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년 만에 여권 텃밭에서 야권의 깃발을 꽂은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새로운 정치와 본질적인 의정활동에 목표를 뒀다. <김현수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시간이 부족하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고민이 적지 않았다. 정치권에 몸담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국회 배지를 달고 국감을 처음 준비하는 만큼 “정말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지역구 관리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지역구는 여당 텃밭으로 통하는 서울 양천갑이다. 20대 총선에서 ‘목동의 기적’을 일군 화제의 당선자가 바로 황희 의원이다. 24년 만에 야권 승리를 안겨준 지역민들의 기대를 알기에 더욱 부지런히 뛰었다.

하지만 황희 의원은 만족하지 못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날림으로 업무를 보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되물었다. 의정활동에 누구보다 욕심이 많지만, 정작 자기 뱃속은 채울 줄을 몰랐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그의 전 재산은 8000여만원이다. 과거 민주정부 10년 동안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지만 “월급쟁이에 불과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황희 의원은 1997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서실에서 근무했고, 이후 참여정부에서 정무·홍보수석실 행정관으로 임용돼 정치적 내공을 쌓아왔다.

▲ 황희 의원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과 관련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국정운영을 힘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때문일까.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 사태를 지켜보며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지난 시절이 자꾸만 떠올랐다. 현 정권에서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의혹을 털어내기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답답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면 어땠을까. 황희 의원은 지체 없이 “당연히 (의혹을) 털고 갔을 것”이라고 답했다. 인터뷰는 23일 국회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감을 앞두고 권력형 비리가 터졌다. 이른바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이다.
“검찰 수사는 물증이 확보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권력형 비리에 대한 청와대 내사는 몇 가지 정황과 심증만으로도 예방 차원에서 필요하다. 설사 의혹을 받고 있는 대상자에게 죄가 없다고 하더라도 청와대 입장에선 깊이 있게 관찰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팩트(fact)가 나오지 않았는가. 첫째,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설립 허가를 신청한지 하루 만에 인가를 받았다. 둘째, 전경련이 동원돼 기부금 800억원이 마련됐다. 셋째, 두 재단의 관계자들이 현직 대통령의 행사에 여러 차례 동행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마치 일반인이 혐의를 받고 검찰이 수사하는 방식의 매뉴얼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기존 청와대 권력형 비리를 조사하는 패턴이 아니다. 그래서 더 의심을 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이번 사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당연히 (의혹을) 털고 가셨을 것이다. 진정성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전략적 측면에서도 의혹을 빨리 털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셨으리라 본다. 현 대통령 5년 단임제에서 레임덕은 올 수밖에 없다. 마지막 남은 임기에 국정운영을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선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실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권 초기에도 경선자금까지 밝힐 만큼 일말의 의혹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셨다. 또 엄격하게 주변의 친인척을 관리하셨다. 결과가 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참여정부는 어느 정권과 비교해도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 현 정권도 관련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선 스스로 의혹을 털어내기 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털어내지 않은 채 계속 안고 가면 임기 말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 황희 의원은 1992년 당시 청년위원장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10년 후,  그는 대통령 후보로 나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캠프에 합류해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치적 롤모델로 꼽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2002년 대선 당시 대통령후보로 모실 때다. 참모진들이 고민에 빠졌을 때 한마디 툭 건넨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때가 많았다. 사실상 정면돌파였다. 수세적으로 불리했던 상황이 유리한 상황으로 반전되더라. 그만큼 합리적이면서도 정치적 테크닉이 뛰어났다. 물론 진정성도 존경스러운 부분이다. 대의라고 하는 진정성과 원칙을 항상 시선에 두되 정치인이기 때문에 현실을 무시하거나 대세를 거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나온 말이 원칙과 상식 아닌가.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가장 일반적인 상식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것이 정치인의 자세라고 본다. 그 역할을 가장 잘해낸 정치인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대선 캠프에서 처음 만난 건가.
“그보다 이전이다. 1992년 대선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당의 청년물결유세단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때 만난 청년위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원봉사하는 대학생들을 불러서 고생한다며 삼계탕을 사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삼계탕이더라. (웃음) 이후 1997년에 다시 만났다. 당시 영남권의 민주세력들이 세 갈래로 갈라지게 됐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남개혁세력과 연대를 택했다. 당의 당료로 있던 저와 자연스레 여러 관계를 맺게 됐다. 최종적으로 결합하게 된 것은 2002년 대선 때였다. 300여명의 중앙당 당직자가 대세론을 형성한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는데, 6~7명이 연판장을 돌려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를 선언했다. 그 중 한명이 저였다.”

