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최근 건설업계에 묘한 소문이 돌고 있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이 국회 고위인사에게 불려갔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 현대건설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일축하고 있지만, 소문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왜 이런 소문이 나돌고 있는 걸까.

▲ 사진=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업계에 떠돌고 있는 소문에 따르면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최근 정치권 고위 관계자의 ‘호출’을 받고 국회에 직접 출두했다. 해외사업과 관련, 현지 협력업체에 ‘갑의 횡포’를 부렸다는 이유에서다. 현지 업체의 억울한 사연이 각계에 알려지고 논란이 확산되자 정치권 고위인사 A씨가 직접 정 사장을 불러들여 경위를 설명토록 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이 같은 소문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소문일 뿐, 그런 일은 실제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을 비롯해 업계에서 왜 이런 소문이 제기된 것일까.

◇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된 ‘슈퍼갑의 횡포’
 
사실 이 같은 소문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현대건설의 인도네시아 사업과 깊은 연관이 있다. 현대건설은 인도네시아 수력발전소 건설 공사를 진행하면서 현지 협력업체에 부당한 횡포를 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사위크>는 앞서 이 같은 내용을 보도(현대건설, 해외서도 ‘갑의 횡포’ 논란)한 바 있다.

논란의 핵심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현대건설은 지난 2011년 인도네시아 전력청이 발주한 1억3,200만 달러(약 1,500억원) 규모의 푸상안 수력발전소 공사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말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했다. 이 공사에 현지 협력업체로 참여한 곳이 ‘현민인도네시아(대표 오재훈)’다. 현민인도네시아는 현지에서 20여년의 공사경험이 있는 중견건설사로, 토목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서로 윈-윈(win-win)을 기대한 이들의 관계는 계약 단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결정된 계약단가의 임의 변경 △일부 공사항목의 강제탈취 △과도한 선급금과 과다 유보금 △월간 기성 결재조건(지급기간 및 공제불평등) 등 여러 가지 사안으로 갈등을 빚었고, 결국 현재까지도 감정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좀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사안의 심각성이 앞선 설명처럼 단 몇 줄로 정리될 만큼 간단하지 않다.

현민인도네시아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현대건설의 횡포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현민인도네시아 오재호 대표는 최근 <시사위크>와의 만남에서 현대건설의 횡포에 대한 충격적인 실상을 폭로했다.  

▲ 사진=현대건설 인도네시아 수력발전소 위치도.
오 대표는 우선 현대건설이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부터 부당하고 강압적인 요구를 하면서 불합리한 계약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단가를 낮춰 달라’는 현대건설 측의 요구로 7차례에 걸쳐 견적을 다시 뽑았고, 3차례의 단가조정을 거쳐 힘겹게 가격조정이 완료됐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토목공사는 단가를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토목공사는 ‘단가계약’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라면서 “토목공사는 그 성격상 공사 진행에 따라 계약 외 물량의 증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공사총액계약이 아닌 ‘단가계약’으로 진행한다. 이에 물량의 증감으로 인해 발생할 제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현대건설 측에 단가조정안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현대건설은 ‘본사의 방침’이라며 ‘공사를 취소하고 싶으면 그리 하라’고 으름장을 놨다”고 전했다.

오 대표는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 측이 기안한 ‘단가조정내역서’를 정식공문 형태로 발송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건설 측은 ‘정식으로 공문을 보낼만한 사안이 아니다. 현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계약을 하자’며 문서화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오 대표는 막대한 손해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현대건설 측의 계약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불리한 조건인줄 알면서 계약서에 사인한 것은 오롯이 ‘현대건설’이라는 네임밸류 때문이었다는 게 오 대표의 말이다.  오 대표는 “대한민국 최고 건설사라는 점을 믿었고, 추후 인도네시아에서 발주되는 각종 공사에 ‘현대건설’의 협력업체로 동참하고자 하는 장미빛 희망도 있었다”면서 “여기에 해외에 진출한 현대건설을 돕고 공사를 잘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고 국위선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현대건설은 일부 공사 항목에 대해 직영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추가했다. 계약서에 ‘원청업체가 직접 운용할 수도 있다’는 조항을 넣은 것인데, 현대건설은 이렇게 지정한 4개 항목 중에 소위 ‘돈 되는’ 작업을 포함시켰다.
 
