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지금이 제철인데...’ 밤새 일하고 뜬눈으로 새벽을 맞은 한 국회의원 보좌관의 말이다. 말 그대로 물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가공휴일인 한글날 대부분의 보좌진들은 출근했고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에도 의원회관의 불은 꺼질 줄 몰랐다. 의원회관의 ‘별 헤는 밤’ 이다.

▲ 국정감사로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국회. 1년 농사를 결정하는 국감은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에게 모두 이름을 알릴 기회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과 그 보좌진에게는 1년 농사의 수확철이다. 국정감사를 통해 모시는 ‘영감’(보좌진들은 모시는 의원을 대부분 영감이라고 부른다)님은 이름을 유권자들에게 각인할 수 있고, 보좌진들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선거에 공천심사에 국정감사 실적도 반영되다 보니 ‘영감’과 한 몸인 보좌진도 분주할 수밖에 없다. 1년 중 20일 밖에 되지 않는 국감을 위해 보좌관들이 그 동안 모아온 신문기사와 히든카드를 모두 드러내야 하는 이유다.

◇ 보좌진 전체 2100명, 뭔가 보여줘야...

국정감사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 시기는 88년 이후다. 유신헌법 당시에는 국정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국정감사는 이뤄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87년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시작된 국정감사는 88년 화려하게 부활했다. 전두환 정부 시절 정경유착 등의 비리가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수많은 ‘국감스타’가 나오기도 했다.

모시는 ‘영감’님이 스타가 되면 보좌진 입장에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 보좌진들은 기자처럼 ‘특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에 보좌관들은 의원회관 각 층에 있는 보좌관 협의회실에서 벌어지는 ‘전략회의’에 매일 참여하면서 정보탐색에 열을 올린다. 이 때 만큼은 여야가 따로없이 모두가 경쟁자다. 국회의원 한명이 공식적으로 채용할 수 있는 보좌진은 7명, 전체 2100명 중 가장 강력한 ‘한방’을 보여줘야 하는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조금 더 특별하다. 의원들사이 국정감사에 대한 경쟁이 심해지면서 ‘분리국감’을 추진했지만 세월호 문제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이에 시간이 더 촉박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부 의원실에서는 올해 국감이 치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상에 미리 자료를 공개해버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 어쩔 수 없이 신선한 '꺼리'를 찾아 보좌진들은 매일 밤을 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갑작스레 시작한 국감으로 특히 야권 의원실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시간은 촉박한데 새로운 ‘한방’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야권의 한 보좌관은 “미리 자료를 공개해버리는 바람에 기자들을 통해 아이템을 찾는 실정”이라며 “밥 먹는 시간까지 아까울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 늑장대응은 기본 자료폭탄까지... 공무원들과의 기싸움

▲ 펼쳐보기도 두려울 정도로 두꺼운 자료들, 자료폭탄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것은 오롯이 보좌관들의 몫이다.
기획재정위 소속 한 의원실의 입구에는 하얀 문서더미가 가득하다. 국세청에 자료를 요청했더니 폭탄을 던져놓고 갔다는 것. 사실 보좌진과 담당부서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따지자면 보좌진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자료요구를 할 때마다 벌어지는 신경전에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늑장제출은 기본이고 “정확하게 요구하는 자료를 말씀하세요”라며 전문 영역에 대해 제대로 알수 없는 보좌관을 무안하게 만드는 일도 빈번하다. 보좌관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4년 안팍, 공무원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폭넓은 영역으로 자료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자료폭탄 속에서 진주를 찾는 일은 오롯이 자신들의 몫이다.

그나마 자료폭탄이라도 안겨주면 다행이다. 국방위 같은 경우는 자료를 요청할 때마다 툭하면 ‘보안’ 문제를 거론하며 거부하기 일수다. 관련자료 한 개를 받기 위해 “줄 때까지 10분에 한번씩 전화할겁니다”라고 으름장을 놓고 2시간의 실랑이 끝에야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 대기업 관계자들과 피감기관 손님을 맞아야 하는 것도 보좌진의 몫이다. 국감을 앞두고 증인채택에서 제외시켜달라는 대기업 관계자들부터, 질의내용을 사전에 파악하려는 피감기관 관계자 및 기자들과의 대면도 피곤한 일이다. 저녁을 훌쩍 넘긴 8시 이후에나 차분하게 일에 집중할 시간이 나온다. 여권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정말 여러 채널에서 접촉이 들어온다”며 “일일이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도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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