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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가 만난 사람들
[인터뷰] 반올림의 이종란 "삼성 진정성이 해결 열쇠"
2014. 06. 13 by 권정두 기자 swgwon14@hanmail.net

▲ 지난달 28일, 두 번째 본교섭을 가진 반올림과 삼성.
▲ 지난달 14일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와 관련해 공식입장을 밝힌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저희 사업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고, 그 분들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 분들과 가족의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 저희가 소홀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진작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희는 이 문제를 성심 성의껏 해결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5월 14일 삼성전자 권오현 회장이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에 대해 밝힌 공식입장이다.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를 촉발시킨 고(故) 황유미 씨가 사망한 지 7년 만에 삼성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지난 7년간 삼성이 보여 온 태도와 비교하면 인상 깊은 변화다. 하지만 정말로 삼성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 줄지는 아직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사위크>는 그동안 반올림이 겪었던 어려움과 향후 협상의 쟁점 등을 듣기 위해 반올리 상임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를 만났다.

이종란 노무사는 “문제가 해결된 줄 아는 분들도 많은데, 이제 시작이 됐을 뿐이다.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더 걸릴지, 정말로 해결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며 “관건은 삼성의 진정성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 2007년, 반올림의 시작

-전보다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반올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먼저 반올림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삼성을 상대로 진상규명과 산업재해 인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셨다. 이에 젊은 노동자의 석연치 않은 죽음과 깨끗하다고 알려진 반도체사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진상을 밝혀야겠다고 판단해 지난 2007년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이후 2008년 2월부터는 다른 직업병 피해들도 함께 아우르고, 삼성 뿐 아니라 다른 반도체, 전자산업체 노동자들도 포괄할 수 있도록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이란 이름으로 활동해왔다.”

-반올림이 어떻게 구성돼있는 궁금하다. 다양한 분야의 단체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노동안전보건 단체와 다산인권센터 등 인권단체, 노동조합 등이 함께하고 있다. 또한 황상기 씨와 이후 제보를 통해 알게 된 피해당사자들도 구별 없이 참여하고 있다.”

▲ 반올림은 지난 2007년 11월 발족했다. <사진제공=반올림>
-반올림, 그리고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의 시작은 고 황유미 씨의 죽음에서 시작됐다. 고 황유미 씨가 2007년 3월에 사망했으니 어느덧 7년이 훌쩍 지난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 이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지.

“크게 두 가지 부분이 있다. 우선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한 산업재해 인정이다. 여기서 산재 인정은 단순히 삼성의 인정이 아닌 정부차원의 인정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삼성이 이 문제에 대해 은폐해온 것들을 밝혀내는 것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 제보 현황은 어떻게 되나.

“삼성전자 계열사의 경우 193건의 피해자 제보가 있었고, 이 중 사망자는 73명에 달한다. 반도체 부문이 114건·사망자 40명으로 가장 많다. 그밖에 하이닉스, 매그나칩, AKT, 그리고 중소하청 반도체회사를 포함하면 총 243건의 제보가 접수됐고 92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난 3월 기준이며, 이후에도 계속 추가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

▲ 반올림 상임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 <사진제공=반올림>
◇ 왜 ‘산재’인가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산재인지, 왜 산재 인정을 요구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삼성 반도체 공장은 30년 전부터 운영돼왔고, 직업병을 얻은 이들도 전체적으로 보면 일부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반도체공장에서는 수백 가지가 넘는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이 중엔 발암성 화학물질도 많고, 신경독성과 생식독성, 그리고 유전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들이 있다. 이는 삼성이 엔지니어에게 배급한 ‘환경수첩’에서도 확인된 내용이다.

이러한 물질들을 사용하는 곳에서 일한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의 노동자들이 고작 20·30대 젊은 나이에 매우 드문 암에 걸렸다. 또한 유해물질이 더 많이 사용되거나 노후화된 시설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병에 걸린 특징이 있다.

지난 2008년 정부차원에서 실시한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 건강 집단역학조사에서도 높은 발병률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백혈병은 일반인보다 1.3배 높고, 악성림프종의 경우 2~5배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혈병과 악성림프종은 모두 조혈모세포 이상으로 발생하는 병이다.

그런데 ‘건강 노동자 효과’를 고려하면 이 수치는 더욱 심각해진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일반인보다 건강하다. 노동자들이 젊고, 입사 전 건강검진을 마치는 반면, 일반인 중엔 취약계층도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일반인 1명이 암에 걸릴 경우 노동자는 0.5~0.6명 정도여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1.3배, 2~5배가 아닌 그보다 훨씬 높은 수치인 셈이다.

또한 2012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반도체 제고공정에서 벤젠, 포름알데히드, 비소 등 1급 발암물질과 전리방사선 등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고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의 산재를 인정한 판결문에서는 근무여건과 교육, 안전진단 등에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산재 인정을 요구하는 근거다.”

▲ 삼성 본관 앞에 선 황상기 씨의 뒷모습. <사진제공=반올림>
-그렇다면 산재 인정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우선 구체적인 발병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한 번에 결론을 내리기도 힘들다.