오 대표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숏크리트작업(shotcrete 분무기로 뿌려서 사용하는 콘크리트로, 절개지 비탈면에 콘크리트를 뿌리는 작업)을 비롯해 △오프컷(발파작업) △앵커볼트(구조물과 기초 부분을 연결하기 위한 볼트 작업) △템포러리 브릿지(임시다리 설치 작업)’ 등 4개 항목에 대해 직영운영을 요구했다.

▲ 사진=지난해 12월 14일, 재인도네시아 한인상공회의소 측에서 현대건설 정수현 사장 등에게 발송한 호소문.

◇ 해외수주 1,000억불 달성… 그 영광의 실체

문제는 ‘앵커볼트 작업’과 ‘템포러리 브릿지 작업’은 원청인 현대건설이 직접 담당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기술력과 자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템포러리 브릿지 작업의 경우, 규모가 2,000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간단한 작업이다. 결국 현대건설은 숏크리트와 오프컷 공사를 가져가려는 의도를 숨기기 위해 쓸데없는 2개의 공사 항목을 직영 대상에 끼워 넣은 뒤 계약을 강요한 셈이다. 숏크리트 작업은 약 40억 규모인 것으로 알려진다.

오 대표는 “2012년 6월 17일, 현장소장으로부터 ‘숏크리트 작업과 오프컷 작업에 대해 실제 공사는 현대건설이 수행하고 이에 대한 공사비는 현대건설이 갖겠다’는 요지의 강압적인 요구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이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현대건설은 ‘장사 한 두 번하느냐’ ‘이런 일은 업계 관행이다’ ‘편하게 공사하려면 협조하라’며 계약을 강요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오 대표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40억 규모의 공사에 대해 세금과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그 이후다. 현대건설은 ‘소위 돈 되는’ 공사를 가져간 이후 되레 오 대표 측에 ‘변경계약요청 공문’을 요구했다고 한다. ‘현민인도네시아 측은 숏크리트나 오프컷 공사를 수행할 능력이 안되니 현대건설에 해당 공사를 맡아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현대건설에 보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현대건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공문내용을 미리 준비한 뒤 오 대표에게 그대로 작성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 대표는 현대건설의 선급금과 유보금 문제도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 ‘선급금’이라고 하는 공사 착수금은 10~20%를 지불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계약금 형식의 공사 착수금인 선급금을 5%만 지불했다.

유보금 10%도 지나치게 과다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오 대표는 “7%의 기대 이익을 바라고 시공하는 우리 입장에서 유보금 10%는 너무 과도한 요구조건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사진=현민인도네시아 오재훈 대표가 현대건설의 부당하고 강압적인 횡포를 낱낱이 공개한 문건. 특히 현대건설 측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특히 불공정한 ‘월간 기성비 지급 조건’도 논란거리 중 하나다.   

두 회사가 체결한 ‘하도급계약서’에 따르면 월간공사대금결재조건은 30일 작업 후, 기성을 청구하면 현대건설의 검토과정을 거쳐 총 80일 후에 지불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는 결국 110일 동안 공사를 수행하는데 소요되는 장비비 및 인건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하도급업체인 현민인도네시아 측이 선투입을 해서 공사를 하고, 110일 이후에 공사대금을 받는 식이다.

이런 결재 조건으로 공사를 지속하게 되면, 공사가 완공될 때까지 협력업체에서 투입한 돈으로만 공사를 수행해야 돼 누적 적자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협력업체 입장에선 그야말로 불평등한 계약인 셈이다.