- 이인제 대세론을 거스르고 왜 ‘노무현’을 선택했는가.
“첫 번째는, 우리 가족과 아이들에게 당당하고 싶었다. 만약 노무현이 패배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저를 봤을 때, 비록 실패했지만 ‘이런 사람’을 지지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우리 사회가 김대중 정권을 지나면서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 완성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권과 반칙, 부패가 만연해 있었다. 마치 우리가 명절 때 고스톱이 도박이 아니라 미풍약속인 것처럼 그 정도의 특권과 권위를 누리는 것은 민주사회로 가는데 있어서 치러야 할 작은 비용으로 생각했을 때였다. 당직자로서 그 시절을 봤을 때, 제 나이 환갑이 돼도 바뀌지 않을 것 같더라. 그런데 노무현이라면 손바닥처럼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번째는, 시민사회의 동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월드컵 전후로 광장문화가 열리면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이 커졌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가 노무현이라고 생각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꼽은 황희 의원은 내년 대선에서 당내 유력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진정성과 신뢰를 높이 샀다.

- 본인은 어떤가. 정치를 해야 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강원도 산골에서 지냈다. 이때 목격한 사건이 지학순 주교의 석방을 요구하는 외국인 신부들의 단식 농성이었다. 당시 성당 안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신부님들이 왜 농성을 벌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뒤 중학생이 됐을 때는 5·18 관련 대학생들의 데모를 목격했다. 학교가 신길동에 있었는데, 목동으로 가야 할 버스가 영등포역에서 움직이질 못하고 승객들을 하차시켰다. 돌밭을 지나서 목동까지 걸어오는데 그 경험이 잊혀지지 않더라. 고등학생일 때는 안양천 뚝방의 판자촌 철거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모두 제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이 과정들을 차례대로 겪으면서 생활습관처럼 사회에 저항하고, 약자에게 시선이 갔다. 다른 직업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곧바로 정당에 들어갔다. 그때가 30세였다.”

- 내년 대선을 앞두고는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고 있다. 왜 ‘문재인’인가.
“정치는 선명하고 정확해야 한다고 배웠다. 주장이 선명하다는 것은 매 현안마다 고민하고 판단을 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저는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물음에 즉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너무 관성적으로 몸담았던 진영의 사람을 아무런 조건 없이 지지하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자문해본다. 하지만 답은 여전히 ‘문재인’이다.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은 진정성과 신뢰라고 생각하는데, 문재인 전 대표가 그렇다. 모 교수는 문재인 전 대표를 빗대 ‘착한 노무현’이라고 말할 정도다. 선거를 이기느냐, 지느냐의 공학적인 부분에서도 문재인 전 대표가 가장 적절한 후보다. 야권에서 25% 정도의 지지율이 콘크리트화 된 적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내년 대선을 치를 때 부산지역에서 50%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것 또한 처음 있는 일이다. 이미 부산경남은 과거 YS의 3당 야합 이전의 야도(野都) 성향이 복원되고 있다. 호남의 선택만 받는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제는 당내 역동성 보다는 안정성에 더 중심을 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당내 안정성은 완료됐다고 본다. 일부는 친노패권은 말하며 역동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역동성은 안정성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야권 전체의 통합 과정에서 역동성을 기대해 볼 수 있지만 당내에선 인정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 황희 의원은 역동성 보다는 안정성을 강조했다. 총선에 이어 전대 결과에서 보여주듯 당심과 민심이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 또 다른 안정성을 찾기 위해 역동성을 택하는 것은 역행이라고 판단했다.
- 이른바 ‘친문’ 세력에 대한 견제가 적지 않다. 추미애 지도부를 친문 일색으로 평가하며 대선 패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번 지도부 선출은 당원 중심으로 하지 않았는가. 소위 친노로 불리는 진영을 겨냥해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여론조사 조작이라고 비판해서, 이번엔 당원 중심으로 선거를 치렀다. 당원이 선택한 결정이다. 우리 당은 이미 한번 깨졌다. 그런 상황에서 나머지 절반이라도 단합하고 결속해야 한다는 게 당원의 뜻 아니겠는가. 총선에 이어 전대 결과에서 당심과 민심 모두가 안정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준 것이다. 그런데 안정성을 깨고 또 다른 안정성을 찾기 위해 역동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은 역행이라고 생각한다.”

