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디지털 성범죄는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개념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인식으로부터 다양한 2차 가해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연미선 기자  “N번방이 보도됐을 때 저희는 솔직히 놀랐어요. N번방 전부터, 사실 지금도 몇 천개의 N번방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조주빈이 비정상적인 범죄자라기보다는 수많은 조주빈 중에 한 명이 드러난 것뿐입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지난 2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만큼 쉽게 디지털 성범죄가 자행되고 가해자가 양산되고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짚었다.

통계로만 봐도 대검찰청이 매년 발표하는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4대 강력범죄(흉악) 중 성범죄 비율이 2020년 91.7%(3만105건)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성범죄 중 디지털 성범죄는 24%를 차지하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 외 △살인 △강도 △방화의 강력범죄(흉악)은 각각 2~3%로 꾸준히 감소 중에 있다. 

지난 20일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를 만나 디지털 성범죄 실태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은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 십대여성인권센터

◇ ‘선택권 없는’ 선택… ‘네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2차 가해

여타 범죄와는 다르게 유독 성범죄에만 있는 이상한 특징이 있다.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의 가해 사실이 아니라 피해자가 왜 피해를 당했는지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절도 피해자가 있다고 해보자. 어떤 사람이 지갑을 손에 들고 있을 때 날치기가 그걸 훔쳤다고 해서 지갑을 손에 들고 있던 사람이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성범죄에서는 피해자에게 우선 원인이 있었는지를 확인한다.

디지털 성범죄일 경우 더 그렇다. 현 형법상 ‘강제성’이 있어야 성폭력으로 인정이 되는데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는 경우 ‘강제’와 ‘자발’이 더 모호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피해자가 일탈 계정을 운영했기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식의 시각을 조진경 대표는 말도 안 된다고 본다.

이런 사회의 시각은 피해자를 피해자가 아니라 ‘가담자’로 남게 만든다. 조진경 대표에 따르면 가해자는 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일탈 계정을 운영하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삼거나 온라인 게임이나 채팅을 통해 ‘게임 아이템이나 용돈을 줄 테니 사진을 보내보라’는 식이다. 이어지는 ‘일탈계를 하는 것을 학교에 알리겠다.’ ‘모르는 사람이랑 사진 교환한 것을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말은 엄연한 협박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에 드러났을 때 협박과 강제성은 사라지고 ‘피해자 스스로 행동했다’만 남는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인 리셋도 동일한 부분을 강조했다. 리셋은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런 시각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진다”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갖은 핑계를 찾아주는 쪽으로 진화한다면 결국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과 동일한 인지구조를 갖게 되고 이를 당연히 여기게 되는 참담한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라 경고했다. 

◇ 2차 가해, 수사사법 기관에서도 반복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태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2차 가해가 된다. 피해자가 가담했기 때문에 사건이 경미하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는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수사공조와 피해입증을 위해 텔레그램 방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있는 리셋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2차 가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셋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거나 합의를 종용하고 ‘못 잡는 SNS하지 마라’는 등의 경찰의 2차 가해는 꾸준히 발생해 왔다”고 전했다.

사실 신고하는 과정부터 난관이다. 불법 촬영, 촬영물 유포 등 전형적인 디지털 성범죄가 아닌 경우 성폭력 사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피해자 진술도 안 됐는데 접수가 반려되는 피해자 경험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21년 열린 디지털 성범죄 판례분석 간담회에서 한국사이버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 활동가는 “여전히 디저털 성폭력은 구조적 폭력이 아닌 가해자를 잡을 수 없는 곤란한 사건, 성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사건으로 사소화 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십대여성인권센터가 모니터링을 통해 캡처한 80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1심에서는 80개 모두 아동‧청소년임이 명백하다고 인정돼 해당 가해자는 8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2심에서 80개 중 6개를 제외한 나머지 영상 모두 무죄로 인정됐다. 눈에 모자이크가 그어져 있는 등 아동‧청소년임이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무죄를 받은 영상 두 개와 아동‧청소년임이 인정된 영상 두 개는 동일 인물이었다. 조진경 대표는 “둘은 아이의 얼굴이 나와서 인정됐고, 나머지 둘은 뒤통수가 나왔기 때문에 인정되지 않았다. 네 개의 영상 모두 같은 아이인데도 말이다”라며 한탄했다.

성범죄를 경미하게 바라보는 재판부의 시각은 미온한 형량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N번방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소지했던 조주빈의 공범이 ‘단순한 소지‧방조’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처럼 말이다. 이로써 가해자는 더 당당해진다. 일부 가해자 커뮤니티에서는 집행유예 혹은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자랑하는 글도 발견된 바 있다.

리셋은 세상에 단순한 디지털 성범죄는 없다고 지적했다. 리셋은 “상대적인 경중은 있겠으나 특정 범죄 유형 자체를 ‘단순한’ ‘가벼운’ 행위로 치부하는 것은 결국 처벌의 위하력을 행사할 생각이 없고 처벌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