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와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출마로 ‘왕의 남자’ 대결로 불리는 전남 순천·곡성 지역은 선거 초반 서 후보의 무난한 승리를 전망했던 것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이 후보의 저력이 발휘되면서 박빙으로 돌아섰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10%P에서 7%P까지 좁혀졌다./사진=소미연 기자

[시사위크|순천·곡성=소미연 기자] 오락가락한 날씨가 딱 순천 민심과 닮았다. 7·30 재보선에서 격전지로 꼽히는 전남 순천·곡성지역은 호우경보와 함께 공식선거운동을 시작한 뒤 장대비와 무더위를 오가며 여야 후보들의 민심 행보를 방해했다. 첫 주말 유세가 열린 19일에도 그랬다. 곡성 삼기면민의 날 축제를 앞두고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더니 한바탕 장대비가 쏟아졌다.

바로 이 때,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우산 하나 들고 나타났다. 이미 그의 바지는 엉덩이까지 흠뻑 젖은 상태. 하지만 이 후보는 반가운 고향 사람들과 즐겁게 인사를 나눴다. 딱히 “도와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 후보가 “잘 하겠다”고 약속하면 “열심히 해라”는 답변이 돌아왔을 뿐이다.

이 후보가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등장했다. 서 후보가 건넨 손을 반갑게 잡은 곡성 군민들은 뒤돌아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 후보는 곡성의 인물이요, 서 후보는 공천 받은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다. 대체 누굴 뽑아야 한단 말인가. 입장이 곤란한 곡성 군민들은 기자의 물음에 말을 아꼈다.

곡성군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A씨는 “당연히 곡성사람을 찍어줘야 하는데 맘처럼 쉽진 않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국이 IMF 때보다 못하다”는 그는 “당으로 봐선 (새누리당 후보를 찍으면) 안 되는데, 사람만 놓고 보면 (이 후보가) 괜찮지 않나. 아무래도 곡성에선 이 후보의 당선을 바라겠지만, 패는 순천이 들고 있다”고 말했다.

▲ 이정현 후보는 자전거를 이용한 나홀로 선거운동에 나섰다. 골목 민심을 파고든다는 전략이다./사진=소미연 기자
실제 곡성의 선거인수는 2만7000여명인 반면 순천의 선거인수는 21만5000여명에 달한다. 순천이 곡성의 선거인수 8배가량 많은 셈이다. 결국 순천의 표심이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는 분석에 순천 시민들과 곡성 군민들의 이견은 없었다. 따라서 순천이 야당 텃밭으로 알려진 만큼 이번 선거는 서 후보가 유리한 구도에 있다고 보는 해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순천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 그래서 ‘경선이 본선보다 힘든 곳’이라 불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바닥 민심은 옛날 같지 않았다. 순천의 구도심 민심을 대표하는 중앙시장에선 서 후보의 승리를 점쳤지만, 이와 반대로 신도심 민심을 대표하는 동부상설시장에선 이 후보의 역전승을 전망했다. 구도심은 호남의 정서가 짙은 반면 신도심은 변화를 예고했다. 이와 관련, 동부상설시장에서 만난 60대 남성 B씨는 “2년 전만 해도 무조건 2번이었다. 여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면서 “이 후보에 대한 지역 내 관심이 높다. 이 같은 추세라면 이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집권여당의 ‘힘 있는 후보’라는 점이다. 그간 순천은 순천만정원 후속조치와 순천대 의대 추진으로 골머리를 앓아왔던 터. 대통령의 측근으로 지역 현안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앞서 이 후보는 ‘예산폭탄’을 약속했다. 50대 남성 C씨는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가. 이 후보가 도와달라고 사정하면 대놓고는 못 도와줘도 신경을 써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지역 정쟁에 휘말릴 일이 없다는 점이다. 기자가 만나 순천 시민들은 하나같이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찍은 것을 후회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컷 재선 만들어놨더니 ‘최루탄 사건’으로 순천 시민들을 창피하게 했다”는 게 그 이유다. 문제는 김 전 의원에게 표를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을 서 후보와 그의 지역 정가 라이벌로 불리는 노관규 전 순천시장이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택시기사 D씨(61)는 “서 후보와 노 전 시장이 사사건건 부딪혔다는 것은 순천 시민이 다 아는 얘기”라면서 “두 사람의 갈등으로 정작 현안은 뒤로 밀리고, 순천만정원도 뒷말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서 후보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하자 노 전 시장이 순천만정원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보궐선거에 출마했고, 이에 실망한 순천 시민들이 김 전 의원에게 표를 몰아줬다”고 설명했다.

