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제안서 제출 안했는데도 서울소방 "서류 일부 누락" 주장
영문본 733장 vs 한글본 130장, 부실서류에도 평가 강행
AW 국내홍보사 대표와 박원순 시장, '아름다운재단' 활동 이력도 주목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한글제안서가 누락된 것은 사실이나 ‘일부’에 불과하다.”
소방헬기 도입을 추진중인 서울소방은 앞서 <이탈리아 헬기업체 AW사가 필수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등 입찰규정을 위반했고, 이에 따라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 공식 해명자료를 내고 이 같이 밝혔다. 하지만 서울소방의 이 같은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입찰 평가가 진행됐던 그날, AW는 ‘한글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누락됐다’고 주장한 것은 한글제안서가 아니라, 한글제안서의 부속서류다. 그것도 전체 서류의 18%만 제출됐다. ‘일부 누락’이 아니라 ‘극히 일부만’ 제출된 셈이다.

▲ AW는 이달 초 진행된 제안서 평가에서 한글제안서를 누락했다. 이날 제출된 영문 입찰서류는 총 733페이지 분량이고 한글 입찰서류는 130페이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서울소방은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한글제안서는 일부 누락됐다"고 주장했다. <자료=장정숙 국민의당 의원실 제공>

◇ 제출된 한글서류, 전체의 18% 불과…‘필수’ 한글제안서는 미제출

현재 이탈리아 헬기업체 AW사(아구스타 웨스트랜드·현 레오나르도)와 수의계약 절차를 진행중인 서울소방은 이달 초, 평가위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AW의 헬기(AW-189) 대한 평가를 진행했다.

이날 AW사가 제출해야하는 입찰서류는 총 12가지. △입찰 참가신청서를 비롯해 △제안서 △견적서 및 세부견적서 △A/S 계획서 △제조자증명서 등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서류는 <제안서>다. 서울소방이 요구하는 헬기 규격과 범위에 대해 AW의 계약이행 능력을 적시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항공기의 성능 및 기본장비·임무장비 등 각 항목별로 기술적인 사항을 구체적으로 적시(제안)해 평가위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작성한 서류로, 제안서에 적시된 내용을 입증하는 증거서류(제안서 증거서류 14가지)도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평가위원들은 이를 바탕으로 AW가 서울소방이 제안한 조건에 부합하는 헬기를 공급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증한다.

서울소방은 입찰공고문을 통해 제안서의 영문본과 함께 ‘한글번역본’을 반드시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한글과 영문 규격이 서로 다르게 해석될 소지가 있고, 이에 따른 차이가 발생할 경우 후속처리에 법적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날 AW는 제안서의 한글번역본(한글제안서)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소방이 장정숙 의원(국민의당, 안전행정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날 AW는 A4용지 89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영문제안서’는 제출했지만, 이와 함께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한글제안서’는 첨부하지 않았다.

AW가 제출한 한글서류는 제안서를 입증하기 위한 백데이터(증빙서류) 중 ‘극히 일부’다. 제안서 자체를 제출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를 증명할 증명서 일부만 첨부한 것인데, 그조차도 14가지 필수서류 중 3가지만 제출했다. 전체 입찰서류 분량을 기준으로 따지면 18%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소방의 주장처럼 ‘일부 누락’이 아니라, ‘극히 일부 제출’이 정확한 표현인 셈이다.

▲ 서울소방의 입찰규정과 외자입찰일반유의서 등에는 한글제안서(한글번역본)을 제출하지 않거나 증빙자료가 미흡할 경우 불이익 내지는 부적합 처리 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 평가위원들, 한글제안서도 없이 90여개 세부항목 평가

그런데도 서울소방은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제출된 제안서로 검토 및 확인이 가능하여 평가를 실시, 95점의 적격평가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서울소방의 제안서(기술수행능력) 평가는 크게 △객관적 평가(25점)와 △주관적 평가(75점)로 나뉜다. 객관적 평가는 신용평가등급 확인서(5점)와 카테고리A 증명서(20점)으로 구분된다. AW는 이와 관련된 증빙서류들은 모두 제출했다.

관건은 주관적 평가다. 주관적 평가는 크게 △형태성능(15점) △기본장비(25점) △임무장비(20점) △예비부품·지원장비·후속지원(15점) 등 4가지 평가항목으로 나뉘고, 각 항목별 세부평가 문항으로 이뤄진다. 세부평가는 최소 8개에서 최대 38개, 총 92개(지원장비 규격서 포함) 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세부평가 문항에 대해 △모두 충족(15~20점) △1개이상 미충족(0점 또는 10점) △2개이상 미충족(0점) 등의 배점이 이뤄진다. 총점이 85점(100점 만점) 이상이면 적격이다.

문제는 평가항목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아래 첨부한 ‘세부항목별 평가기준’을 살펴보면 평가내용과 AW가 제출한 한글제안서의 내용을 꼼꼼히 비교해야만 배점이 가능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단 1개라도 충족하지 못할 경우 0점 처리되는 항목이 존재한다. 그만큼 한글제안서에 대한 꼼꼼한 검토는 중요하고 평가에 필수적이다.