문제는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사용했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상규명의 출발이지만, 법적으로 강제되어있지 않다. 영업기밀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또 노동자들에게 어떤 화학물질이 사용되는지 주지시킬 의무가 있지만, 실제로 제대로 알고 일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처럼 어떤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진상규명을 통한 산재 인정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그랬지만, 결국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만약 사람이 우선이었다면, 단 한 명의 죽음이라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고, 재발 방지를 위해 조치를 취했을 텐데.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 건강 보다는 효율과 경쟁이 중심이다. 특히 삼성 같은 대기업의 경우 힘을 앞세워 그것을 누르려 하기도 한다.

삼성 반도체공장의 예를 한 가지 들면, 안전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제한 채 생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하면 생산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삼성은 내부 경쟁을 부추기는 방법 등을 통해 암묵적으로 이를 조장했다. 안전이나 사람이 아닌 생산성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있었던 것이다.”

▲ 황상기 씨. <사진제공=반올림>
◇ 7년의 긴 싸움, 변화의 시작

2007년 발족한 반올림은 이후 길고 힘든 싸움을 이어왔다. 물론 삼성이라는 거대기업과 ‘산재’를 두고 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삼성은 돈으로 회유를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진상규명’을 가로막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을 넘어, 법원이 산재를 인정하자 항소를 하기도 했다.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의 은밀한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뿐만 아니다. 반올림 활동가와 유가족들은 여러 차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시사위크>와 인터뷰했던 고 황민웅(2005년 사망) 씨의 아내 정애정 씨는 불과 지난 5월에도 삼성 본관 앞에서 수차례 모욕적인 대우를 당했다.

- 7년. 무척이나 긴 세월이다. 그리고 정말 어려운 싸움이었다. 유가족들과 활동가들이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또 근로복지공단이 삼성을 비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무척 안타까웠다. 그런데 많은 것이 변하기도 했다. 특히 삼성이 최근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큰 변화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은 어느 시점이라고 생각하는지.

“2011년 6월 법원이 고 황유미 씨와 고 이숙영 씨에 대해 산재를 인정한 것이 큰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첫 산재 인정이었다. 이후 시간이 갈수록 피해자의 제보와 산재를 인정받는 사례가 늘어났고, 삼성도 무작정 산재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사회적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것 역시 중요한 변화였다. 책이나 연극, 그리고 영화 등을 통해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가 알려졌다. 더 이상 삼성이 이 문제를 비켜가거나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사진제공=반올림>
◇ 삼성의 진정성이 해결의 열쇠

-결국 반올림의 꿋꿋한 활동이 산재 인정과 사회적 공감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삼성의 변화를 이끈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삼성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의 짐을 덜어주려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일정 부분 일리 있는 얘기기도 하다. 물론 삼성이 어떤 이유로 입장이 달라졌는지 정확한 내막은 우리가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이전에 산재 인정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삼성이 이 문제를 그저 ‘이재용 부회장을 위해 털고 간다’는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삼성이 얼마나 깊게 고민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바라보는 이 문제는 너무나 심각하다. 그대로두면 더 큰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삼성이 정말 해결해야겠다고 나섰다면, 진정성을 가지고 제대로 접근하길 바란다.”

-이제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될 텐데, 현재 알려진 핵심 쟁점 사항은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다. 구체적인 쟁점과 요구사항은 어떤 것인지.

▲ <사진제공=반올림>
“지난해 1차 본교섭을 앞두고 ‘삼성 직업병 대책 마련을 위한 요구안’을 발표했다. 여기에 우리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모두 담겨 있다.

우선 사과에 대해서는 지난달 권오현 부회장이 사과를 하긴 했지만, 우리가 요구한 방식의 사과는 아니었다.

삼성은 화학물질 등에 대한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점, 산재 신청 자체를 막고 관련 정보를 은폐한 점, 그리고 피해가족과 반올림 활동가 등에 대해 부적절하게 대응한 점 등을 사과해야 한다.

향후 누가, 누구에게,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사과를 할지는 교섭의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또한 ‘노동자 건강권 실현 대책’을 통해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엔 화학물질 정보공개와 정보보존, 사업장 종합진단 실시, 화학물질안전보건위원회 설치, 외부 감사, 노조활동 보장 등이 포함돼있다. 특히 사업장 종합진단과 위원회, 감사의 경우 반올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도 담고 있다.

끝으로 보상 부분에서는 피해자 또는 피해가족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더불어 ‘퇴직자 암 지원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요구안을 지난해 12월에 삼성 측에 보냈고, 이에 대한 답변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직 답변은 없다. 지난달 28일 2차 교섭 때도 답변을 요청했으니, 3차 교섭에서는 진전이 있길 바란다.”

▲ <사진제공=반올림>
-많은 사람들이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가족’ 제작비 모금에 참여했다. 영화 자체도 감동적이었지만, 영화가 제작된 과정 특히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든 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7년을 싸워왔고, 앞으로도 큰일을 앞두고 있는 반올림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이 아닐까 싶다. ‘다 해결됐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정말 이제 시작이다. 관심과 응원 많이 보내주길 바라고, 후원과 재능기부 모두 환영한다. 반올림 카페를 통해 다양한 활동 소식을 접할 수 있고, 후원 방법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삼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까지 삼성이 보여 온 방식은 이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우리가 내놓은 요구안은 정말 최소한으로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망한 피해자들, 지금도 투병 중인 피해자들의 원성이 모아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마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정말 삼성이라는 기업의 앞날이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삼성에게도 기회일 수 있다. 그동안 잘못됐던 것들에 대해 이제라도 새롭게 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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