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KNL물류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KNL물류의 부당해고와 악질적인 하청구조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빙그레의 자회사 KNL물류가 노동부의 ‘위장도급’ 판단에 대해 “노동부가 법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불법적 판단”이라고 밝힌 것으로 나타나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KNL물류 광주공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7명은 지난 3월 재하청 추진에 반발했다가 도급 계약만료 형태로 해고됐다. 이들은 이미 하청의 재하청 구조 속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또 다시 하청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했다가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이에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는 지난 11월부터 KNL물류의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 및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제출했다.

◇ 노동지청 “KNL물류 하청업체 소속 직원, 사실상 KNL물류 소속”

노동지청의 판단은 지난 6월 11일이 돼서야 나왔다. 결과는 “KNL물류와 하청 노동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KNL물류의 하청업체는 독자성이 전혀 없는 사실상 원청에 속한 하나의 사업부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하청업체가 사업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불법파견 여부는 논할 여지조차 없다고 밝혔다.

노동지청은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하청업체가 외관을 갖추었지만, 사업수행에 필요한 독립적 시설을 전혀 갖추지 못함 ▲하청업체 대표가 원청 반장 출신으로 오로지 원청의 업무를 대행하는데 그침 ▲독자적 작업계획서 없이 원청과 빙그레에 의해 작업량이 결정됨 ▲인사 및 근태관리에서 원청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음 등을 지목했다.

즉 KNL물류 하청업체는 실체가 없고, 하청업체 소속 직원은 사실상 KNL물류 소속이라는 것이었다.

▲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가 제기한 진정과 관련해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는 노동지청의 판단을 근거로 KNL물류에 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KNL물류가 지난 6월 18일 노조 측에 보낸 답변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KNL물류는 해당 답신에서 “성남지청의 판단은 법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월권에 기한 노사관계 개입, 불성실·불충분 사실관계조사, 소명기회 등 문제의 소지가 큰 과정을 거친 결론”이라고 밝혔다.

이어 “성남지청의 판단은 대외적 법적 구속력이 없는 불법적 판단이므로 이러한 판단에 기초한 교섭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강행할 경우 하청 직원과 KNL물류의 근로관계 인정 여부는 결국 법원의 판단에 따르게 될 것이고, 최종판결 때까지 어떠한 교섭도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노동부의 판단을 완전히 깔아뭉갠 것은 물론 노조를 협박하기까지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동지청이 묵시적 근로관계에 대한 판단을 쉽게 내리지 않는다.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노동지청의 판단은 파견 자체가 위장이었다는 것인데, 이는 불법파견보다 더욱 심각한 일이다. KNL물류가 당장 직접고용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소장은 “간접고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인데, 회사 측이 노동지청의 판단에 저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라고 덧붙였다.

▲ <시사위크>가 단독 입수한 KNL물류의 답신 문건. KNL물류는 지난 6월 노동지청의 판단에 따라 교섭을 요구한 공공운수노조에게 "노동지청의 판단은 법리적 이해가 부족하고, 불법적인 것이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보냈다.
◇ 빙그레, KNL물류의 악질적인 하청·재하청

노동지청이 ‘묵시적 근로관계’를 인정한 KNL물류가 걸어온 행보는 우리 사회의 하청 및 간접고용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KNL물류의 출발은 빙그레다. 빙그레의 오너는 김호연 전 회장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동생인 김호연 전 회장은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독립한 1992년부터 2008년 총선에 출마할 때까지 회사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올 들어 빙그레 등기이사로 복귀하면서 다시 경영에 나설지 주목을 받고 있다.

KNL물류는 빙그레 물건을 실어 나르는 회사로 시작했다. 한때 빙그레의 매출 비중이 90%에 달했고, 지금도 매출의 절반이 빙그레를 통해 나온다. 이러한 KNL물류는 김호연 전 회장의 세 자녀가 지분 모두를 사이좋게 나눠 갖고 있다.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로 볼 수 있다.

KNL물류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처음엔 빙그레로 입사했다. 그러다 1998년 물류부문 자회사가 설립되면서 처음 소속을 옮겼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KNL물류의 ‘소사장 업체’로 다시 한 번 자리를 옮겼다. 빙그레에 입사했던 것을 기준으로 보면 하청에 재하청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역시 강압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재하청 업체가 또 한 번 인력파견업체로 하청을 추진했고, 여기에 반발했다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처럼 이들은 지난 20여 년간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소속은 빙그레에서 KNL물류, KNL물류의 하청업체로 바뀌었고, 갈수록 근무여건은 악화됐다. 지난 2월 경기도 남양주시 빙그레 제2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숨진 노동자 역시 같은 조건이었다. 당시 빙그레와 KNL물류 소속 직원들에게는 대피지시가 내려졌지만 숨진 하청업체 노동자는 작업지시가 내려졌고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아야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재하청을 거부해 해고당한 광주공장을 제외한 다른 지역 노동자들은 하청에 재하청이라는 열악한 구조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공공운수노조 정찬무 조직국장은 “빙그레 김호연 전 회장 일가가 주머니를 채우는 사이 노동자들은 심각한 재하청 구조로 내몰렸다”며 “KNL물류와 빙그레의 책임 있는 모습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시사위크>는 KNL물류 측에 이에 대한 입장을 수차례 문의했지만 회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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