이날 AW는 한글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나마 첨부한 한글서류는 △종합물류지원서비스 △훈련프로그램 △보증정책 3가지가 전부다. 서울소방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평가위원들은 AW가 제출한 3가지 한글서류(130페이지 분량)만으로도 충분히 검토와 확인이 가능했고, 여기에 730페이지가 넘는 영문서류를 직접 번역해 90여개에 달하는 세부항목에 배점한 결과, 평균 95점을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과거 헬기 구매 평가에 참여한 한 인사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 서울소방의 <기술제안서 평가항목 및 배점기준> 일부. 서울소방은 한글제안서가 없었음에도 당시 평가위원들이 90여개 세부항목에 대해 평가를 진행, 95점의 적격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출처=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된 평가표 일부>

◇ AW 위해 거짓말까지… 서울소방의 ‘각별한 배려’ 왜

AW사에 대한 서울소방의 상식 밖 배려는 이미 여러차례 감지된 바 있다. 입찰규격은 AW사의 헬기(AW-189)에 꼭 맞춰졌고, 규격서는 두 달이나 늦게 제출했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

이번엔 입찰서류가 완비되지 않았음에도 이를 접수했다. 입찰규정에 따르면 △평가 불이익 △부적합 처리 △입찰 무효 조건 등에 해당 하지만 서울소방은 되레 평가까지 강행했고, 95점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AW는 과거에도 관련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등 허위 입찰제안서를 제출한 사실이 밝혀져 결국 탈락 처리된 바 있다. 이번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AW가 제출한 한글서류는 영문 입찰서류 전체분량의 18%에 불과했지만, “일부 누락됐다”고 속였다. 정작 필수서류인 한글제안서는 제출되지 않았지만 ‘일부 누락’이라는 말장난으로 진실을 희석시켰다. 게다가 공식입장자료를 통해 “한글제안서 일부 누락이 ‘입찰무효’에 해당되는지 조달청에 문의한 결과 자료를 추가제출 받아 계약추진이 가능한 것으로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조달청은 “그런 사실 없다”고 반박했다.

▲ 서울소방은 소방헬기 구매 과정에서 이탈리아 헬기업체 AW(아구스타 웨스트랜드)사에 각종 특혜를 제공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사진은 서울시가 도입하려는 AW사의 헬기 AW-189. < AW홈페이지>
장정숙 의원은 “‘안전한 헬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서울소방이 고집스럽게 ‘안전한 헬기’를 고수해 온 만큼, ‘안전한 헬기’임을 검증하는 작업도 투명하고 엄격하게 진행돼야 한다. 서울소방에 배정 예정인 340억은 관련 공무원들과 일부 조종사들 마음대로 써도 되는 ‘보너스’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소방이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단독 입찰한 아구스타는 영문본은 733장에 CD 2장을 제출하고, 한글본은 약 130장만 제출했다”며 “중요하지 않은 130장으로 입찰서류를 등록하고도 한글본이 일부 누락되었다고 거짓 해명을 한 셈이다. 필수서류인 한글제안서 한 장 없이 계약을 접수한 입찰은 무효이며, 헬기 구매사업 원점에서 재검토 및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 25일 서울 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탈리아 AW사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계속되는 특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AW가 명백히 입찰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고, 서울소방이 이를 애써 배려해준 정황이 포착된 만큼 이번 입찰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소방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한글제안서 누락돼도 탈락 아니다”

서울소방은 소방헬기 과정에서 이탈리아 헬기업체인 AW(아구스타 웨스트랜드·현 레오나르도)사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소방 관계자는 28일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AW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데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며 “모든 것은 법적인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정당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올소방 측은 우선, 4월 6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한 견적서를 두 달이나 늦게 제출했는데도 문제삼지 않은데 대해 “카이(KAI·한국항공우주산업)를 비롯해 에어버스, 아구스타에 모두 동일하게 견적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며 “당시 에어버스와 아구스타는 회신이 늦게 왔고, 이에 6월 13일 본견적을 다시 요구했다. 견적서라고 하는 게 마감시한이 없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규격서를 확정하기 전까지만 견적서가 도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입찰규정 위반 논란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해명했다.

서울소방은 “기본적으로 입찰서류(나라장터에 공고된 12가지 서류)를 접수한 뒤, 내용이 적격인지 여부를 평가하는 절차를 거친다”며 “‘입찰’에서 서류가 누락되면 부적격(불합격) 처리가 되지만, 현재 AW와는 ‘수의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탈락을 시킬 수 없다. 행정자치부 지방계약 민원센터에 문의한 결과, 계약대상자가 한 업체뿐이라 조건이 맞으면 계약을 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서류를 보완해 진행하는 것이 적법하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글제안서가 누락됐음에도 평가를 강행한 이유에 대해선 “서류 접수 과정에서 한글로 된 서류들이 있길래…”라며 “평가 과정에서 한글제안서가 누락된 것을 알았다. 조건과 규격에 맞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무효처리가 됐다. 그리고 업체 측에 서류 보완을 요청해 재평가를 실시, 1차 평가 때와 동일한 점수로 현재 적격 판정을 받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본지 취재결과, 당시 평가에선 반드시 첨부해야할 한글제안서가 첨부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울소방은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검토와 확인 가능했고, 95점의 합격점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서울소방은 “평가위원들이 그쪽 분야 전문가들이라…(영어로 된 수백장의 문서도 번역이 충분히 가능했다)”고 답했다.

서울소방은 수의계약 대상 업체(AW)에 적용되는 기준과 규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입찰이든 수의계약이든 나라장터에 공지(공고)한 입찰규정을 따른다”며 “수의계약이라 하더라도 입찰기준은 기존에 공고한 기준을 준수한 채로 계약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지방계약 민원센터에 확인한 결과, 수의계약이므로 자료보완을 요청해 검증한 뒤 계약을 진행하는 게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구스타 측에 특혜를 주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다. 법에 따라 진행할 할 뿐”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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