-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사실상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친노와 친문의 대결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같은 친노다. 친노가 분화되면서 친문과 친안으로 나뉘어졌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닌가. 도리어 전략적인 측면에선 바람직하다고 본다. 친노패권이라는 구도가 형성될 수 없을 게 아닌가. 안희정 지사의 출마는 친노가 패권을 휘두르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여권에서 충청대망론, 반기문 영입론 등 중부권을 장악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견제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선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를 친노로 묶어둘 게 아니라 개별 후보로 봐야하지 않겠는가. 결국 선거는 당이 중심이 돼서 치러야 한다. 이외 박원순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대표, 김부겸 의원 등도 매우 훌륭하고 진정성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 신재생법안을 발의한 황희 의원은 앞으로 목동이 국내 대규모 공동주택단지를 재생하는 신모델로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다.

- 당선 이후 뜨거운 화제를 불러왔다. ‘목동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지역구인 양천구갑은 여당 지지율이 높은 곳이다. 지금은 어떤가.
“지난 24년 동안 의회 권력을 지금의 여당이 독점해오던 지역이다. 그래서 제가 당연히 새누리당 소속이라고 생각한 지역민도 적지 않았다. 더욱이 여당의 전유물과 다름없는 청와대 경력과 도시공학 전공자로서 개발을 얘기하다보니 여권 인사로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30년 동안 동네가 변한 게 없고, 중산층이 약화되는 것을 보면서 변화에 대한 지역민들의 열망 또한 상당했다고 본다. 실제 지난 총선에서 용광로 캠프를 구성했고, 지금도 지역구에 대통합위원장을 뒀다. 새로운 정치를 하고 싶다. 지역 사회에서까지 여야 이념적으로 나뉠 이유가 없다.”

- 목동 아파트 재건축 문제가 지역 내 가장 큰 숙제로 꼽힌다. ‘신재생타운법’을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제출한 것도 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 목동아파트의 경우 대지면적이 다른 지역에 비해 4배 정도 넓다. 재건축·재개발을 하지 않더라도 재산의 값어치를 높이고 개발 관련 도로 확장을 위해서 대규모 공동주택단지에 대한 재개발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규모 주택단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첫 도입 사례가 목동이다. 목동이 앞으로 국내 대규모 공동주택단지를 재생하는 첫 모델이 될 것이다.”

- 앞으로 의정활동에 대한 포부가 궁금하다.
“본질적인 것에 도전하고 싶다. 삼권분립을 예로 들 수 있다. 어제 여당의 모 의원이 기재부에서 모든 부처의 사업을 결정하는 데 대해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예산편성권한이 의회에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엄밀히 말해서 삼권분립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산편성권한이라든가 입법에 대한 기능들을 강화하는 게 결국 시민이 선택한 권력이고 의회의 권력이라고 한다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삼권분립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외 우리 사회가 부가가치 산업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개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제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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