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의 상품권 강매 갑질이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홈플러스가 대형 유통업체의 ‘갑질’을 막기 위한 법이 제정된 뒤에도 협력업체에 대한 ‘상품권 강매’에 나선 정황이 포착됐다. 이 법에 따라 홈플러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은 2013년 이후에도, 이러한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이 함께 제기됐다. 홈플러스는 ‘과거의 일’이라는 입장이지만, 해당 협력업체가 이 문제를 공정위에 제소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 법률 강화되자 상품권 신청서 요청… “메일은 즉시 삭제”

<시사위크>는 홈플러스의 청소·주차·카트관리 협력업체들이 2012년 홈플러스 담당자로부터 받은 이메일 한 통을 최근 입수했다.

메일은 2012년 설 연휴를 2주 앞둔 1월 6일 발송됐다. 눈에 띄는 것은 맨 처음 등장하는 내용이다. “(추석과 다른 점) 법률 강화로 인해 아래와 같이 요청드립니다.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 - 2012. 1. 1부로 기 발효됨”이라고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상품권 구입 신청 시 작성해야 할 신청서 양식과 예시가 자세하게 나온다. 마지막 내용도 눈길을 끈다. “상기 메일은 숙지 후 즉시 삭제>휴지통 비우기”라는 내용이다.

홈플러스 협력업체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새로운 법률이 제정된 이후에도 법을 피해 상품권 강매에 나선 증거라고 주장했다.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은 대형마트·백화점 등 대규모 유통업체와 납품업자·매장 임차인 등이 대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쉽게 말해, 대규모 유통업체의 갑질을 막는 법이다. 이 법은 2012년부터 시행됐다.

해당 이메일에 상품권 구입을 강요하는 내용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협력업체 관계자는 “구두 상으로 상품권 구입에 대한 압력이 있었고, ‘절대 을’인 협력업체 입장에서 이러한 이메일을 받고 그냥 넘길 수 있는 업체는 없다”고 토로했다.

▲ 홈플러스 협력업체가 2012년 홈플러스 담당자로부터 받은 이메일. 법률 강화에 따라 달라진 상품권 신청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시사위크>
홈플러스는 2013년 공정위로부터 이 같은 ‘갑질 행위’가 적발된 바 있다. 당시 공정위는 2012년 1월 시행된 법률에 따라 2012년 9월 대형마트 및 백화점 6곳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고, 이듬해 홈플러스를 비롯해 롯데백화점·롯데마트 등 3곳에 과징금 처분 결정을 내렸다. 주된 적발 내용은 납품업체에 대한 인건비 전가였으며, 상품권 강매 등 다양한 갑질 행태도 함께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측은 최근 상품권 강매가 계속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2013년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뒤로는 상품권 강매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해당 협력업체 측은 2012년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상품권 강매 악습은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이 협력업체는 2014~2015년 설과 추석에도 총 2600만원어치의 홈플러스 상품권을 구입했다. 선물세트까지 더하면 3000만원이 넘어간다. 올 초 설 명절에도 4개 점포에서 상품권 300만원어치, 선물세트 20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보통 1개 점포에서 200만원 또는 100만원어치의 상품권을 구입했는데, 이는 홈플러스가 상품권 강매가 있었다고 인정한 과거와 다르지 않다.

◇ 끊이지 않는 홈플러스 갑질 논란… 또 공정위로

이 협력업체의 주장은 지난해 홈플러스를 공정위에 제소한 한 신발 남품업체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당시 신발 납품업체는 인건비 부담, 상품권 강매, 부당 반품처리 등으로 수십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는 공정거래조정원의 중재를 통해 합의가 끝난 사안이라고 밝혔으나, 이 업체는 합의 이후에도 홈플러스의 갑질이 계속됐다며 공정위에 제소했다.

공정위는 이 사안을 포함해 홈플러스의 갑질 행태를 또 다시 적발했고, 지난 5월 22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마트·롯데마트 역시 적발을 피하지 못했지만, 적발 내용 및 과징금 규모는 홈플러스가 압도적이었다.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기록한 홈플러스다. 특히 공정위는 홈플러스가 각종 ‘갑질’에 대한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검찰에 고발하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 홈플러스 협력업체는 최근 공정위에 홈플러스 갑질 행태를 신고했다. <시사위크>
재차 불거진 상품권 강매 주장에 대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2013년 이후 본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스토어 메시지를 통해 상품권 강매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협력업체들이 혹시나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해 먼저 자발적으로 상품권을 구매한 부분이 있다”며 “그러나 이것을 일방적인 강매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상품권 강매는 다른 갑질 사안과 달리 사실관계 확인이 쉽지 않다. 인건비 또는 납품대금 전가와 성격이 다르다. 협력업체가 ‘울며 겨자 먹기로’ 상품권을 구입했는지, 정말 필요에 의해 구입했는지 진실을 아는 것은 본인들뿐이다.

협력업체 측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고용한 인력은 청소·주차·카트관리 업무를 담당해 임금이 최하 수준이다. 이들에게 명절이라고 10만원, 20만원씩 상품권을 건넬 여력이 있을 수 없다”며 “구입한 상품권은 현장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데 썼다. 홈플러스 상품권 이용이 가능한 식당에서 회식을 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협력업체의 경우 손해를 감수하고, ‘상품권 깡’을 통해 현금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협력업체 관계자는 “6개월마다 계약 갱신이 이뤄지는데, 업무 특성상 얼마든지 책잡기가 가능하다”며 “홈플러스는 강매가 없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 협력업체는 지난 22일 홈플러스의 갑질 행태를 공정위에 신고했으며, 현재 공정위 경쟁과에서 조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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