특히 현대건설은 계약서 상의 기성지급일자 보다 30일 앞당겨 기성을 지불한다는 이유로 조달금리 6,25%를 요구하고 더불어 일반관리비 3%를 추가로 공제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 대표는 “협력업체가 원활히 공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처럼 철저하게 은행금리까지 계산하는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현재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많은 한국 건설회사들이 공사를 수행하고 있으나 현대건설과 같은 이러한 결재조건으로 현장을 운용하는 회사는 단 한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오 대표에 따르면 현민인도네시아는 2012년 5월 중순부터 직원을 파견하여 조기착공했으나, 2012년 10월 31일 첫 번째 기성비를 현대건설로부터 받았다. 착공 후 6개월만이다.

결국 현대건설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계약에 시달리다 벼랑 끝 위기에 내몰린 오 대표는 뒤늦게 현대건설 측에 손해배상과 더불어 협력업체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엔 한국을 찾아 공정위와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현대건설의 불공정 행위를 비롯, 소위 ‘갑의 횡포’에 대해 정식으로 민원을 접수했는가 하면, 인도네시아 한인 상공회의소에선 현대건설에 분쟁 해결을 위한 호소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과 당시 사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책임자에게 내용증명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 현대건설 “계약서에 명시” 원론적 답변만…

▲ 사진=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최근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이 국회에 불려 들어갔다는 소문도 이 같은 정황과 맥을 같이 한다. 오 대표의 억울한 사연을 전해들은 각계 관계자들이 정치권에 민원과 탄원을 넣었고, 재외국인 보호 차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거물급 정치인 A씨가 정 사장을 직접 불러들여 경위를 물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사장이 공정위 등에 소명하기 위해 만든 ‘현민 민원 및 사실관계’라는 제목의 문건을 들고 들어가 직접 경위를 설명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사실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은 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 사장이 실제 해당 정치인의 부름을 받고 국회에 출두를 했느냐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정치권을 비롯해 각계에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공정위 관계자는 “직접 해당 사건을 접수한 것은 아니지만, 내용을 검토해본 결과 현대건설의 횡포로 판단되는 부분이 있다. 다만, 해외에서 벌어진 일이라 국내 법의 적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크다”고 전했다.

한 경제시민단체 관계자 역시 “상당수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저가수주를 하고 현지 하청업체를 쥐어짜 제 배를 불리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해외에서 한국기업에 대한 인식을 실추시키고, 현지에서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교민기업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측은 “현민인도네시아와의 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답변이 없는 상태다. 

다만 본지와의 앞선 인터뷰에서 “현민인도네시아 측에서 제기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민인도네시아 측이 입찰단가를 워낙 싸게 써낸데다,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자금난에 쪼들리자 국내 공정위나 권익위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도 “서로 합의하에 계약한 사항” “계약서 상에 명시돼 있다” 등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특히 현대건설은 현민인도네시아 측과의 분쟁에 대해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해당 업체 측과 협의중”이라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오 대표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현재까지 어떠한 회신도, 접촉도 없는 상태다.

▲ 사진=현대건설이 현민인도네시아와의 분쟁과 관련, 공정위 등에 소명하기 위해 만든 <현민 민원 및 사실관계> 문건.
오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 말미에 “인도네시아 현지에서의 일을 이렇게 폭로하고, 진실을 알리려고 하는 이유는 현대건설이 강압적이고 불공정한 계약과 횡포로 인하여 중단된 공사로 말미암아 입은 손실을 보상받고, 나아가 이제는 외국까지 진출하여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익을 해치는 일부 대기업들의 잘못된 관행들이 더 이상 해외에서 재발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해외수주 누계 1,000억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국내 대형 건설사 대부분이 어닝쇼크 수준의 적자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현대건설만큼은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르면 내년에 국내 건설사로는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클럽’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이 같은 영광이 힘없는 협력업체 대한 추악하고 치졸한 횡포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박수’가 아니라 ‘손가락질’과 ‘비난’이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건설이 아주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명성을 참혹하게 무너뜨리는, 매우 큰 충격파가 될 것이 자명하다. 이는 거대 자본권력 앞에서 무릎 꿇은 한 협력업체 대표의 눈물섞인 폭로를 현대건설이 허투루 듣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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