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본부에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반 총장은 조국에 헌신할 방도를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 AP/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귀국을 한 달 가량 앞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가 치솟고 있다. 독보적인 대권후보가 없는 가운데 국내 정치권에 몸을 담고 있지 않은 반 총장을 향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반 총장의 유엔 시절 10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어렵고 민감한 질문에 애매하게 피해간다는 점을 비꼰 ‘기름장어’라는 별명이 대표적이다. 동양인 특유의 ‘돌려 말하는 화법’ 탓에 불거진 오해라는 반박도 있다. 1월 중순께 귀국해 전국을 돌며 ‘강연 정치’에 나설 계획인 반 총장의 별명에 담긴 그에 대한 평가를 짚어봤다.

◇ ‘기름장어(slippery eel)’ ‘투명인간(invisible man)’ ‘우려왕’

<블룸버그 통신>은 반 총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2004~2006년까지 외교통상부 장관을 한 경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이 기간 반 총장이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기름장어’란 어렵고 민감한 질문에 구체적 대답 대신 애매한 대답으로 피해간다는 비꼬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가디언>은 반 총장을 ‘투명인간’이라고 불렀다.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에서다. 2013년 <뉴욕타임스>는 칼럼을 통해 반 총장을 유엔 역사상 최악의 총장이라 칭했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역대 총장들을 평가한 기사에서 반 총장을 “가장 둔하고 사상 최악”(the dullest-and among the worst)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 같은 외신들의 비판은 반 총장의 지난 10년간 행보가 유엔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았다는 평가에 근거한다. 반 총장은 2007년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각국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답했다. 신임 사무총장이 사형제에 반대해 온 유엔의 의견에 반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간의 합의에 대해서도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해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았다. 국내는 물론 유엔 내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반발 여론이 일자 반 총장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국내에서는 야권의 대권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고위공직의 막강한 권한을 지녔으면서 그에 상응하는 성과가 없다면 그건 단점이다. 게다가 공직을 사익을 위해 이용했다면 오점이 될 것”이라며 “최악 총장이라는 세계 유수언론의 평가도 있지만 총장께서는 ‘우려’외에 어떤 성과를 냈다는 걸 찾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반 총장을 ‘우려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외교관으로서의 ‘전략적 모호성’” “동양의 부드러운 리더십”

하지만 반 총장을 향한 이러한 비판이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주장도 있다. ‘기름장어’라는 별명은 강한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동양적 화법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요 아카사카 유엔 공보담당 사무차장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동양인들은 유교적 가르침에 따라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동양인들의 눈에는 반 총장의 태도가 현명하게 비치고 있다. 동양의 현인들은 서방의 지도자들처럼 강력하게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는다”고 했다.

‘투명인간’이라는 별명도 반 총장의 성격상 ‘요란한 외교’를 하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치평론가 제임스 트라우브는 <뉴욕타임스>에서 “외교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자세는 사려 깊은 것”이라고 반 총장의 ‘조용한 외교’를 두둔했다. <BBC> 역시 반 총장을 외교관들 사이에서 근면성실하고 진지한 지도자로서 명망을 얻고 있으며, 합의와 조화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했다.

반 총장 측은 “(반 총장이) 나름의 ‘조용한 외교’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세계 정상들과 공개 면담을 하지 않는 이유는 TV 카메라 앞에서 그들을 난처하게 하거나 위협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조용한 개별 면담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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