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안이 가결되자 방청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준비한 현수막을 펼치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의원님들 감사합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촛불민심 만세! 만세! 만세!”

 

정세균 국회의장의 탄핵안 가결선포 직후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다. 9일 탄핵표결에 앞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배정된 방청석 50여 석을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에 넘겼다. 역사적 장면의 참관자격을 얻은 이들은 그간의 울분이 터져 나오듯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시민들의 들뜬 분위기와 달리 여야 국회의원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자신들이 세운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결정해야 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특히 침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집무집행과 관련 헌법과 법률 위반했다.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김관영 의원의 제안 설명에도 침묵했다. 평소라면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을 만큼 강도 높은 발언이었으나, 새누리당 의원석은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 무거운 표정으로 투표결과를 기다리는 여야 의원들의 모습.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야권도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두 손을 모은 채 투표시간을 기다렸고, 정진석 원내대표는 먹먹한 표정으로 정면 모니터를 바라보거나 때때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미동도 없이 정면만을 응시했다. 의도적인 지연이나 의사진행 방해는 없었고 겸허히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결기가 보였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오후 3시 25분경 시작된 무기명 투표에도 이어졌다. 평소 의원들은 자신의 투표를 마치고 검표를 기다리는 동안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친분을 과시한다. 그러나 이날 만큼은 대부분의 의원이 조용히 착석해 투표결과를 기다렸다. 홍문종, 서청원, 김무성 의원 등 일부는 투표를 마친 뒤 결과를 지켜보지 않고 본회의장을 떠났다. 투표는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가장 먼저 시작했고 검표를 맡았던 새누리당 김현아 의원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투표마감까지 소요시간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탄핵가결을 촉구하며 이날 오전부터 국회에서 열렸던 퍼포먼스들 <시사위크>

투표 결과 찬성 234표로 탄핵안이 가결되자 야권은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결과발표 후 환호의 함성을 질렀다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며 실수임을 인정했다. 박 원내대표를 제외한 야권의원들은 환호하거나 박수를 치지 않고 조용히 본회의장을 빠져나왔다.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역풍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처사다. 당내에서도 침착한 분위기를 유지해줄 것을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헌법에 따라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탄핵소추의결서 송달을 위해 국회를 나섰다. 의결서 등본이 이날 청와대에 송달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은 즉시 정지된다.

한편 이날 탄핵안 가결을 분수령으로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친박과 비박으로 갈려 치열한 표대결을 벌였던 새누리당에는 격랑이 일 전망이다. 탄핵안 부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본회의 산회 직후 기자간담회를 연 이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고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인다”며 “오늘 투표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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