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2일(현지시간) 토론토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초청 간담회에서 김정희 토론토 한인회장의 환영사를 경청한 후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2일(현지시간) 토론토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초청 간담회에서 김정희 토론토 한인회장의 환영사를 경청한 후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다자외교를 위해 야심차게 두 번째 순방을 떠난 윤석열 대통령이 순방지에서 위기를 맞았다. 통상 순방을 다녀오면 대통령 지지도가 높아졌는데, 이번에는 순방이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기도 하다. 대통령이 해외순방지에서 위기를 맞은 원인은 무엇일까. 

◇ 한미·한일 정상회담, 애초 성사가 어려웠다?

사실 이번 순방의 가장 큰 이슈는 윤 대통령이 ‘비속어’를 섞은 ‘막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은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는 물이 가득한 잔에 ‘한 방울’을 더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이미 윤 대통령은 첫 순방지인 영국에서부터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교 참사’라는 지적이 나오게 된 시초는 출발 전에 존재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시작은 한미·한일정상회담 개최 확정 발표라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대통령실은 순방을 떠나기 전인 지난 15일 “미국, 일본과는 양자회담을 하기로 일찌감치 서로 합의해 놓고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러니 국내에서는 윤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 정상을 만나서 의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당초 성사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간선거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국내 물가 등을 잡아야 했다. 거기다 양 정상은 지난 5월 만나기도 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과 통화스와프 등 현안이 있으니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남이 간절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國葬) 문제를 두고 국내에서 여론이 좋지 못했다. 일본 사회에서 인식이 좋지 못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와 아베 전 총리의 유착 관계가 있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국장을 선언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까지 20%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혐한 정서가 있는 자민당 지지층을 고려하면 한국과 정상회담을 꺼릴 가능성이 높았다. 또 강제징용 등 현안에 대한 해답을 꾸준히 요구해오기도 했다. 게다가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까지 겹쳤고, 이는 세계 여러 국가 정상의 일정 변동을 초래했다. 

◇ ‘48초의 조우’와 ‘30분의 약식회담’ 

결국 윤 대통령은 예고했던 한미·한일정상회담을 하지 못했고, 순방 전 예고에 없던 한독정상회담이 열렸다. 한미정상회담은 아예 무산됐고 ‘48초’의 ‘조우’로 바뀌었다. 대통령실의 설명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뉴욕 일정이 축소되면서 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를 제외하고는 회담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잠시 만나는 동안 IRA, 한미 통화스와프, 확장억제 등 핵심 현안에 대한 협의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영국 뿐 아니라 프랑스, 필리핀 정상과 정식회담을 가졌다. 

한일정상회담은 기존에 예고한 회담이 아니라 ‘약식회담’의 형식으로 열렸다. 대통령실은 ‘약식회담’은 회담 의제를 정하지 않고 만날 때 쓰는 용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약식회담은 한국의 주장일 뿐, 일본 정부는 한일 ‘약식회담’을 ‘비공식 간담(懇談)’으로 발표했다. 또 장소가 정해지지 않아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참석한 행사 장소에 찾아가 만나는 형식이 되면서, 한국이 ‘굴욕 외교’를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2세 조문을 하지 못했다는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영국 왕실과 협의된 일정대로 움직였다고 강변했지만,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전 9시 출발한 것이나 찰스 3세 국왕 주최 리셉션 이후 조문을 가지 않은 것을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다. 대통령실과 총리가 예시로 들었던 우르줄라 EU집행위원장, 카테리나 그리스 대통령 등은 이미 참배를 마쳤다는 반박도 나온다. 

◇ ‘성급한 발표’… 외교라인 경질 주장도

결론적으로 대통령실이 ‘성급해서’ 위기를 맞았는 지적이다. 오준 전 유엔대사는 2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외교의 본질보다는 외교의 행사나 의전 등을 다루는 데 있어서 미흡했던 부분들이 있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오 전 대사는 인터뷰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조문 불발과 성급한 한미정상회담 발표, 한일정상회담에서 미흡한 점을 언급했다. 

오 전 대사는 “영국 여왕 조문과 유엔총회 참석은 (5년 단임제인) 우리 대통령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한미정상회담에 대해선 “미국도 어느 정도 회담 가능성을 이야기했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성과로 미리 얘기한 게 아닌가”라며 “이번 경우 우리 현안에 많아서 정상회담이 정해졌나 했는데 발표가 너무 성급했다. 그러한 발표는 완전히 정해진 후에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한일 약식회담에 대해서는 “‘만남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좋았을 뻔했다. ‘어디 가서 만나느냐’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느냐’ 이런 것이 부각되는 거에 끌려다니지 말고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일 정상 간 만남에서 강제징용 등 갈등 현안의 해법이 나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는 방식으로 연출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대통령실의 ‘확정 발표’를 비판했다. 박 전 원장은 이날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여왕) 조문, UN 연설, 바이든 48초, 한일 약식 회담, 이건 모두 실패했다”며  “한미,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외교부는 (상황을) 잘 알지 않느냐. (외교부가) 실질적으로 반대했다는 소리도 있다. 그런데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밀어붙여서 그런 멍청한 바보 같은 발표를 해서 이 망신을 당했다”고 맹비난했다. 

박 전 원장은 “어떻게 됐든 외교부 의전 팀이나 특히 대통령실 의전 팀들, 외교 안보 라인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김 1차장은) 어떤 경우에도 나가줘야 윤 대통령이 (취임) 120~130일 만에 생기는 외교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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