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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골육상쟁’②] 대(代) 이은 형제간 갈등… 불행한 신격호 회장
2015. 07. 31 by 권정두 기자 swgwon14@hanmail.net

▲ 대를 이어 형제간 갈등에 휩싸인 신격호 회장(가운데).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춘호 농심 회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1922년. 이제는 ‘명예회장’이 된 신격호 회장이 태어난 해다. 1922년은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호랑이가 포획된 해이기도 하다. 그만큼 오래 전에 태어난 신격호 회장은 한국 현대 경제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산증인’이다.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신격호 회장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일본을 오가며 선진문물을 접했다. 이후 돈을 벌겠다는 각오로 일본으로 향한 그는 ‘껌’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해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한다. 이때가 1940년대 중반,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이다.

신격호 회장은 1948년 롯데를 설립했으며, 1950~60년대엔 사업을 다방면으로 확장해 일본의 10대 재벌에 등극했다. 한국에서는 1966년부터 사업을 시작해 1970~80년대 식품·유통·건설·호텔 등으로 사업을 빠르게 확장시켰다. 이후 롯데는 한국 재계순위 5위에 해당하는 굴지의 재벌그룹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처럼 신격호 회장은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성공한 경영인이다. 그가 사업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 ‘껌’이었던 점과 이후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성공가도를 달린 점 등은 그의 빼어난 사업수완과 능력을 증명한다.

어느덧 94세의 고령이 된 신격호 회장은 평생의 숙원이 이뤄지는 순간도 앞두고 있다. 바로 제2롯데월드타워다.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될 제2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 회장에게 자신의 삶을 투영한 금자탑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남부럽지 않을 것 같은 신격호 회장에게도 평생 한으로 남을 ‘불행’이 자리 잡고 있다. 가족, 특히 형제간의 불화가 그것이다.

▲ 신격호 회장 역시 형제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
◇ ‘집안내력’처럼 대를 이은 형제 갈등

고령의 나이에도 현역을 떠나지 않던 신격호 회장은 어쩌면 내년 제2롯데월드타워 완공과 함께 멋진 은퇴를 꿈꿨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신격호 회장은 자신이 낳은 두 아들의 갈등으로 인해 어정쩡한 ‘강제 은퇴’를 맞고 말았다.

올해 초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내쳤던 신격호 회장은 이번엔 돌연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내치려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동빈 회장에 의해 그리 명예롭지 않은 방식으로 명예회장이 됐다.

세간의 시선이 집중된 롯데가(家) 2세대 형제간 다툼은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각자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는데 집중하고 있는 신동주-신동빈 형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가 70년에 걸쳐 이뤄놓은 ‘영광의 롯데’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얼룩지고 있다.

이처럼 인생 말년에 자식 간의 갈등이란 불행을 겪고 있는 신격호 회장. 공교롭게도 신격호 회장 역시 형제사이가 좋지 않다. 그것도 신동주-신동빈 형제보다 심한 수준이다.

일본에서의 사업에 집중하고 있던 1950년대, 신격호 회장은 한국 사업을 바로 아래 동생인 고(故) 신철호 전 롯데 사장에게 맡겼다. 그런데 신격호 회장은 1958년 제대로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신격호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동생이 서류를 위조해 회사를 가로채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란’은 무위로 돌아갔고. 고 신철호 전 사장은 구속됐다.

또 하나의 굴지의 식품업체 ‘농심’을 이끌고 있는 둘째 남동생 신춘호 농심 회장과의 관계도 ‘절교’ 수준이다.

일본 롯데에서 일하던 신춘호 회장은 1965년 한국으로 돌아와 ‘롯데공업’을 설립하고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신격호 회장은 사업부문이 겹친다는 이유로 동생의 라면사업 진출에 강하게 반대했고, 여기서 둘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신격호 회장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동생에게, 신춘호 회장은 자신의 뜻을 무시하고 지원해주지 않는 형에게 반감을 갖게 된 것이다.

결국 신춘호 회장은 롯데공업의 이름을 농심으로 바꾸고 형 신격호 회장의 곁을 떠났다. 이후 신춘호 회장은 선친 제사에도 일절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격호 회장과의 왕래를 완전히 끊은 것이다.

▲ 경영권 갈등을 빚고 있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위)과 '차남' 신동빈 회장(아래).
막내 남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도 비슷한 이유로 ‘롯데’의 이름을 박탈당했다. 신준호 회장은 신격호 회장과 등을 돌린 다른 형들을 대신해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물산 등을 핵심 계열사들을 거치며 한국 롯데의 실무를 총괄했다.

하지만 지난 1996년 부지소유권을 둘러싼 법정 다툼에 휩싸이면서 둘의 관계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신격호 회장은 부동산실명제가 도입되자 신준호 회장의 명의로 돼있던 부지를 롯데 소유로 바꾸려했다. 그런데 신준호 회장이 이에 반발하면서 소유권을 주장했고, 결국 법정 소송까지 거쳐 신격호 회장이 승소했다.

이후 신준호 회장은 신격호 회장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했지만 신격호 회장은 마음을 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신준호 회장은 롯데햄우유를 가지고 롯데그룹에서 분리해 나와 롯데우류로 상호를 변경했다. 하지만 롯데그룹이 ‘롯데’ 브랜드 사용 중단을 요청하면서 2009년 푸르밀로 이름을 바꾸기에 이른다.

신격호 회장의 셋째 남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은 유일하게 갈등을 겪지 않았으나, 신동빈 회장과 다소 껄끄러운 사이다. 신선호 사장의 맏사위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지난 2007년 우리홈쇼핑 인수를 놓고 한국 롯데를 이끌던 신동빈 회장과 법적 공방까지 벌였기 때문이다.

울주의 집성촌에서 태어난 신격호 회장은 댐 건설로 인해 고향 사람들이 흩어지자 마을 이름을 딴 ‘둔기회’를 만들어 1971년부터 마을잔치를 제공했다. 이 마을잔치는 2013년까지 40년 넘게 꾸준히 이어졌고, 수십 명에 불과했던 참석자들도 대를 이어 1,100여 세대까지 늘어났다. 이는 신격호 회장이 얼마나 정이 많은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신격호 회장은 정작 피를 나눈 형제와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돼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형제 간 갈등은 마치 집안내력이라도 되는 듯 자녀들 사이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 세기 가까운 삶을 살며 눈부신 성공을 이룬 신격호 회장의 삶이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