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극장가에 묵직한 울림을 안긴다. /엣나인필름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극장가에 묵직한 울림을 안긴다. /엣나인필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못 만나도 가족이고, 죽어도 가족이다. 나의 가족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 비극을 파헤치며 묵직한 울림을 안겼던 양영희 감독이 또 한 편의 아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낸다.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서로 생각은 다르지만 따뜻한 수프를 나눠 먹게 된 한 가족이 어머니가 평생 숨겨 온 비밀을 알게 되며 점점 서로를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인 흰기러기상, 제47회 서울 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오사카와 세 오빠들이 살고 있는 평양을 오가며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디어 평양’(2005), 북한의 입국 불허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평양에 거주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굿바이 평양’(2009), 그의 첫 극영화인 ‘가족의 나라’(2012) 등을 통해 베를린국제영화제 2관왕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재일교포 감독 양영희의 새로운 다큐멘터리다.

양영희 감독은 이번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1948년 4월 3일, 제주 4.3 현장에 있었다는 어머니 고(故) 강정희 여사의 고백을 시작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고찰로 이야기를 확장해 묵직한 울림을 안긴다. 특유의 진솔하고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연출력을 바탕으로 깊고 진한 여운을 선사하는 것은 물론,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비극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속 양영희 감독(왼쪽)과 그의 어머니 강정희 여사. /엣나인필름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속 양영희 감독(왼쪽)과 그의 어머니 강정희 여사. /엣나인필름

양영희 감독은 30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어머니가 2004년부터 제주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다”며 “짧게 이야기하다 잊어버렸다고 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그만두기도 했는데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항상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제주 4.3 사건에 대한 것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분들이 만드는 게 맞고, 나는 가족에 대한 영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연출 계기를 밝혔다. 

제목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에 가도 멋대로 번역되지 않았으면 했다”면서 “또 어머니가 남편이 처음 집에 왔을 때 만들어준 음식이 닭 수프였다. 사상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한 번 밥이나 먹어보자, 사이좋게 밥을 먹으며 같이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양영희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어머니의 삶을 함께 돌아보며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같이 사는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얼마나 거만한 일인가 반성했다”며 “어머니의 정치적인 선택에 대해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조국을 갖고 싶어 했는지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양영희 감독은 ‘디어 평양’ 이후 북한으로부터 입국 금지를 당해, 가족과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양 감독은 “가족은 아주 귀찮고 번거롭고 미운 존재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보고 싶고 소중한 이들이기도 하다”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수록 정치적인 이유로 못 만나게 됐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것은 못 만나도 가족이고 죽어도 가족이라는 것”이라고 가족의 의미를 짚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머니에게 화를 많이 냈는데, 엄마는 내가 영화를 만드는 것을 계속 응원해줬다”며 “한 번도 그만두라고 하지 않아서 영화감독을 그만둘 수 없다. 만나지 못하게 됐지만 우리 딸이, 여동생이, 고모가 끝까지 열심히 만들었네 하는, 인정받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계속해서 가족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오는 2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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