탄하면서 봤다. 나랑 할 때는 설렁설렁했던 것 같은데, 다른 배우와 했을 때는 영혼을 갈아 넣었더라.(웃음) 광철은 거의 새벽녘과 해 질 녘 촬영이 많았는데, 그렇게 고집한 이유를 완성된 시리즈를 보면서 알았다. 노을빛과 광철의 피 묻은 얼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더라. 감탄했다.”
-광철의 오른팔, 중배를 연기한 문진승도 인상적이었는데.
“문진승은 아주 좋은 직장에 다니다 갑자기 배우를 하고 싶어 도전한 친구다. 안정적인 직장도 있고 독일어도 잘하고 조용히 잘 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쪽으로 넘어왔다. 왜 왔냐고 했다.(웃음) 그 좋은 직장을 버리고 다 때려치우고 온 친구이기 때문에 그만큼 절실함이 있다. 훤칠하고 멋있고, 좋은 배우라고 느꼈다.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하라고 했다. 공개되고 나서 반응이 좋아서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허성태 배우도 뒤늦게 시작해서 성공했듯, 우리 진승이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그렇게 될 것 같다.”
-‘마이네임’ 이후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는 생각도 든다. ‘으른섹시’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배우는 지금 이 시기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나.
“단어 자체가 낯설기도 하고 들어보지 못한 수식어라 쑥스럽다. 뭐 기분은 좋다. 섹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자꾸 섹시하다고 하니까, ‘나 섹시하대?’라고 물어볼 정도다. 전성기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작품이 끊이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지금처럼 이렇게 좋은 작품에 초대해 주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해나가겠다”
-다른 장르나 역할에 대한 갈증은 없나.
“갈증은 항상 있다. 나를 자꾸 어두운 쪽에서 쓰려고 하는 제작자, 감독 덕분에 어둠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웃음) 하지만 날 써주시는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작품에 임하고 있다. 어두운 역할이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고민이 되진 않는다. 이 나이에 작품 들어오는 게 어딘가. 감사하고 있다. 다행히 ‘마이네임’ 이후 새로운 캐릭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범가족’ 광철은 찍고 있을 때 들어왔다. 공개되고 나서 들어오는 어둠의 자식은 없다. 다양하게 들어오고 있어서 잘 선택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