▲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의 상승세로 텃밭 민심이 흔들리자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긴장감을 드러내며 한 표 호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첫 주말 유세 현장엔 박지원 의원이 찾아 전남 동부권과 서부권의 공동 발전에 힘을 실었다./사진=소미연 기자

사실상 김 전 의원은 어부지리로 당선된 셈이다. 물론 노 전 시장으로선 억울한 일이다. 측근에 따르면 노 전 시장은 서 후보와의 갈등으로 순천만정원 문제가 답보에 빠지자 본인이 직접 해결사로 나서기 위해 보궐선거에 출마했는데, 진심과 달리 자리 쟁탈전으로 보여 졌다.

더욱이 노 전 시장의 뒤를 이어 조충훈 시장이 순천만정원을 성공시키면서 재선에 성공하자 일각에선 조 시장의 노고에 칭찬하면서도 “노 전 시장이 다 해놓은 걸 (조 시장에게 공로를) 뺏겼다”는 뒷말도 나왔다. 마약복용 의혹과 뇌물수수 전력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 시장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순천만정원 성공 때문이었다는 게 순천 시민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야권의 복잡한 정쟁으로 피로감을 호소한 순천 시민들은 “이 사람을 뽑든, 저 사람을 뽑든 마찬가지라면 이번엔 여당 후보를 뽑아볼 만도 하지 않겠는냐”고 반문했다. 특히 “전과자는 뽑고 싶지 않다”는 의견도 많았다. 동부상설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50대 E씨는 “현직 시장도 전과자고, 전직 국회의원도 전과자다. 현직 국회의원마저 전과자를 뽑아야겠냐”면서 “탈옥수 신창원이 순천에서 잡혔고, 세월호 참사로 죗값을 치러야 할 유병언 회장도 순천에 별장이 있다고 하지 않나. 순천의 자존심이 말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셋째, 남은 국회의원 임기가 짧다는 점도 이 후보에게 점수를 더했다. E씨는 “이 후보에게 기회를 한번 줘도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한번 시켜보고 (이 후보가) 못하면 다음 총선에서 표를 안 주면 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 후보에 대한 지지가 투표장에서도 이어질 수 있느냐다. “투표장에 가면 2번이 보인다”는 게 순천 시민들의 딜레마다.

▲ 서갑원 후보는 평균 한 시간 꼴로 일정을 계획해 유세를 이어갔다. 4년만의 복귀전인 만큼 텃밭이라는 안일한 생각 대신 낮은 자세를 보였다./사진=소미연 기자
이 점이 바로 서 의원 측이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다. 호남 정서상 아직은 야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광주시장 선거가 단적인 사례다. 당시 여론조사에선 무소속의 강운태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결국 당의 공천을 받은 윤장현 후보가 당선된 만큼 ‘보이지 않는 민심’은 여전히 야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게 서 후보 캠프 측의 설명이다.

실제 서 후보를 지지하는 순천 시민들의 반응도 그랬다. “이 후보가 아무리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한들 순천은 서갑원일 수밖에 없다”는 완고한 의지를 보였다. ‘민주당 골수팬’으로 자처한 60대 F씨는 “여야를 떠나 현 정권의 행태로는 표를 줄래야 줄 수 없는 상황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민주당이 예쁜 건 아니지만 미워도 다시 한 번 서갑원을 지지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다만 서 후보를 향한 애정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예전과 달리 여당 후보의 이름이 공공연히 거론될 만큼 그 세가 만만치 않다”고 지적하면서 “서 후보가 잘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를 의식한 듯 서 후보는 유세 현장에서 줄곧 “도와주세요, 잘 할께요”를 외쳤다. 곡성에서 빗속 유세를 마치고 순천 조례동 홈플러스에서 다시 만난 서 후보는 순천 시민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새 각오를 다짐했다. 서 후보를 알아본 시민들은 “오메 이게 누구여”를 연발하며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서 후보도 시민들과 함께 웃었지만 그의 긴장감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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