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상임 대표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지난 1년간 각종 금융사고가 쉼 없이 터지면서 금융권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수만 명의 투자자들의 울린 ‘동양 사태’를 시작으로 은행권의 횡령, 불법 대출 사건, 카드사의 ‘고객 정보 유출 사고’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금융사고가 봇물을 이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형편이지만, 아직 우리나라 ‘금융소비자보호’의 제도적 시스템은 척박한 수준이다. 이에 <시사위크>에선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상임 대표를 만나 대형 금융 사고를 돌아보고 현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금융소비자연맹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금융소비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된 최초의 금융전문 비영리 민간 소비자단체다. ‘보험소비자연맹’으로 출발해 현재는 금융업 전체 이슈를 다루는 단체로 확대됐다. 금융시장 감시와 금융 피해자 구제 활동 지원, 불공정행위 고발 등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

- 최근 1년간은 각종 금융사고가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바쁜 활동을 하셨을 거 같은데. 
“동양증권 CP 사기, 카드사 정보유출, 생명보험사 금리담합 등 굵직굵직한 이슈가 연속해서 터졌다. ‘동양사태’와 ‘정보유출’의 경우엔 워낙 사안이 크고 피해규모도 방대해 싸우기 버거울 정도였다.”

- 여러 가지 금융사고 있었지만, 올해의 ‘카드사 개인정보유출’ 사고가 기억에 남는다. 카드사와 은행, 보험사 가릴 것 없이 터져 전 국민이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처벌과 보상은 정작 ‘유야무야’ 됐다는 비판이 많은데.
“카드사 정보유출 피해 건수가 무려 1억500만건에 달했다. 사실상 모든 경제활동 인구의 개인정보가 털렸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금융당국이나 카드사들은 ‘유출만 됐지 피해가 없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실상은 유출된 것만으로도 소비자들은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법과 규정을 지켰으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고를 만든 것에 대해 금융사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

- 금융소비자연맹은 참여연대 등과 함께 피해자를 모아 ‘카드사 정보유출 손해배상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카드사들이 자발적인 보상을 거부한 탓에 피해자가 보상을 받으려면 소송을 하는 수밖에 없다.  소송을 두 개로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100명 정도가 소송을 제기해 법리적인 다툼을 하고 있고, 나머지 1만명 정도는 뒤 따라서 소송을 할 계획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비쳐질 수 있는데,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의 판례 동향을 봐도 그렇고 과실이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기대를 해보고 있다.”

-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해선 어떤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보는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나 ‘집단소송제’가 빨리 도입돼야 한다. 현행 제도대로라면 소송을 해도 피해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어 보상 받기가 매우 어렵고 소비자가 승소한다 해도 손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보상하게 하는 제도적 한계로 금융사의 책임을 묻는 것에 실효성이 없다. 집단 소송제도가 도입이 돼 다른 사람들이 소송을 해서 배상을 받게 되면, 소송을 참여하지 않아도 똑같이 배상 받을 수 있다. 또한 손해배상금도 납득할만한 수순이여야지 권리를 찾을 의욕이 생길 것이다. 이 같은 제도가 도입되면 금융사들이 소비자들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야 담합을 하건, 불완전판매를 하건, 자기들에게 오는 피해가 기껏해야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과태료나 과징금 밖에 안 되니까 불공정행위가 근절이 안 되는 것이다.”

- 2년 넘게 표류해온 금융소비자법 국회 처리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데. 
“법안은 가닥이 잡혔고, 금융위원회가 인사권과 예산권을 얼마정도 갖느냐의 문제가 남았다. 금융위원회 입장에서 산하에 금감원하고 금융소비자보호원  등 두 개를 놨으면 하는 마음인데, ‘금소원’ 마저 산하조직을 놓으면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겠냐. 저흰 법안이 안 만들어지는 게 금융위의 횡포라고 생각한다.”

- 문제를 일으킨 금융사들의 수장에 대한 제재가 ‘솜방망이’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KB의 경우도 이런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현 금융 사태의 근본 문제는 ‘관피아’ 혹은 ‘모피아’에 있다. 자기네 선배 혹은 한 식구였던 이들이 나가서 금융사 수장을 맡고 있고, 그것을 처벌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후배들이다. 징계와 처벌이 제대로 될 수가 있겠나. 앞에서는 ‘모피아 척결’ 외치는데 모두 말뿐이다. 애초에 이런 잘못된 ‘모피아’ 관행을 척결하고 일벌백계 했다면 이런 사고들이 안 터졌을 것이다. 결국 현 사태는 공무원들의 업무 태만, ‘모피아’들의 제 밥 그릇 챙기기에 때문에 생긴 일이다.”

▲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
- 그렇다면 기존의 적폐를 없애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제가 이 활동을 10년 넘게 하다보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법’과 ‘제도’ 같다. 국회에서 소비자들을 위한 법들을 치밀하고 세밀하게 만든다면, 소비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다. 죄질이 나쁜 잘못을 저지른 금융사들에게는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하루 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잘못하면 회사의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줘야 하고, 경영진들에 대해서도 해임 등의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 금융소비자들의 의식 변화도 필요한텐데.
“소비자 권리에 대한 의식변화는 많이 이뤄졌다. 하지만 그것이 권리 찾기 운동 등으로 이어지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이유는 권리 찾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보상이 몇 푼 안되기 때문이다. 동양사태 피해자들은 워낙 피해가 커서 온 힘을 다해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예를 들어 정보 유출 피해자들은 많이 받아봐야 10만 원 정도다.”

- 금융회사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형편이다.
“가장 급한 것은 신뢰 회복이다. 소비자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말로는 ‘고객제일’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이 느끼는 것은 그게 아니다. 깨져버린 신뢰는 회복하기 쉽지 않다. 신뢰가 바닥이어서 우선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진정성이 중요하다. 소비자들을 위해 차근차근 정도 경영을 해야지만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다.”

- 금융소비자단체들의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데. 
“금융업 분야는 사실 까다롭고 복잡하다. 그래서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대변하고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는 시민단체들이 필요하다."

- 운영상의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사회에서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각종 사안은 넘치지만 인력 등 여력이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어려운 분야다 보니까 전문인력을 충원하고 싶어도 운영비 문제 등으로 항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국가와 국민들이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지지와 지원을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그런 토양이 척박한 환경이다.”

- 마지막으로 금융소비자연맹이 신경쓰고 있는 현안은 뭔가.
“많은 현안이 있지만, 최근엔 자동차보험료 할증 건수제와 ING자살보험금 이슈에 대응하고 있다. 자동차 보험료 할증 기준을 기존 점수제에서 건수제로 바뀌는 이 제도는 언뜻 보면 좋아 보인다. 사고 많이 낸 사람이 더 많이 내고, 덜 낸 사람은 깎아준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보험사들한테만 좋은 제도다. 반면 고객들은 엄청난 보험료 폭탄을 맞게 된다. 1년에 사고 세 번씩만 내면 보험료가 1,000%씩 올라갈 것이다.  또한 자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ING생명을 비롯한 생명보험사들에게 미지급 보험금을 신속히 지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만약 지급거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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