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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가 만난 사람들
“오로지 지역발전 위해 몸 던질 것”
“나는 일꾼이니까, 일을 하겠다”
[정운천 의원 직격인터뷰] “새누리당, 전북이 희망의 땅”
2016. 08. 04 by 은진 기자 jin9eun@sisaweek.com

▲ 정운천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인 전북 전주에서 새누리당 호남권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정 의원은 “‘호남의 변방’이라는 전북도민들의 서러움을 보상받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을 다시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시사위크=은진 기자] 정운천 새누리당 의원은 들뜬 표정이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 출마자들의 호남권 합동연설회가 전날 정 의원의 지역구인 전북 전주에서 열렸다. 행사는 크게 흥행했다. 3500여석의 좌석이 꽉 들어찼다. 여당 불모지에 가까운 전주에서 새누리당의 ‘빅 이벤트’가 열린 것은 32년 만의 일이다. 새누리당 전북도당은 정운천 의원의 당선으로 당내 전북의 정치적 위상이 확보됐다고 평가했다.

정 의원이 불모지를 개척할 수 있었던 비결은 ‘셀카 찍기’다. 2010년 전북도지사 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도 그는 지역에 남아 주민과 함께 했다. 최근 3년간 주민들과 찍은 셀카 사진만 2만5000장에 달한다. ‘셀카 찍기’는 정 의원의 습관이자 ‘사람 공부’다. 그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같이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가 몇 번이고 되새겨 본다고 했다. 얼굴을 기억해두기 위해서다.

“남은 작업이 있어요.”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려는 기자를 불러 세웠다. 그가 말한 ‘작업’은 역시 셀카였다. 정 의원의 스마트폰에는 7000장 가량의 사진이 있다. 그는 “올해에만 찍은 것”이라고 했다. 정운천 의원을 4일 오전 의원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새누리당 호남권 합동연설회가 전주에서 32년 만에 열렸다.
“‘천지개벽’ ‘격세지감’ 이렇게 표현해야할까. 1985년 민정당 이후 처음이다. 32년 세월은 엄청난 세월이다. 그 기간 동안 새누리당은 아예 전북에 없었다고 봐야한다. 지난 4·13 총선에서 제가 당선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번 행사는 역사의 전환점이고 변곡점이었다. 화산체육관에 3~4천명이 꽉 들어찼다. 휴가철에 이렇게 사람이 모인다는 것도 이례적이다. 다들 야당 전당대회 때도 이렇게 안 모인다고, 처음이라고 한다.”

-소회가 남달랐을 듯한데.
“호남의 대표주자로 역할을 하고 있어 이번 행사가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행사가) 별볼일 없었으면 임팩트가 없었을 텐데 임팩트가 있었다. (호남에서) 전북 선거인단이 4200여명으로 제일 많다. 광주가 2000명, 전남이 3000명가량 된다. 선거인단 수가 많은 곳을 공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동안 호남의 중심은 광주·전남이었다. 그런데 이번 합동연설회가 전주에서 열렸다. ‘호남의 변방’이라는 전북도민들의 서러움을 보상받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을 다시 세운 것이다.”

▲ 야당의 전통적인 텃밭이던 전주에 새누리당 깃발을 꽂은 정 의원은 “드디어 이제 새누리당에게는 (전북이) 미래의 땅, 희망의 땅이다. 비료를 주면서 척박한 땅이 비옥한 땅으로 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전북 지역의 그런 소외감이 어디에서 온다고 보나.
“전북은 역사적으로 호남의 중심이었다. 호남제일문과 전라감영으로 알 수 있듯이 과거에 광주·전남과 제주까지 호령했던 곳이 전주였다. 그 눈높이가 있었는데 해방 이후 전북의 중심이 강화된 게 아니라 계속 빠져나갔다. 중앙으로, 광주·전남으로 빠져나갔다. 그래서 전북도민들이 더 아픈 것 아니겠나.”

-당선된 배경에도 그런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민심이 아픔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정운천이 나온 것이다. (주민들이) 새누리당이 좋아서 정운천을 찍은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새누리당은 싫지만 6~7년을 함께한 정운천을 한 번 뽑아보자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4·13 총선 과정 당시 유권자들과 셀카를 찍던 모습도 독특했다.
“많은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데 물리적으로 어렵지 않나. 기억력에 한계도 있고.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집에서 공부하자고 생각했다. 기억해야겠다,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 사진을 다시 보면서 공부했다. 나중에 또 만났을 때 기억을 하면 그분들도 정말 좋아하신다. 셀카를 찍고, (상대방에게) 문자로 보내주고, 대화하고, 데이터베이스에 남기고 하다 보니 습관이 됐다.”

