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이 주주 반발에 부딪혔던 물적분할 계획을 철회했다. /그래픽=권정두 기자
풍산이 주주 반발에 부딪혔던 물적분할 계획을 철회했다. /그래픽=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이번엔 풍산이 백기를 들었다. 물적분할 방식의 분사를 추진하고 나섰다가 주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이를 철회한 것이다. 소액주주들의 ‘주주행동’이 또 한 번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긴 가운데, 기업들의 물적분할 추진은 한층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 주주 반발에 분사 철회한 풍산… “겸허히 수용”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4일, 풍산은 주요사항보고서를 정정 공시했다. 앞서 공시했던 회사분할 결정을 철회한다는 내용이다.

풍산이 분사 추진 계획을 처음 공시한 것은 지난달 7일이다. 방산 사업부문을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사시켜 가칭 ‘풍산디펜스’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분할 예정기일은 오는 12월 1일이었다.

풍산 측이 밝힌 분사의 목적은 사업부문별 전문성 및 경쟁력 강화였다. 풍산은 크게 신동사업 부문과 방산사업 부문을 영위 중인데, 각 사업부문을 독립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사업특성에 맞는 신속하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사업의 고도화를 실현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풍산의 이 같은 발표에 주주들은 곧장 반발하고 나섰다. 풍산 주주들이 반발한 이유는 앞서 물적분할 관련 논란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이유와 다르지 않다. 물적분할 이후 분사한 자회사가 상장할 경우, 기존 주주들의 투자가치가 훼손되고 투자기회도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풍산의 경우 분사의 명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물적분할 후 상장을 실행에 옮긴 LG에너지솔루션처럼 신규투자 자금이 필요한 것도, 비슷한 시기 분사를 검토했던 DB하이텍처럼 사업적인 배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분사를 추진하고 나선 시기도 의구심을 키웠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4일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관련 논란에 대한 대책 차원에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와 상장기준·기업공시서식 개정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엔 물적분할 이후 자회사 상장을 한층 까다롭게 하는 내용들이 담겼다.

그런데 풍산은 이 같은 발표 3일 뒤에 물적분할 추진을 공시했다.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대책이 내년부터 적용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를 피하기 위한 의도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에 풍산은 지난달 16일 한 차례 정정공시를 통해 물적분할 이후 주주보호방안을 추가하기도 했다. 물적분할 이후 신설 자회사의 상장 계획이 없다고 명시하는 한편, 상장 추진 시 존속회사인 풍산의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산 주주들의 반발은 계속됐고, 본격적인 집단행동 움직임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풍산 소액주주들은 세를 규합해 인적분할 방식의 분사를 추진하는 한편, 때마침 돌아온 국회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안이 다뤄지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나섰다. 

이에 풍산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풍산 측은 물적분할 방식의 분사 추진을 철회하는 이유에 대해 “최근 정부와 관계당국의 물적분할 관련 제도개선 추진 및 향후 일반주주 권익 제고를 위한 주주보호정책 전개 방향 등을 감안하고, 이번 분할에 대한 반대주주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경청 및 신중히 검토했다”며 “그 결과 주주총회 특별결의 가결요건의 충족 여부가 불확실해짐에 따라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해 다시 한 번 신중한 검토 및 논의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풍산 소액주주들은 뜻 깊은 성과를 내며 주주행동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됐다. 반면, 기업들의 물적분할 추진은 한층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풍산에 앞서 DB하이텍도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힌 끝에 분사 검토를 철회한 바 있다. 이처럼 주주행동이 물적분할을 저지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금융위원회 차원의 대책까지 나온 만큼 물적분할 추진에 따른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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