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정민우 전 포스코 ER실 팀장.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설 연휴를 앞둔 5일, 청와대 앞은 비교적 한산했다. 순찰을 도는 경호 인력과 외국인 관광객만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 여성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눈에 띄는 빨간색으로 쓰인 피켓의 내용은 간명했다. ‘대통령님! 포스코를 살려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1인 시위에 나선 것은 얼마 전까지 포스코 ER실(대외협력실) 팀장으로 일했던 정민우 씨다. 정 전 팀장은 20년 넘게 포스코에 근무했으나 최근 석연치 않은 징계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징계가 억울해서 1인 시위에 나선 것은 아니다. ‘국민 기업’ 포스코의 침몰 위기를 알리기 위해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전 팀장은 “포스코 경영진은 위기를 타개할 역량도, 마인드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전 팀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 얼마 전 흥행한 영화 ‘내부자들’의 이병헌이 떠오른다.

“그렇다. 이제는 내가 내부고발자가 됐다. 사실 20대 때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면서도 시위 한 번 해본 적 없다. 지금도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고 무작정 나왔다. 20년 넘게 포스코에서 일했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미련도 없다. 그저 포스코가 올바른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 포스코에서 어떤 업무를 맡았었나, 그리고 현재는?

“포스코 홍보실에서 쭉 일했다. 홍보 기획을 거쳐 청와대나 정부기관, 국회, 법조계 등을 상대하는 대관업무가 주업무였다. 그런데 최근 징계를 당했다. 경영진의 의중에 반하는 직언을 한 게 화근이었다.”

- 어떤 직언이었나.

“지난해 2~3월, 이완구 전 총리가 부패와의 척결을 선포함과 동시에 포스코건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당시 나는 서초동에 가서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리고 이 수사에 대한 정권의 의지가 상당하다고 판단해, ‘정준양 전 회장과 단절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권오준 회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7월 포스코 본사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6~7월 쯤엔 권오준 회장에 대한 윗선의 실망감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권오준 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여러 루트로 올렸고, 직접 대면보고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부서로 발령을 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휴직을 냈고, 권오준 회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협박성 떼를 써서 결국 만났다. 그리고 권오준 회장에게 직접 자진사퇴를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이후 예상했던 대로 포스코의 압박이 들어왔고, 징계면직을 받아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징계 절차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보단 포스코가 지닌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 정 전 팀장이 ‘대통령님! 포스코를 살려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청와대 사랑채 앞에 서 있다.
- 포스코가 지난해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 것은 다들 알고 있다. 내부자로서 느꼈던 현재의 위기는 어느 정도인가.

“포스코의 실적을 볼 땐 연결기준을 봐야 한다. 단독기준 실적은 포스코가 해외법인에게 판매한 것만 포함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연결기준이 진짜 실적인 셈이다. 또한 포스코는 이번 실적을 발표하면서 현금흐름이 좋아졌다며 애써 포장했는데, 애초에 포스코는 현금흐름이 나쁠 수 있는 기업이 아니다.

포스코 실적의 추세를 주목해야 한다. 4분기 영업이익이 3,00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올해 1분기엔 더 나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포스코는 해외법인의 생존력과 경쟁력 강화, 그리고 부실의 주요 원인인 국내외 계열사 정리가 시급하다.”


- 권오준 회장은 취임 이후 줄곧 구조조정으로 분주한데.

“부족하다. 포스코의 주력은 철강이고, 철강시장은 앞으로 더 좋지 않을 것이다. 경쟁사들과 치킨게임이 불가피하다. 그러려면 몸집을 줄여야한다. 하지만 권오준 회장은 200여명의 조직만을 이끌어봤을 뿐이다.”

- 그렇다면 대안은?

“현재의 위기를 추스르고 미래먹거리를 찾을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내부출신이고 외부수혈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이 지금의 포스코를 이끌어야 한다.”

- 황은연 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내부업무는 외면하고, 외부관리에만 집중한다.”

*이 부분에서 정민우 전 팀장은 황은연 사장과 정치권 실세들의 친분을 언급했지만, 확인되지 않는 사실이어서 인터뷰 내용에서는 제외했다. 또 권오준 회장과 황은연 사장의 관계도 언급했다. 

- 대관업무를 맡았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행동과 발언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누구보다 잘 알 것 같다.

“포스코는 국민기업이다. 나 역시 이 부분에서 큰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포스코는 아니다. 대규모 비리에 연루되고, 회사는 망가졌다. 그런데도 경영진은 무능하고, 개인 영욕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이대로 간다면 포스코는 침몰한다.

상황이 이렇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포스코 내·외부 그 누구도 바른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 누구도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 청와대를 선택한 이유는.

“다른 정치적인 것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대통령만큼은 누구보다 포스코의 회생을 바랄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만든 기업 아닌가. 포스코가 다시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다른 어떤 요인이 아닌, 능력이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대통령께서 잘 판단해주시길 호소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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