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늘 그렇듯 다사다난하고 아쉬움 가득한 한해가 저물고 있다. 2015년 우리 경제계는 위기로 시작해 위기로 끝나는, ‘위기의 긴 터널’에 머물렀다. 특히 조선, 철강, 자동차 업계는 거센 파도에 맞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조선·철강·자동차 업계의 2015년을 핵심 키워드로 정리하고, 다가올 2016년을 전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조선업계다.

 

▲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올해 나란히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 허리띠를 졸라매라 - Reduction: 감축

 

 

국내를 대표하는 산업이자, 우리 국민에게 ‘세계 1위’라는 자긍심까지 심어줬던 조선업. 하지만 2015년이 저무는 지금, 조선업의 겨울은 더욱 차갑기만 하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조선업을 대표하는 조선 3사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현재 다이어트로 분주하다. 비핵심 자산 및 계열사는 가차 없이 매물로 내놓았고, 서슬파란 인원감축 바람은 윗선부터 아랫선까지 가리지 않고 불어댔다.

사정이 가장 급한 것은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본사와 당산동 사옥의 정리를 추진 중이다. 쉽게 말해 방을 빼는 것이다. 연수원·골프장 등을 운영하던 자회사 FLC는 이데일리에 팔았다. 해외자회사로는 루마니아 대우망갈리아 조선소, 미국의 풍력발전 회사인 드윈드, DSME 오만 등이 ‘정리 목록’에 올라있다.

대우조선해양이 ‘미래’를 그렸던 마곡부지 역시 다시금 새하얀 도화지가 됐다. 녹록치 않겠지만, 대우조선해양은 마곡부지도 처분할 방침이다. 마곡부지에 설립하려던 연구개발시설은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에 터를 잡게 된다.

뿐만 아니다. 지난달 생산현장을 ‘올스톱’시키고 ‘전 사원 대토론회’를 가진 대우조선해양은 직원들까지 현금 마련에 동참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티끌까지 끌어 모으고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대우조선해양은 VIP 방문 때 사용하던 헬기까지 팔았다.

현대중공업은 허리띠를 졸라 맨지 오래다. 지난해부터 비핵심자산 및 계열사 매각과 인력구조조정 등 혹독한 다이어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비상경영을 재차 선포하고, 전 계열사 사장이 월급 전액을 반납하기로 하기도 했다.

삼성중공업도 다르지 않다. 화성사업장은 계열사에 매각한 뒤 재차 임대했다. 자가였던 집이 전세로 바뀐 셈이다. 삼성중공업은 거제조선소 인근의 직원아파트까지 매각을 고려한 바 있다.

 

▲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는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 파도 피하다 쓰나미 맞다 - Emergency: 위기

 

이처럼 조선 3사가 현금 마련에 분주한 이유는 간단하다. 심각한 ‘위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엎친데 덮쳤다는 표현이 적합해 보인다. 위기를 벗어나려다 더 깊은 위기의 늪에 빠진 꼴이 됐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따라 조선업계에도 불황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조선 3사는 저가수주와 해양플랜트 사업에 적극 나섰다. 도크를 비워두는 것보단 ‘박리다매’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고, ‘조선업 세계최고’에 대한 자부심이 해양플랜트를 향한 도전정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더욱 악화되면서 조선 3사는 직격탄을 맞았다. 저가수주를 회복할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고, 해양플랜트는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전임 경영진의 무책임한 ‘방관’이 적자 폭탄의 파괴력을 키우고 말았다. 소위 ‘주인 없는 회사’의 맹점이 드러난 부분이다. 이에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가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조선업계는 유가하락 등의 요인까지 겹치면서 더욱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잇따라 벌어진 주문 취소 사태다. 유가 하락으로 시장 환경이 악화되자 선주사들은 이미 다 만들어진 선박의 인도를 거부하며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공기 지연’ 등을 이유로 내건 주문 취소가 합당한지는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일단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 대우조선해양은 방치된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나며 3분기까지 4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Deficit: 적자

 

이러한 위기의 파도는 ‘적자’라는 냉철한 숫자로 고스란히 남았다.

조선 3사는 올해 나란히 대규모 적자를 면치 못했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대우조선해양이다. 2분기와 3분기 잇따라 적자 폭탄을 터뜨린 대우조선해양은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4조3,000억원에 달한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손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경제계 전반에 상당한 충격을 안기고 말았다.

적자 행진의 앞장을 선 현대중공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조 단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분기 1조5,000억원대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주문 취소’라는 또 다른 악재를 만나면서 3분기에도 반등에 실패했다.

이들 조선 3사의 3분기 누적실적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합산 영업손실은 7조원에 육박하고, 당기순손실은 5조원을 한참 뛰어 넘는다. 4분기 역시 이렇다 할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칫 10조원대 손실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조선업계의 찬란했던 영광의 시절은 이제 철저하게 과거이야기가 됐다. 2016년의 전망도 밝음보단 어두움에 가깝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반성과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조선업계의 미래가 마냥 비관적인 것만도 아니다. 당장의 ‘지표 개선’을 위해 서두르기 보단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질을 개선하고, 체력 및 능력을 키워야 한다. 2016년, 위기의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가진 못하더라도 출구의 빛이 비추기 시작하는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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