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용산화상경마장 개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어 어김없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달 28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용산화상경마장이 기습적으로 개장했다. 앞서 주민 반대로 인해 두 차례 개장을 연기했던 마사회가 주민과의 협의 없이 화상경마장 임시운영을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은 화상경마장 출입을 막아서는 등 더욱 극렬히 반대에 나섰다. 주택가와 학교 코앞에 화상경마장이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질세라 마사회 역시 직원들을 동원해 ‘맞불 집회’를 벌이는 한편, 버스로 손님들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갈등은 갈수록 첨예해졌고, 반대 측 주민과 교사들이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지난 15일 화해권고결정을 통보했다. 반대 측 주민 9명을 상대로 마사회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에 따른 것이었다.

▲ 용산화상경마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주택과 학교 코앞에 사행시설은 절대 안 된다"며 절규하고 있다.
법원은 화해권고결정에서 “마사회는 오는 10월말까지 용산화상경마장을 시범운영하고, 해당 주민 9명은 영업을 방해하지 말라”며 “시범운영 기간 중 반대 측에서 제기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주민들과 다시 논의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범운영 기간 중 해당 주민 9명이 영업방해 행위를 할 경우 마사회에 1회당 50만원을 마사회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마사회는 가처분 신청에서 영업방해 행위에 대해 1회당 100만원을 요청한 바 있다.

마사회는 화해권고결정 수용 방침을 전하며 시범운영 기간 중 ▲학기 중 금요일 영업 중단 ▲정부·국회·찬-반 주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평가위원회 운영 등의 계획을 밝혔다.

이 같은 보도가 전해지자 일부 시민들은 용산화상경마장 사태가 해결국면에 돌입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 주민들의 입장과 반응은 전혀 달랐다.


◇ 마주보고 있는 성심여중고와 용산화상경마장

<시사위크>는 지난 19일 용산화상경마장을 찾았다. 용산역에서 용산화상경마장으로 가는 길 주변엔 용산전자랜드와 원효상가, 나진상가 등이 있었지만, 주말과 무더위 탓인지 한산한 편이었다.

용산화상경마장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원효로 2동 역시 한산했다. 골목골목 다세대주택과 빌라들이 들어서있는 모습은 여느 도시의 주택가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건너편에 우뚝 솟아있는 용산화상경마장 건물은 동네 어디서나 눈에 들어왔다.

▲ 원효로 2동에서 보이는 용산화상경마장.
동네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정자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부침개를 부쳐 먹고 있었다. 화상경마장 이야기를 꺼내자 한 할머니들은 격분했다.

“여기로 올라가면 바로 학교야. 그것도 여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이 주변은 전부 주택가고 어린아이들도 많아. 그런데 도박꾼들이 드나드는 시설이 들어선다고 하니 당연히 불안하고 불쾌할 수밖에 없어. 뭐 노래 부르러 오라고 그러는데 거길 노래 부르러 왜 가. 정신 나갔지.” (마사회는 경마가 없는 월~목요일에는 노래교실 등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성심여자중고등학교 정문 쪽으로 향했다. 수업이 없는 날이어서 학교는 고요했다.

학교 관계자의 양해를 구해 학교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1957년 개교한 성심여중고는 유서가 깊은 학교로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이기도하다. 언덕에 자리 잡은 학교는 커다란 나무와 고딕풍의 성당 등으로 교정이 잘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교실 건물이 있는 언덕 위쪽으로 올라가자 용산화상경마장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 성심여중고 교정에서 바라본 용산화상경마장.
학업과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 학생들에겐 창가에서 볕을 조이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큰 위안이 되곤 한다. 하지만 성심여중고 학생들의 창밖 풍경에선 용산화상경마장이 가장 눈에 띄었다. 현재 운영 중인 용산화상경마장 13~15층에서도 성심여중고가 훤히 보인다고 한다. 학교와 화상경마장이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정문을 나와 다시 용산화상경마장 쪽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약 100여m를 걸어 나오자 바로 맞은편에 용산화상경마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사이엔 왕복 6차선 도로 2개 즉, 총 12차선의 도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용산화상경마장 입점에 문제가 없다는 측에서는 이 도로로 인해 학교 및 주택가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가깝다’, ‘멀다’에 대한 판단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성심여중고 정문에서 용산화상경마장까지 최단경로를 이용할 경우 500m밖에 걸리지 않는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300m가량이다. 이것이 과연 학교와 화상경마장 사이에 교육적으로, 안전상으로 문제가 없는 거리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또한 용산화상경마장 쪽에서 300m만 걸어가면 영화관(롯데시네마 용산점)이 있다. 용산역에 또 다른 영화관이 있긴 하지만 이 일대 원효로 1·2동, 용문동, 도화동 등에선 가장 가까운 영화관이다. 주말이면 경마 도박꾼과 영화관을 찾는 학생들이 한 거리를 공유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적절한지 여부도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 용산화상경마장 반대 현수막이 내걸린 성심여중고의 모습.
◇ 반대 주민들 “마사회는 처음부터 주민들을 무시했다”

용산화상경마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날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노란양산으로 뜨거운 뙤약볕을 가리고 있었지만, 역부족인 듯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주민들은 밝은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고, 음료와 간식을 함께 먹는 등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었다. 어느덧 천막농성 6개월, 용산화상경마장 개장 4주에 이르렀지만 반대 주민들의 얼굴에선 지친기색보단 결연한 의지를 볼 수 있었다.

주민대책위 이원영 공동대표는 우선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의신청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사회의 ‘눈 가리고 아웅 식’ 태도에 분개했다.

그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겠다는데, 그럴 거면 애초에 이전을 검토할 때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며 “마사회는 주민 몰래 화상경마장 입점을 추진했고, 심지어 주민 의견을 묵살한 채 기습개장까지 했다. 마사회의 말은 하나도 믿을 수가 없고, 진정성이 전혀 없다. 주민들을 농락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임시개장한지 한 달도 안됐지만 전엔 볼 수 없던 노숙자까지 발견됐다. 건달들이 이곳을 주목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용산화상경마장 운영을 강행할 경우 평화로웠던 동네가 불안과 갈등, 사건사고로 가득찰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성에 참석한 한 주부는 “마사회가 공기업이라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공기업이라는 곳이 주민과 국민을 바보로 알고 횡포를 부리고 있다. 마사회가 돈을 버는 것과 주민들이 행복하고, 안전한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며 울먹였다.

▲ 경마가 모두 끝난 뒤 영등포화상경마장에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 박원순 서울시장 “주택, 학교 밀집지역에 사행시설은 있을 수 없다”

다시 장소를 영등포화상경마장으로 옮겼다. 용산화상경마장과 달리 영등포화상경마장은 영등포 유흥가 한가운데 있었다.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인이었다. 학생이나 아이들과 함께 오가는 가족들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이날 마지막 경주는 오후 7시 50분이었다. 7시 55분쯤이 되자 화상경마장에선 엄청난 인파가 몰려나왔다. 두 개의 계단을 통해 20여 분간 끊임없이 사람이 쏟아져 나왔고, 이 일대는 금세 혼잡해졌다. 영등포화상경마장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이곳을 찾은 사람은 7,200명 이상이었다.

쏟아져 나온 사람 중엔 행색이나 거동이 평범하지 않은 이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다만, 영등포화상경마장이 유흥가 안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유별나게 이질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모습이 학교와 주택가 근처에서 벌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0일 용산화상경마장을 직접 방문해 “주택과 학교 밀집지역에 사행시설은 있을 수 없다. 개장 과정에서도 주민과의 협의가 생략돼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마사회의 영업 중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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