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우리나라는 90개의 원양 업체와 359척의 원양어선을 거느린 ‘원양 강국’이다. 어획량은 세계 3위, 참치 조업량 세계 2위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국제적으로 한국 원양어업계는 ‘불법 어업’과 ‘인권 침해의 온상지’라는 오명에 시달려야 했다. 국내 원양어업계의 대표 회사인 동원산업, 사조산업, 인성실업 등의 ‘불법어업 행태’가 연이어 적발된 탓이다.

결국 지난 2013년경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한국을 ‘불법 어업국’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서면서 국내 원양어업계는 큰 위기를 마주했다.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되면 해당 국가로의 수출길이 막히는 것은 물론이고 ‘수산업 업무 교류’가 전면 중단된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위상’이 바닥으로 추락하게 되는 큰 사건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2년간 부랴부랴 원양산업발전법을 개정하고, ‘개선 대책’을 내놓았다. 조업감시센터 설립, 어선 위치추적장치 설치와 같은 감시·감독 시스템을 구축했고, ‘규제’가 강화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 등 법적근거와 제도를 마련했다. 이런 노력이 통했을까. 최근 미국 해양대기청이 한국에 대한 ‘예비 불법 어업국’ 지정을 해제한 데 이어 EU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이 해제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획량 감소’라는 글로벌한 위기 앞에서 원양수산업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에 <시사위크>에선 국내 ‘불법어업’ 근절 캠페인을 이끌어온 세계적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해양 캠페이너 한정희 씨를 지난 4일 만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봤다.

 

▲ 한정희 그린피스 해양 캠페이너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그린피스는 국내 원양어업계의 ‘불법 어업’의 문제를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고발해오는 일을 해왔다. 간단하게 그동안 해온 일을 소개를 해 달라.
“그린피스는 국제 환경단체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해양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지난 2011년 한국에 그린피스 사무국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원양어업 업체들의 ‘불법어획’ 실태를 알리는 일을 했다. 인성실업의 남극해 이빨고기 남획 문제, 사조그룹의 불법 투기와 인권침해, 동원산업의 불법 문제 등을 규탄하고, 정부에 개선 대책을 요구했다. 우리나라가 지난 2013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된 이후엔 원양수산 정책 방향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조언하는 일을 했다. 법률적 허점에 대한 제안서도 두 차례 발표했다.”

 

-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원양어업계의 불법 어업 문제를 심각하게 본 계기는 뭐였나. 사실 국내 원양어업계에선 우리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는데.  
“지난 2011년 인성실업의 원양어선이 남극해에서 멸종 위기종인 메로(파타고니아 이빨고기)의 어획 제한량의 4배 이상을 남획한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이 사건을 남국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불법어업국’ 지정을 추진했으나, 위원회 소속 국가 중 한국이 반대하면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 사회에선 한국이 불법어업 문제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을뿐더러, 제대로 된 규정조차 없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후 사조와 동원산업 등의 불법 어업 문제가 대두되면서 지난 2013년 미국이 한국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일각에선 한국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는데, 한국은 ‘원양강국’으로서 그만큼의 책임이 있다는 게 국제사회의 시각이었다. 게다가 ‘불법 어업국’으로 지정된 나라 대부분이 빈곤 국가들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은 그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높았다.”

- 우리나라 정부와 원양어업 기업들로선 엄청난 위기를 몰고 온 사건이었다. 지난 2년 동안 한국 정부는 ‘불법어업국’ 지정 해제를 위해 법률적 제도적 기반을 재정비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엄청나게 큰 정책적 변화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국내 원양수산업은 물고기를 많이 잡아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데 집중해왔다. 합법적으로 어획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무분별한 남획 등의 불법 어업 행위에 대한 감시 체계와 처벌 규정도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 위기를 맞이한 후 한국 정부는 두 차례의 법률 개정 과정을 거쳐 처벌 규정과 감시 체계를 대폭 강화했다. 이로 인해 19세기 수준에 머물렀던 원양수산정책이 2년 만에 21세기 수준으로 바뀌었다. 지속가능성과 보존이라는 패러다임이 이번 법률에 큰 틀에서 반영된 것이 성과라고 생각한다.” 
 