-사진 관리가 힘들 것 같은데.
“최근 2~3년 동안 1년에 7000명과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3만 명의 사진이 있다. 데이터베이스에 정리가 돼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서도 셀카를 찍었다. 셀카는 소통에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불교 이야기처럼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한분 한분이 너무 소중하다. 한번 셀카를 찍으면 둘이 연이 된 것이다. 대개 스쳐 지나가는데 그것을 셀카로서 소중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 정 의원이 불모지를 개척할 수 있었던 비결은 ‘셀카 찍기’다. 2010년 전북도지사 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도 그는 지역에 남아 주민과 함께 했다. 최근 3년간 주민들과 찍은 셀카 사진만 2만5000장에 달한다. <김현수 기자>

-20년 만에 탄생한 전북의 여당 의원이다. 새누리당의 호남 전략에도 변화가 있을까.
“당연히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가졌던 전북의 여당 불모지, 철옹성이라는 개념이 이제 함락됐다. 과거에는 기대를 할 수 없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당선자 나오고 기대할 수 있는 땅이 됐다. 철옹성 한쪽이 열려서 나머지는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열릴 수 있다. 드디어 이제 새누리당에게는 (전북이) 미래의 땅, 희망의 땅이다. 비료를 주면서 척박한 땅이 비옥한 땅으로 돼가는 것 같다.”

-전주에서부터 시작되는 건가.
“그렇게 유도하고 있다. 광주를 호남의 한복판에 두고 그렇게 두드려도 광주 공략은 전략적으로 역부족이다. 오히려 외곽인 전주를 먼저 공략해서 거기서부터 광주·전남으로 내려가는 게 좋겠다. 그게 내가 원하는 그림이다.”

-김영란법으로 전북 지역 농업계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보통 추석이나 설날에 (한 해 수확한) 농산물의 15%가 팔린다. 그게 한번 영향을 받으면 계속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공급과잉이 된다. (선물액 제한을) 5만원으로 하면 소고기나 농축산물 (가격대는) 맞지가 않다. 국민 정서상 농산물 선물을 받고 대가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을 주고받는, 말 그대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명절에 대한 온기를 주고받는 느낌으로 받는다. 상품권 선물과 농산물은 받는 기분이 전혀 다르다. 최소한 이 정도는 열어줬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농업인들에게 이 김영란법이 기회를 제공하게 될 수도 있다. ‘골프장 선물 말고 이것(농축산물) 해라’라고 하면 더 팔릴 것 아니겠나. 그렇게 (농민들) 숨통도 열어줘야 하는데 그냥 흑백 잣대로 들이대는 것이다. 그래서 대체입법을 만들어 농산물을 열어달라고 기자회견도 열었다. 농업 유통에 부정적인 개념보다는 갑의 논리를 수평논리로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

-상임위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택했다.
“사실은 농업 쪽에서 내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농식품부를 만들었고, ‘농장에서 식탁까지’ 패러다임 만들었고, 한식 세계화, 소금을 식품으로 바꾼 것 등을 했다. 그 다음은 후배들이 할 일이다.

대신 미래 산업인 탄소, 4차 산업혁명을 접하다보니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현재 조선 철강 석유화학 무너지고 있다. 자동차·반도체 산업까지 지금 축이 무너지고 있다. 이걸 대체할 수 있는 게 탄소산업이다. 석유화학이나 자동차 분야에서 전기차, 3D 프린트, 로봇, 드론 등이 등장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이걸 우리가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미래 먹거리 되느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그래서 산자위에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주는 탄소산업의 메카다. 탄소산업육성법을 만들어놓고 나니까 후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지역발전 위해서라도 이걸 하고 싶다. 벌써 탄소산업단지 예비타당성조사 되게 하고 있고 메가탄소밸리 투자 이끌고 있다. 지금 탄소산업육성법 시행령도 장관한테 어필해서 하고 있다. 나는 일꾼이니까. 일을 하는 거다.”

▲ 정 의원의 향후 행보 초점은 지역 균형발전이다. 그는 “난 오로지 지역발전을 위해서 몸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지역 발전을 위한 구상은 어떻게 세우고 있나.
“일단 기존 농업으로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장관 때 농업을 식품과 결합해 농식품부를 만들었다. 농식품으로 가면 농업이 농사가 아닌 산업으로 변한다. 식품이 결합되면 식품산업화가 되는 거다. 식품산업단지를 하나 국가적으로 지정하자는 게 익산의 국가식품클러스터다. 지금 기업들이 들어오고 있다. 그걸 이용해 중국을 향한 선진정책에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국토균형발전이 된다.

두 번째로는 새만금을 전 세계에 개방을 해서 글로벌 특구로 지정해 중국을 향한 산업을 키워야 한다. 두바이가 처음에 항만과 항구, 공항만 만들어놓고 (나라에서) 알아서 해봐라 다 주겠다고 해서 키운 것이다. 이후에 전 세계에서 다 투자했다. 새만금도 국내 돈만 가지고는 안 된다. 여의도의 100배가 넘는 규모다. 새만금을 두바이처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향후 행보가 궁금한데.
“사실은 내가 지향하는 목표는 다 달성했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장관까지 했고, 정치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지역장벽을 깨는 것이었다. 목표가 국회의원이었다면 전주에서 출마 안했다. (당선) 될 곳으로 가지 안 될 곳으로 왜 가겠나. 이제 지역장벽을 깼고 남은 일거리들이 있다. 지역 균형발전이다.

그것만 생각하다보니 당 대표나 최고위원 경선 출마할 생각이 없다. 당 대표가 되면 전국적으로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역을 위해 일한다는 의지가 희석된다. (선거에 나오는 것은) 국가 전체를 위해서 큰 사람이 되겠다는 것 아니겠나. 지역발전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난 오로지 지역발전을 위해서 몸을 던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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