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무지개농성단(이하 농성단)은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명시한 인권헌장을 거부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규탄하며 지난 6일부터 서울시청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 <출처=무지개농성단>
[시사위크=우승준 기자] 지난 11월 30일 서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폐기했다. 서울시가 폐기한 이번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지난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장후보 당시 공약이자, 자치단체와 시민이 공동으로 만드는 인권규범인 점에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인권헌장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인권과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인권규범을 말한다. 앞서 서울시는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위해 지난 8월 인권전문가와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세계 인권의 날(오는 10일)’에 맞춰 선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선포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성소수자단체와 기독교단체가 인권헌장의 제4조 ‘차별금지(성적지향·성별정체성 명시)’ 조항 부분을 놓고 옥신각신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단체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은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을 인권헌장 조항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독교 단체는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을 부정했다. 두 단체는 ‘성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로 인해 서울시는 서울시민인권헌장 제4조 차별금지(성적지향·성별정체성 명시) 조항 부분이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폐기를 결정했다. 

실제 지난달 30일 서울시 혁신기획관 관계자는 “시는 사회적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전원합의방식을 요청했다”고 강조하며 “그러나 서울시민인권헌장은 더 이상 추진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사실상 폐기한다”고 전했다. 사실상 서울시가 사회적 갈등을 이유로 ‘서울시민인권헌장’의 ‘폐기’를 공식화한 셈이다.

용두사미로 전락한 서울시의 서울시민인권헌장과 관련해 다수의 시민단체와 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의 반발은 하늘 높이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이어 이들의 반발은 점거 농성으로도 번지게 됐다. 실제 지난 6일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와 관련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서울시청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규탄하기 위한 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시사위크>는 논란이 일고 있는 ‘서울시민인권헌장’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지난 5일 서울 신촌 인근에서 정혜연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 정혜연 정의당 성소수자위원장.
- ‘서울시민헌장’ 얘기에 앞서 정의당 성소수자인권위원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우선 성소수자란 단어가 생소할 수 있다. 성소수자는 사회적 다수인 이성애자와 비교되는 동성애자 등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과 관련된 소수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정의당 성소수자인권위원회는 당 안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또 정의당 성소수자인권위원회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소식을 사회에 알리며, 타 시민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성소수자를 포함한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법제정에 노력하고 있다.”

- 본론을 진행하겠다. 서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포기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서울시가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민위원회의 표결을 거쳐 확정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폐기한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시민위원회는 서울시가 직접 선발하고 위촉한 시민위원들로 구성됐으며, 압도적인 다수의 찬성으로 인권헌장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 서울시가 선발한 시민위원단은 ‘인권’에 대한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서울시가 지난 8월 위촉한 시민위원들은 시에서 지역 및 계층 등의 변수를 고려한 150명의 시민들과 ‘인권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각계각층의 전문위원 30인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정된 150명의 시민들은 전문위원만큼의 전문성은 없더라도 스스로 인권교육을 요청해 배울 정도로 인권에 대한 열의가 높았고, 차별없는 인권헌장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 그럼 서울시가 폐기한 ‘인권헌장’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인권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합의를 통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저마다 개개인의 정체성이 있고, 이러한 특성을 반대하고 혐오하는 세력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정체성을 존중해줘야 한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개인 정체성을 존중해줘야 다양한 사회적 논의와 인권의식이 성숙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과 관련된 헌장이, 특히 ‘성소수자 인권’이 포함된 이번 인권헌장이 중요했다.” 

- ‘서울시민인권헌장’이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이를 포기한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서울시와 박 시장은 성소수자 단체들이 ‘인권헌장’과 관련한 면담요청을 신청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반면 기독교 단체가 요청한 ‘인권헌장’ 면담에는 수용했다. 이는 한쪽 얘기만 듣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권헌장 폐기와 관련해 시민위원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조치 박 시장은 하지 않았다.

결국 박 시장과 서울시가 인권헌장을 폐기한 데에는 시의 이득이 덜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시는 인권헌장과 관련해 헌장제정권한을 시민위원회에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시의 이득과 거리가 멀고, 박 시장의 향후 정치적 행보에도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권헌장’과 관련해 성소수자 단체들의 면담은 외면하고,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단체들과의 면담만 수용할 수 있겠는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이 폐기됐으나, 이후의 대안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해달라.
“이번 인권헌장 폐기를 통해 성소수자의 권리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또 성소수자를 포함한 인권의 사회적 변화가 시급함을 보여줬다. 아직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이 지나지 않았다. 앞서 폐기된 ‘서울시민인권헌장’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확정된 헌장이므로, 이를 폐기시키지 말고 다시 선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선포하는 것만이 박 시장이 시장후보로 출마했던 당시 내세웠던 ‘시민들과의 소통’을 지키는 것이며, 시민 인권이 보장되는 서울시를 만드는 길이다.”

한편 <시사위크>는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 논란과 관련, 서울시 인권정책팀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시 인권정책팀은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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