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에 이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면서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의 개막’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재용 시대’의 안착을 위해선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됐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맡던 자리를 물려받은 것은 처음이다.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의 개막’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왕좌에 오르는 것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다. 그만큼 삼성은 ‘승계 프로젝트’를 오래전부터 준비했고,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쓰러지면서 시간이 당겨졌을 뿐, ‘결과’가 달라지진 않는다.

다만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다.

◇ ‘이재용 회장님’ 자격 있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1994년부터 시작됐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현금 60여억원 중 증여세 16억을 내고 남은 44억이 승계를 위한 종잣돈이 됐다. 이후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 비상장사들의 주식을 사들였다. 해당 계열사들은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급성장한 뒤 상장 수순을 밟았다. 44억원의 종잣돈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1조원 규모의 사재출연’을 약속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퇴진’을 선언했지만 1년이 조금 지난 뒤 경영에 복귀했다. 그리고 당시 대국민 약속이었던 1조원 사재출연도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당장 ‘이재용의 삼성’에 필요한 것이 ‘신뢰’회복인 이유다.

이는 현재 삼성그룹의 핵심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데 쓰였고, 결국 ‘이재용 시대’ 사전준비작업의 바탕이 됐다. ‘탁월한 재테크 능력’으로 보이지만, 이는 ‘편법’에 의한 것이다. 정당하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 삼성SDS 사건은 법원에서도 ‘유죄’로 판단했다. 세금을 내지 않고 편법으로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저지른 사건임을 인정한 것이다. 게다가 계열사 지분을 헐값에 넘겨받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이렇게 얻은 ‘부당이익’을 쥐고 있어도 되는 ‘당위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사건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편법·불법 경영권승계’ 꼬리표를 달았다. ‘도덕성’에도 치명상을 입은 상태다. 삼성그룹의 승계 프로젝트대로 ‘이재용 시대’가 열린다 하더라도, 강력한 힘을 갖기는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실제 시민단체를 비롯해 삼성을 담당하는 증권사 관계자들도 편법·불법 승계 논란이 경영권 승계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 리서치기관 설문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8명은 이재용 부회장이 부당하게 챙긴 이득을 환수해야 한다고 답했다.

물론 혹자는 경영권을 승계하는데 있어 ‘지분확보’라는 물리적인 정당성이 우선이라고 꼬집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이병철-이건희 세대와는 달리 이윤추구가 기업경영의 절대 선(善)이 아닌 현 경제현실을 고려하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이재용 부회장의 정당성 확보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 ‘이건희 1조원 사재출연’ 이행, 이재용 시대 안착 지름길

편법·불법 경영권 승계라는 오명에 ‘거짓말’까지 덧씌워질 경우 ‘이재용 시대’는 더욱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약속한 ‘1조원 사재출연’ 문제를 이재용 부회장이 어떻게 푸느냐는 주목할 점이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차명 재산을) 실명 전환한 뒤 벌금과 누락된 세금을 납부하고 나머지를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세금과 벌금을 내고 남은 금액은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1조원 이상의 사재 출연을 약속한 셈이다. 하지만 7년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삼성은 “논의중이다”는 말만 7년째 반복하고 있다.

 

▲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실패·편법 경영권승계 등 과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진정한 ‘이재용의 삼성’이 되기 위해선 경영권 승계의 정당성 확보가 절실하다.

 

현재 이건희 회장이 와병중인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상 1조원의 사재출연은 이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인지능력이 완전히 회복돼 사재출연에 대한 명확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이상, 이 약속은 이재용 부회장의 몫으로 남는다. 만약 ‘아버지의 약속’으로 치부하고 얼렁뚱땅 넘어갈 경우 사회적 반발은 걷잡을 수 없다.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더라도 ‘이건희 거짓말’에 대한 책임은 결국 ‘이재용의 삼성’에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미 과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경영권을 넘겨받기 위해 불법과 편법이 자행됐는가 하면, 이재용 부회장 본인도 어설픈 경영으로 삼성에 부담을 안겼다. 이재용 부회장이 실패한 벤처회사들은 ‘아버지 회사’에 팔렸고, ‘황태자’의 실패작을 떠안은 계열사들은 그만큼의 손실을 입었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3, 4세들에게 국가 명운이 걸린 기업의 최고경영을 맡겨야 하는지 의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가뜩이나 ‘X파일’ ‘삼성공화국’ ‘언론장학생’ ‘떡값검사’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삼성’이다. 삼성이 갑자기 백혈병 피해 대책에 나선 것도 이런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결국 ‘이재용 시대’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읽힌다. ‘이재용 시대’를 여는데 있어 경영권 승계의 정당성 확보와, 이에 따른 신뢰 회복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조세팀장은 프레시안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어떤 사회 정의, 어떤 국민 경제의 요구, 어떤 법치의 원리도 삼성 총수 일가의 이해와 만나면 무너지고 거부되고 훼손되고야 마는 패배의 경험에 쌓여 있다. 그리하여 삼성의 최대 해악은, ‘이기지 못할 악을 차라리 우러러보게 하는’, 시민의식의 퇴행을 낳은 점이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재용 부회장이 제시할 차례다. 이를 풀지 못한다면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님’은 ‘절대’ 인정받을 수 없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