- 그래도 ‘환경단체’로서 아쉬움은 있을 것 같다. 
“물론 있다. ‘엄청난 발전’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아쉬운 점은 있다. 지난해 11월에 그와 관련된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큰 틀에서의 법 규정은 강화됐지만, 불법어업 발생 시의 조사 체계와 책임 부과 등 디테일한 규정에 대한 숙제가 남아있다. 이를테면 불법 어업 의심사례가 생겼다면 이 배를 어떻게 조사를 할지, 어떤 자료를 요청할지, 누구를 처벌할지 등의 문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왜냐면 이런 디테일한 부분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지금이야 ‘불법어업국’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위기감 속에서 변화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10~20년 후에 느슨한 정책 지도자가 온다든가, 정부가 교체된다면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결국 이것을 지속가능성 있게 안정적으로 유지시킬 지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는 것이다.”

 

▲ 그린피스가 벌인 '불법어업 근절 캠페인'. (사진: 그린피스 제공)

 

- 강화된 규정을 빠져나오기 위한 기업들의 꼼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우리나라 원양어업 기업들이 외국 회사의 선박과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외국 회사들이 ‘불법 어업’을 저질렀을 때 처벌 규정이 제대로 마련돼 있나.
“이번에 큰 틀에서 강화된 법률이 생겼다. 기존의 우리나라 법에선 외국계 회사의 지분 49%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때만 ‘합작법인’으로 인정돼 책임을 묻게 돼 있었다. 그러다보니 49% 이하의 지분을 보유하면서 빠져나가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이번에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불법어업을 하면 안 된다”는 ‘자국민 규제’ 법조항이 들어갔다. 큰 틀에서 법률적 처벌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되기엔 다소 처벌 규정이 모호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렇다. 예를 들어 그 책임을 물을 때 ‘지분율’을 갖고 확인할 것인지, 임원을 임명하는 권한으로 파악할 건인지 등 기준이 부재한 채 마련됐다. 그래서 앞으로 있을 시행령과 시행규칙들을 제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위 법령에서라도 처벌 규정이 자세히 마련되도록 제안을 할 계획이다. 완벽한 법이란 없으니 앞으로 차차 해결해나갈 문제라고 생각한다.”

- 어쨌든 지속가능성 있는 원양어업을 위해 다양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강화된 규제가 산업 자체를 침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어업 행위에 대한 규제는 이미 선택 사항이 아니다. ‘어획량 고갈 문제’는 이미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일부에선 이미 어업의 30%가 무너졌고, 2048년이면 고갈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무분별한 남획’을 근절하고 ‘불법어업’ 행위를 막지 않으면 산업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동원, 사조 등 국내 원양어업체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을 유지하려면 결국 지속가능한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해양 자원은 인간이 관리하기 어렵다. 해양 자원 파괴의 임계점을 넘으면 돌이키기엔 늦어버린다.”

- 그렇다면 한국의 원양 기업들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은데. 
“우리나라가 기술력과 힘을 갖고 있기에 리더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린피스 입장에선 기업들이 앞장 서주길 바라고 있다. 특히 국내 원양어업계의 대표주자인 동원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동원은 글로벌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그래서 리더십을 발휘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물고기를 잡고, 가공하고 파는 것을 한번에 다 하는 곳은 없다. 전 과정을 다 아우르고 있기에 구조의 변화를 꾀하기도 좋다.”

-어쨌든 법률이 강화됐지만 앞으로도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린피스의 앞으로 계획은 뭔가.  
“지난 2년간 노력한 의지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이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될려면 감시가 필요하다. 그것을 모니터링하는 게 저희 역할이다. 커다란 틀을 만들었으니, 이제 잘 가꾸는 작업이 남아있다. 국민적인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